12월 17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두통 증상이 느껴졌다. 코막힘 약간 있고 콧물이 목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은 여전하다. 체온과 산소포화도는 다 정상 범위. 건강관리키트에 들어있던 종합감기약은 다 먹어서 해열진통제를 먹었다. 근처 사는 엄마한테 감기약 좀 사다달라고 부탁드렸다. 엄마가 감기약 사다 문고리에 걸어놨다고 전화하셔서, 현관문을 열었다. 약봉지 외에도 배달물품 두 상자가 와 있다. 추가 주문했던 마스크 한 상자, 그리고 또 한 상자. 꽤 무거웠다. 이건 내가 주문한 게 아닌데 뭐지? 열어보니 구청에서 보낸 '긴급구호품'이다. 햇반과 간편국, 참치와 장조림 김치 통조림, 김, 과자와 쓰레기봉투, 소독제, 온도계가 들어있다. 꽤 풍성해서 며칠 버틸 비상식량으로 충분하다. 남들이 받았다고 사진 올린 걸..
12월 16일 . 오전 8시 알람에 깼지만 일어나기 싫어 뒤척대고 있었는데, 생활치료센터 어플에 자가진단 입력해야 한다고 메시지가 떠떴다. 예전에 병원 입원했을 때도 아침에 간호사가 와서 체온 재고 갔던 게 생각났다. 입원한 건 아니지만 나도 그 리듬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체온 산소포화도 다 정상이다. 어제보다 아침에 목이 덜 아픈 것 같다. 콧물이 줄었고 재채기는 거의 안 한다. 목이 칼칼한데 가래인지 콧물이 넘어간 건지 모르겠다. 이제 아침은 좀 간단히 먹어야겠다 싶어 시리얼에 우유, 사과 한 개를 먹었다. 어제는 아침부터 잘 먹는다고 양장피 해먹다가 시간을 엄청 보내서 점심 저녁이 연쇄적으로 늦어지는 바람에 밤늦게까지 배가 꽉 찬 느낌이었다. 병원에서 일정 시간에 밥 나오면 먹었던 것처럼, 나도 ..
오후 2시. 살풋 잠이 들었는데, 엄마 전화로 깼다. 어제 실시한 검사 결과가 음성이란다. 다행이다! 이로써 내가 접촉한 지인이나 가족 중 양성은 아무도 없다. 의학전문기자 얘기 들으니 코로나 백신 접종자는 전염력도 확 떨어져서 외국에서는 밀접 접촉자라도 백신 접종했다면 검사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곧이어 전화벨이 울렸다. 내 재택치료 전담기관인 **병원이다. 생활치료센터 어플을 깔고 로그인해서 건강기록정보를 규칙적으로 입력하라고 안내했다. 건강관리키트로 보내준 약은 증상 있을 때마다 먹고, 추가 약이 필요하거나 증상이 악화되면 비대면 진료를 신청하라고 한다. 그런데 생활치료센터 어플을 깔았더니 알려준 대로 입력해도 로그인이 안된다. 사용자 정보가 잘못되었다는 메시지만 뜰 뿐. 여러 번 해봐도 안돼서 아..
아침 6시쯤 잠에서 깼다. 현관 앞에 배송된 식재료를 들여놓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잠이 안 와서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있다가 다시 잠들었는데 8시 반쯤 깼다. 유튜브 요가채널 틀어놓고 아침 스트레칭과 명상을 따라하고 있는데 9시쯤 전화가 왔다. 인천 서구청. 재택치료 신청 확인하고 끊었다. 아침부터 뭔가 잘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양장피 밀키트를 꺼냈다. 양장피는 생으로 채 썰어야 하는 야채, 볶아 먹는 것, 데쳐 먹는 것이 다 따로따로라서 밀키트라도 조리 시간이 짧지는 않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녁에 먹을 걸 그랬다. 그런데 설명서 대충 읽고 하다가, 데치기만 해야 할 해산물, 생으로 먹어야 할 야채까지 습관적으로 다 볶아버렸다. 망했다. 그냥 겨자 냄새 나는 고기 야채볶음이 되어버렸다. 할 수 없지. ..
