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발레, 하면 떠올리는 그림이 있다. 순백색 의상을 입은 여성 무용수들이 신비스러운 자태로 줄지어 서서 마치 공기처럼 가볍고 우아한 몸짓으로 춤추는 모습, 바로 ‘발레 블랑(백색 발레)’이다. 발레 블랑은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태어났다. ‘백조의 호수’ ‘지젤’ 그리고 ‘라 바야데르’등이 발레 블랑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발레 블랑은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 어스름한 달빛이 비치는 밤, 숲 속이나 호숫가 같은 곳을 배경으로 한다. 푸르스름한 조명 아래 백색 발레 의상은 더욱 빛나고, 무용수들의 몸짓은 우아하고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이들은 우리와 같은 세속의 인간이 아니다. ‘백조의 호수’에선 마법에 걸린 백조들이, ‘지젤’에선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죽은 처녀들이 윌리라는..
오랜만에 본 발레 '라 바야데르'. '발레 블랑'(백색 발레)의 진수를 보여주는 '망령의 왕국' 장면은 역시 감탄스럽다. 단순한 아라베스크 동작이 보여주는 저 아름다움이라니! 국립발레단의 '칼군무' 멋지다. '라 바야데르'는 볼 때마다 '지젤'이 생각난다. 현실세계에 대비되는 초현실적 세계, '지젤'의 윌리들은 '라 바야데르'의 망령들이다. 우유부단한 남자 주인공에게 배신당하고 죽음을 맞는 여주인공이라는 구도도, 여주인공을 짝사랑하는 또다른 남자들이 있는 것도, 남주인공을 차지하는 신분 높은 여자가 있는 것도, 남주인공이 회한에 젖어 이미 저세상의 혼령이 돼버린 비련의 여주인공과 춤추는 것도 비슷하다. 비슷한 구도라지만 '라 바야데르'는 '지젤'보다 훨씬 스케일이 크고 보는 재미가 있는 대작임에는 틀림없..
‘빌리 엘리어트’라는 영화 보신 분들 많으시죠? 영국의 탄광촌 소년 빌리가 발레를 배우면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인데요, 발레리노가 된 성인 빌리가 무대에서 도약하며 정지하는 마지막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단순히 ‘어려운 환경 속에 발레리노가 되는 소년의 성공담’이 아니라, 광산 노동자 파업이라는 영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과 얽히는 빌리의 가족, 친구들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영화였습니다.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지요. 영화 ‘빌리 엘리어트’ 이야기를 꺼낸 건 제가 인도에서 ‘빌리 엘리어트’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웬 인도냐고요? 지난주 국립발레단의 한-인도 수교 40주년 기념 공연을 취재하기 위해 인도 뉴델리를 다녀왔거든요. 국립발레단은 뉴델리 현지에서 공..
국립발레단이 지난해 '전석매진' 기록을 세운 파리 오페라 발레단 버전의 '지젤'을 3월초에 다시 공연합니다. 이 '지젤'을 계기로 각 언론들이 '발레 열풍'을 대서특필했었지요. 지난해 '지젤'을 보고 썼던 얘기이긴 합니다만, 앙코르 공연을 앞둔 지금 봐도 괜찮을 듯한 내용이 있어 다시 올려봅니다. ‘지젤’은 많이 아시다시피 19세기 로맨틱 발레의 걸작으로 불리는 작품입니다. 19세기 낭만주의의 흐름을 타고, 1841년 테오필 고티에의 대본, 장 코랄리, 쥘 페로의 안무로 파리 가르니에 극장에서 초연됐지요. 당시 시대를 풍미하던 발레리나 카를로타 그리지가 주역을 맡았습니다. 이후 ‘지젤’이라는 역은 프리마 발레리나들이 가장 탐내는 역 중 하나가 됐습니다. ‘지젤’은 ‘지젤’이라는 이름의 시골 처녀를 주인공..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영감을 제공해 왔다. 영화, 연극, 뮤지컬, 발레 등등 수많은 장르로 다시 만들어졌다. 내가 본 다양한 장르의 ‘로미오와 줄리엣’만 해도 수십 종이 될 것 같다. 내가 본 ‘로미오와 줄리엣’ 가운데 최고로 꼽는 작품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가 안무한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마이요는 1960년 프랑스 태생으로 모나코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몬테카를로 발레단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인,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안무가다. 그의 작품 ‘라 벨르’나 ‘신데렐라’도 한국에서 소개된 바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1996년 발표된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2000년 국립발레단의 공연으로 초연됐다. 당시 로미오와 줄리엣은 김용걸-김지영, 로렌스 신부와 캐..