12월 11일 아침에 콧물이 좀 났다. 원래 알레르기성 비염이 좀 있어서 비염이 심해졌나? 아님 날씨가 추워지니 감기 기운이 있나? 정도로 생각했다. 머리가 조금 무거운 증상이 있었지만, 이건 비염에도 흔히 따라오는 증상이라 의심하지 않았다. 그냥 컨디션이 좀 안 좋다 이 정도? 12월 12일 콧물이 좀 더 많아졌고, 재채기가 자꾸 난다. 두통도 계속이다. 근무가 있어서 출근은 했다. 점심 때 회사 근처 병원에 다녀왔다. 열은 없고, 두통과 콧물, 재채기 증상. 의사가 보더니 목도 조금 부어있다며 비염보다는 감기 같다고 했다. 예전에도 나는 감기가 코나 목으로 잘 와서 이비인후과를 다녔었다. 코로나 이후 2년간은 안 걸렸던 감기, 이번에 된통 걸렸구나 했다. 의사가 열이 나면 혹시 모르니 코로나 검사를 ..
코로나19는 참 이상한 병이다. 내가 아픈 건데 남 걱정부터 하게 만든다. 물론 증상이 심하면 내 걱정만도 차고 넘치겠지만, 현재까지는 감기 증상 정도니 내 걱정보다는 나 때문에 혹시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하느라 머리가 아프다. 안 그래도 어젯밤 검사 결과를 기다리다가, 양성이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카드 사용내역과 통화기록을 들춰보며 내 '동선'을 정리해 봤다. 참 많이 돌아다녔구나. 나 스스로도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오전 확진 판정 받은 후 보건소 직원과 통화하다 보니 자책이 더 심해졌다. 아, 그럼 이 날은 이게 끝인가요? 아니요. 또 **로 가서 **를 했어요. 네, 그리고 귀가하셨나요? 아니요, 다시 **에 가서 **를 만났어요. 동선이 간단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
"안녕하세요. ~~보건소 감염병관리팀입니다 귀하께서 시행한 코로나PCR 검사 결과 양성입니다. 이 시점부터 본인과 가족은 외출하시면 안되고 보건소에서 순차적으로 전화할 때까지 자택 대기 부탁드립니다. 해당 회사 또는 학교에 확진 사실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아침에 온 문자. 확진일 수도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막막해졌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바이러스 감염됐을 수 있겠다 생각하니 그 걱정이 더 컸다. 가족과 회사, 그리고 요 며칠간 내가 만났던 사람들에게도 확진 사실을 알렸다. 여기저기서 전화와 카톡이 쇄도해서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다들 걱정하지 말고 몸조리 잘 하라고 했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다행인 것은 ..
며칠 전에 중국 드라마 관련 책을 써보겠다며 출판사에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 그럴 것 같기는 했다. 샘플 원고를 쓰다 보니, 내가 쓰려는 글은 이 출판사의 시리즈물 성격에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리즈 성격상 개인적인 이야기를 에세이로 풀어내야 하는데, 내가 쓰려는 글 내용은 '중드를 통해 알게 된 중국'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것이니 끝내야지, 하고 샘플 원고와 제안서를 보냈는데, 역시나였다. 돌이켜 보니 나는 중국을 공부하며 보낸 시간에 대한 일종의 결산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2015년부터 2년간 휴직하고 중국에 다녀왔고 이후에도 중국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중국 드라마뿐 아니라 중국 공연예술에 관한 글들을 종종 써왔다. 무엇이 됐든 중국 관련 책을 한 권 쓰고 싶었..
중국 드라마가 한국에서 방영될 때 제목은 도통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되기 일쑤다. 중국어를 한국 한자 발음으로 그대로 적어놓기 때문이다. '완미선생화차부다소저'도 그랬다. 중국어로 어떻게 쓰나 봤더니 完美先生和差不多小姐. '화(和)'는 '~와(and);의 뜻이니, '완미선생과 차부다소저'가 되시겠다. 드라마 오프닝 타이틀에 한국어 부제가 '완벽남과 허당녀'라고 되어있다. '완미선생'은 어렵지 않은데, '차부다소저'는 뭘까. '차부다'는 차부둬(差不多), 즉 차이가 크지 않다, 대략 비슷하다는 뜻이다. '소저'는 샤오지에, 아가씨라는 뜻이니 '차부둬 아가씨'다. 중국에서 공부할 떄 독해 시간에 '차부둬 선생전'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중국 근대 지식인 후스가 1924년, 중국인들이 대..
https://www.youtube.com/watch?v=ljgWpS9HH9Y 드라마 '산하령'에는 한시가 끊임없이 나온다. 원작소설은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 대본 작가가 특히 온객행의 대사는 온갖 유명한 시를 총동원해서 썼다고 한 얘기를 들었다. 2회. 주자서와 온객행이 처음으로 '탐색전'을 펼친다. 무공인지 춤인지 아크로바틱인지 모를, 근사한 대결 한 판이 펼쳐지고 나서, 온객행이 '그대의 보법이 신선처럼 아름다워 따라왔다'고 얘기하는데, 말하는 내용이 딱 시다. 仿佛兮若轻云之蔽月, 飘飘兮若流风之回雪 마치 엷은 구름에 싸인 달 같고 흐르는 바람에 눈이 날리듯 가볍구나. 궁금해서 출처를 찾아보니 조조의 아들이며 위대한 시인이었던 조식의 '낙신부洛神賦' 중 한 구절로, 낙수의 신녀 복비의 아..
드라마 '산하령'에서 온객행이 아상을 따라다니는 조위녕을 처음 만났을 때, 마음에 안 든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이렇게 말하고, 조위녕은 이 말을 듣자마자 급히 자리를 뜬다. 圆润地走远点! 圆润은 Round and Smooth, mellow의 뜻이다. 직역하면 '둥글고 매끄럽게 혹은 부드럽게, 멀리 가주세요'의 뜻이다. 아상도 조위녕이 떠난 후 궁금했는지 온객행에게 그게 무슨 뜻이었냐고 물어본다. 온객행은 '꺼지라'는 말을 점잖게 한 것('滚'的文雅说法)이라고 설명해 준다. 온객행이 하도 문자 쓰기를 좋아하는 캐릭터라 이것도 무슨 출처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이건 고전이 출처가 아니라, 2009년 상하이의 한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가 한 말에서 나온 것이었다. 당시 진행자는 상하이 사투리로 이야기를 ..
방탄소년단 중에 가장 먼저 얼굴과 이름을 외웠던 멤버는 RM, 그 다음이 지민이었다. 지민이 부른' Lie'는 내가 방탄소년단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전부터 좋아했던 노래다. 클래시컬한 느낌의 전주부터 나를 확 끌어당겼고, 여린 듯 폭발적인 지민의 보컬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이 곡은 처음 들어도 마치 10년은 들어온 듯한 친숙함이 신기했는데, 스페인 작곡가 파야의 '허무한 인생' 중 스페인 무곡 일부를 샘플링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이런 뒷북이. 어쩐지. 아래 링크 달아놓은 파야의 스페인 무곡 연주 영상에도 지민의 Lie를 보고 왔다는 팬들이 쓴 댓글이 꽤 많다. https://www.youtube.com/watch?v=-ThId6ZWqsE https://www.youtube.com/watch..