초등학교 1학년 둘째가 토요일 백조의 호수 리허설을 보고 나서 그린 그림. 객석 한 줄에 쭉 사람들을 앉혀놓고는 '엄마, 검정이 나쁜 애야?' 하고 묻고, 내가 '응. 그래' 하고 대답하는 장면을 그렸다. 둘째는 흑조가 나오는 2막이 훨씬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백조들이 빙빙 도는 장면은 지겨웠다고. "백조들이 왜 계속 뛰어다니는지 모르겠어' 하면서. 둘째는 일요일에도 '백조의 호수' 보러 가고 싶다고 했는데, "어제 다 봤는데 같은 걸 또 보고 싶어?" 했더니, 대답이 걸작이다. "어? 똑같은 거야? 난 또 백조랑 왕자랑 결혼하고 나서 얘기가 나오는 줄 알았지." 국립발레단에 '백조의 호수' 2편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다. '
토요일 발레 '백조의 호수' 리허설을 봤다. 제 1회 대한민국 발레축제 개막작인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는 원래 일요일 하루 공연인데 본 공연을 볼 형편이 안돼서, 양해를 구하고 아이들까지 데리고 가서 공연 직전 리허설을 본 것이다. '백조의 호수'는 참 여러 번 본 작품이지만, 봐도 봐도 지루하지 않다. 이번 공연에는 김지영 씨가 백조 오데트와 흑조 오딜을, 정영재 씨가 지크프리트 왕자 역을 맡았다. 김지영 씨는 이탈리아 공연을 다녀오더니 더 살이 빠졌다. 가까이서 보면 너무 말라서 안쓰러울 정도인데, 무대에서 뿜어내는 포스는 대단했다. 그녀의 백조는 가슴을 아리게 했고, 그녀의 흑조는 옆에서 보던 딸이 헉 소리를 낼 정도로 요염했다. 정영재 씨는 좋은 무용수인데, 표정이나 감정 연기가 평면적이라는 ..
* SBS가 주최하는 서울디지털포럼 올해 행사가 다음주로 다가왔다. 나는 2009년과 2010년 서울디지털포럼 기획 부서에서 일했다. 내가 맡았던 여러 업무 중에서 나는 특히 공연 세션 기획에 많은 공을 들였다. 공연을 취재하던 기자에서, 공연을 직접 기획하는 입장이 돼보니,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게 보였다. 이제 보니 내가 기획했던 국립발레단 세션은 다시 보기 어려운 공연이 돼 버렸다. 당시 출연했던 네 명의 무용수 가운데 세 명-김현웅, 장운규, 박세은-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지금은 국립발레단 소속이 아니니까. 이 글의 맨 마지막 문장에도 썼지만, 나는 또 어떤 예술가들의 세션을 꾸밀까 궁리를 하고 있던 중에, 문화부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2011 서울디지털포럼이 다가오니 '공연기획자'로 살았던 ..
국립발레단이 발레 '코펠리아'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다. 지난해 공연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전막 해설발레다. 지난해 극장 용에서 공연될 때 이 공연을 딸들 데리고 봤고, 올해 토월극장에서 다시 봤다. 이번엔 김준희 씨가 해설을 맡았다. 토월극장이 발레에 그리 적합한 공연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두번째로 보는 공연도 재미있었다. 지난해 공연 보고 썼던 글을 다시 올려본다. 예전 블로그에 썼던 글을 어떻게 이리 다 옮겨오나 걱정했는데, 이런 식으로 계기가 있을 때마다 하나씩 옮겨오기로, 마음 편하게 먹기로 했다. 아이들과 함께 공연 보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괜찮은 공연 관람 파트너였던 은우는10대에 들어선 이후 반항기가 생기는지 엄마가 좋아하는 공연이라면 질색..
국립발레단의 '왕자 호동' 프레스 리허설을 보고 왔다. 김용걸 씨가 호동 왕자로, 김리회 씨가 낙랑 공주로 출연했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으로 파리 오페라발레단에 동양인 최초 남자무용수로 입단해 솔리스트까지 승급하며 활약하던 그 김용걸이다. 이제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가 오랜만에 친정인 국립발레단 무대에 선 것이다. 비록 프레스 리허설이긴 했지만, 무대에 선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도 감개무량했다. (사실 김용걸 씨가 이 공연에 출연하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현웅 씨가 술자리에서 후배 이동훈 씨를 때려 이씨가 부상을 당했다. 두 사람은 당초 '왕자 호동'에 주역으로 출연할 예정이었지만, 김씨는 사건 이후 사표를 냈고, 이씨는 부상으로 출연이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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