예전 글을 뒤적거리다가, 이 블로그를 개설한 게 2011년 5월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벌써 10년 넘게 지나버렸네. 회사에서 운영하던 블로그가 폐쇄되어 이리로 옮겨온 거였는데, 그러고도 이렇게 세월이 지났구나. 요즘은 블로그에 글을 쓰기는 하는데, 도대체 누가 읽기는 할까 싶게 조용하다. 하긴, 조용한 게 맘 편하게 글 올리기엔 편한지도. 초창기 교류하던 사람들은 이제 거의 이 티스토리 판을 떠난 것 같다. 요즘 쓰는 글들은 대부분 검색으로 들어와서 보는 것 같은데, 조회수가 많지는 않지만, 중국 드라마 관련 글들을 그나마 많이 본다. 내 글이 다루는 주제가 너무 잡탕이라, 네이버에도 블로그를 개설해 중국 얘기하는 블로그와, 평소처럼 공연 얘기 많이 하는 블로그로 나눠 운영하려고 했었는데, 나라는 사람 ..
*방탄소년단의 SBS8뉴스 인터뷰에서 뷔가 '블루앤그레이'라는 노래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뉴스에는 시간 관계상 편집해 앞부분만 나갔는데, 사실 '힘내, 잘될 거야' 라고 응원하는 노래가 아니라 '나도 힘들어. 너 힘들지? 야, 나 힘들다. 똑같은 것 같아' 하는 노래라는 뒷부분의 얘기가 더 마음에 와닿았다. 인터뷰 풀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p1d3aaDGtL4에서는 다 볼 수 있다. 뷔: 이 노래는 사실 저희도 그렇고 모든 사람들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던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저희도 똑같이 일도 취소가 되고, 갑자기 스케줄들도 다 좀 캔슬이 된 상황에서 뭔가 공허한 마음도 생기고, 그리고 우울함과 불안함이 좀 갑자기 생겨가지고 그 감정을 솔직하게 나타내고 싶어..
*한동안 '724프로젝트'를 맡아 정신이 없었다. 너무 신경을 써서 생긴 불면 증세와 몸살 기운이 아직 남았다. 당시엔 몰랐는데, 진짜 단 며칠만에 몸과 마음을 모두 불사른 프로젝트였다. 방송이 무사히 나가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고, 특히 이번에는 '아미'들의 도움이 컸다는 걸 꼭 얘기하고 싶어 썼던 글이다. 7월 27일자 SBS취재파일. 지난주 토요일(7월 24일), 방탄소년단이 SBS 8뉴스에 출연했습니다. '버터'에서 '퍼미션 투 댄스'로 이어지는 빌보드 싱글차트 8주 연속 1위라는 대기록을 세운 후, 첫 언론 인터뷰였습니다. (오늘 '버터'가 '퍼미션 투 댄스'와 다시 자리바꿈 하며 1위를 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네요. 9주 연속 1위입니다. ) 방탄소년단은 주말 SBS 8뉴스 김용태 앵커..
*잠비나이가 미 공영방송 NPR 간판 음악프로그램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출연한 걸 보고 썼던 7월 13일자 취재파일. 이 프로그램 참여 아티스트의 폭넓음에 다시한번 감탄한다. 한국 밴드지만 이번에 '잠비나이'를 알게 된 분들도 많을 듯. 방탄소년단과 씽씽, 고래야, 잠비나이의 공통점은? 방탄소년단이야 모르는 분들 없을 테고, 씽씽, 고래야, 잠비나이는 좀 생소하다,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모두 한국의 밴드 이름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라는 미국의 유명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했다는 겁니다. NPR은 미국의 공영라디오 방송이고,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는 NPR의 주요 음악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NPR 사무실에서 열리는 공연을 방송해왔습니다.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는 이 프로그램의 진..
블로그를 글 보관하는 곳으로도 사용해왔는데, 몇 달 동안 방치해왔다. 큰 프로젝트가 끝나서 한숨 돌린 김에 오래 먼지 쌓인 방을 청소하는 기분으로 포스팅해본다. 7월 9일 SBS 뉴스 홈페이지에 올렸던 취재파일. 국내 언론에선 처음으로 이 사건을 다뤘던 글인데, 며칠 후 SBS 뉴욕 특파원 김종원 기자가 목격자 인터뷰와 이후 음악계 분위기까지 꼼꼼하게 취재해 보도하면서 한동안 큰 이슈가 되었다. 내가 쓴 글은 '한국인이 무시 당했다'고 분노하는 것을 넘어, 우리 안에 있는 편견도 되돌아보자는 얘기도 담으려 했는데, 얼마나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지난달 25일 뉴욕의 줄리아드 음악학교에서는 바이올린의 거장 핀커스 주커만이 지도하는 온라인 마스터클래스가 열렸습니다. 핀커스 주커만은 이스라엘 출신의 세계적인..
중국 작가 핑핑의 '우한일기'를 읽다가 마음을 울리는 부분을 발견했다. 잊지 않도록 적어두고 싶어졌다. 한국어판 154페이지. "소설은 늘 낙오자, 고독한 자, 쓸쓸한 자와 함께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소설은 그들과 손을 맞잡고 걸어가고, 때로는 그들을 돕기 위해 몸을 기울인다. 소설은 인간의 감정과 배려를 폭넓게 표현한다. 가끔은 마치 늙은 암탉처럼 역사 속에서 버림받는 사람들과, 발전하는 사회에서 소외된 생명들을 보살피기도 한다.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을 안아주고 격려해준다. 그리고 때로 소설은 그들에게 동병상련의 공감대를 느끼며 그들이 소설의 동반자가 되어주고 온기와 격려를 나누어주길 기다린다. 이 사회에서 강자나 승자는 문학에 별 관심이 없다. 그들은 문학을 주로 자신을 빛내줄 장식이나 화환으..
tvN의 '유퀴즈'에서 이종열 조율 명장을 소개한 것 자체는 좋았다. 그의 이야기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알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 입맛이 썼던 이유는, 이 프로그램이 남이 취재했던 내용과 영상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썼으면서 출처를 밝히는 데 아주 인색했기 때문이다. 조율 명장 이종열 선생이 지난해 '조율의 시간'이라는 책을 냈을 때 취재해서 SBS8뉴스에 냈다. 이종열 선생만 인터뷰하고, 혼자 피아노 조율하는 모습만 촬영했으면 간단했겠지만, 나는 그가 실제 공연을 앞두고 어떻게 일하는지, 현역 피아니스트에게 이종열 선생의 조율은 어떤 의미인지 꼭 보여주고 싶었다. 피아니스트까지 함께 담기 위해서 섭외에 정말 공을 들였다. 그래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이종열 선생을 취재한 뉴스 리포트에 '조연'으로 담을 수..
요즘 자주 맞닥뜨리는 질문. 도대체 '클래식 음악'이란 뭘까. 게임 음악 전문 지휘자로 각광받고 있는 진솔 지휘자한테 물었더니 요즘 안 그래도 국악 하는 친구들과 만나서 그 '질문'을 화두로 얘기를 많이 나눈다고 했다. 도대체 국악이란 무엇인가? 서양음악을 편곡해서 국악기로 연주하면? 요즘 가요를 국악기로 연주하면? 아리랑을 서양악기로 연주하면? '전통'을 중시해온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향이 연주한 가요 '빨간 맛'은 클래식인가? 피아노 3중주로 연주하는 '다이너마이트'는?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게임음악은? 분명한 건 많은 대중이 이런 곡들도 '클래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음악계 인사들 중에서는 '그게 무슨 클래식이야?' 할 분들도 많을 것 같지만. 솔직..
팡팡의 우한일기가 한국에서도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려고 봤더니 아직 시중 서점에는 없다. 인터넷 주문을 해야 할까 보다. 지난 3, 4월에 팡팡의 웨이보와 블로그를 들락날락했었다. 당시 우한일기 마지막 편을 보고 썼던 글. 3월 25일 0시 22분. 중국 우한에 사는 작가 팡팡은 차이신(财新)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3月24日。우한 봉쇄 제 62일. 그리고 내 기록 제60편. 이제 최종편이라 해도 되겠다.” 이렇게 시작한 3월 24일자 일기 마지막 문장은 성경의 한 구절이다. 디모데후서에 나오는 바울의 말이다. “那美好的仗我已经打过了;当跑的路我已经跑尽了;所信的道我已经守住了”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공동번역 성경) 3월 24일은 우한시가 4월 8일 도시 봉..
소프라노 박혜상이 부른 한국 가곡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라는 곡을 처음 접했을 때, 작곡가가 궁금했습니다. 박혜상은 이 곡을 자신의 도이치그라모폰 데뷔 앨범에 실었습니다. 도이치그라모폰 앨범 120여 년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가곡이 실린 것이지요. 박혜상은 대학 시절 출전했던 콩쿠르에서 이 곡의 작곡가 김주원과 나란히 수상했던 인연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인터뷰를 위해 김주원 작곡가를 만났습니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는 2012년 제4회 세일한국가곡콩쿠르 작곡 부문 1위 곡입니다. 김주원 작곡가는 이 콩쿠르 참가 당시 20대 후반으로, 가곡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요즘은 조금 바뀌었습니다만, 당시에는 이 콩쿠르 작곡 부문 예선을 통과하면 본선 지정 시가 나왔다고 ..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하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라는 한국 가곡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섭섭하지만 아주 섭섭한 게 아니라 좀 섭섭한 듯만 하다'는 말,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으시죠? 그 뒤에는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가 이어집니다. 가사에서 한국어의 섬세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이 노래가 클래식 음악 명가인 독일의 도이치그라모폰 앨범에 실렸습니다. 소프라노 박혜상의 도이치그라모폰 데뷔 앨범입니다. 한국어로 부른 한국 가곡이 앨범에 실린 것은 120여 년 도이치그라모폰 역사상 처음입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중심으로 전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소프라노 박혜상은 클래식 음악계가 주목하는 '라이징 ..
‘공연장을 벗어나는(脫) 공연’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얘기를 듣고, 영국에서 본 오페라 한 편을 제일 먼저 떠올렸다. 10여 년 전에 본 공연이지만 그만큼 인상이 선명했다. 영국 연출가 그레이엄 빅(Graham Vick)이 이끄는 버밍엄 오페라 컴퍼니의 오페라 ‘이도메네오’였다. 그레이엄 빅은 로열 오페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같은 유명 오페라 극장에서 활동하는 연출가이면서, 1987년 자신이 창립한 ‘버밍엄 오페라 컴퍼니’의 작업에 열정을 쏟아왔다. 그레이엄 빅은 30여 년 전부터 대중이 오페라에 대해 느끼는 ‘장벽’을 없애기 위해 ‘탈 공연장’을 시도했다. 그는 바그너 이후 표준이 된 오페라 극장은 오케스트라가 무대와 관객을 이어주는 역할에서 벗어나 시야에서 사라지고, 관객이 어둠 속으로 물러나면서 ..
‘패왕별희’(Farewell My Concubine, 覇王別姬)는 리비화(李碧华)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중국의 천 카이거 감독이 연출한 1993년작 영화다. 장궈룽(장국영), 공리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했다. 베이징 경극학교에서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경극배우 뎨이와 샤오러우, 그리고 샤오러우의 여인 쥐셴의 엇갈리는 관계와 비극적인 운명이 일본의 중국 침략과 국공내전, 문화대혁명 등 중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 펼쳐진다. ‘패왕별희’는 ‘패왕이 우희와 이별한다’는 뜻으로, 유방과 패권을 겨뤘던 영웅 항우의 비극적 말년, 항우와 우희의 사랑을 담은 대표적인 고사이다. 영화에서는 뎨이가 우희 역을, 샤오러우가 항우 역을 맡는 경극 ‘패왕별희’가 중요한 소재이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모티브가 된다. 영화 ‘패왕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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