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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지젤'. 김지영-이동훈 주역

 


국립발레단이 지난해 '전석매진' 기록을 세운 파리 오페라 발레단 버전의 '지젤'을 3월초에 다시 공연합니다. 이 '지젤'을 계기로 각 언론들이 '발레 열풍'을 대서특필했었지요. 지난해 '지젤'을 보고 썼던 얘기이긴 합니다만, 앙코르 공연을 앞둔 지금 봐도 괜찮을 듯한 내용이 있어 다시 올려봅니다. 


‘지젤’은 많이 아시다시피 19세기 로맨틱 발레의 걸작으로 불리는 작품입니다. 19세기 낭만주의의 흐름을 타고, 1841년 테오필 고티에의 대본, 장 코랄리, 쥘 페로의 안무로 파리 가르니에 극장에서 초연됐지요. 당시 시대를 풍미하던 발레리나 카를로타 그리지가 주역을 맡았습니다. 이후 ‘지젤’이라는 역은 프리마 발레리나들이 가장 탐내는 역 중 하나가 됐습니다.

 

‘지젤’은 ‘지젤’이라는 이름의 시골 처녀를 주인공으로 한 2막 발레입니다. 지젤이 신분을 숨긴 귀족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에게 약혼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져 죽는 게 1막의 내용입니다. 2막은 ‘서양판 처녀귀신’인 ‘윌리’들이 모여 사는 숲이 무대입니다. 윌리는 지나가는 남자들을 죽을 때까지 춤추게 만드는 방법으로 여성을 배신한 남성들에게 복수하는데요, 지젤의 무덤을 찾아왔다가 윌리의 포로가 된 알브레히트는 지젤의 사랑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다는 내용이 2막에서 펼쳐집니다.

 

1막의 무대는 지젤이 사는 시골 마을. 밝고 명랑한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지젤이 알브레히트의배신을 알고 광기에 빠져 괴로워하다 죽는 장면으로 끝나는 극적인 구성이 압권입니다. 2막은 완전히 분위기가 바뀌어 로맨틱 튀튀(우산처럼 생긴 짧은 치마 ‘클래식 튀튀’와는 달리, 폭이 넓고 긴 치마입니다)를 입은 윌리들의 군무가 몽환적인 아름다움으로 빛납니다.

 

국립발레단이 이번에 공연하는 ‘지젤’은 파리 오페라발레단의 부예술감독 파트리스 바르가 오리지널에 충실하게 안무한 버전입니다. 파트리스 바르는 지난해 첫 공연 때 한국에 한동안 머무르면서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을 지도했습니다. 의상과 무대 역시 해외 스태프들이 맡아 공들여 새로 제작했습니다.

 

‘지젤’은 마임이 굉장히 섬세하고 많이 나옵니다. 동작을 찬찬히 살펴보며 뜻을 짐작해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지난해 공연 때 들은 얘긴데 안무가 파트리스 바르는 자신의 ‘지젤’ 버전에 표면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설정을 숨겨놓고, 이를 마임으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지젤이 사랑하는 알브레히트는 이미 공작의 딸인 바틸드와 약혼한 사이인데요, 이 바틸드는 알고 보면 지젤과 배다른 자매지간이라는 설정입니다. 즉 공작은 왕년에 지젤의 어머니와 관계를 맺은 적이 있고, 이 결과 지젤이 태어났다는 것이지요. 출생의 비밀이 흔히 등장하는 ‘막장 드라마’ 같은 설정이지요?

 

파트리스 바르의 이 설정에 따르면 지젤과 바틸드는 아버지가 같은 자매이면서, 한 남자 알브레히트를 두고 경쟁하는 구도가 됩니다. 지젤 모녀는 2대에 걸쳐 귀족에게 농락당하는 셈이 되는 것이기도 하고요.  지젤의 어머니가 공작을 처음 봤을 때 흠칫 놀라는 것, 그리고 공작 일행이 지젤의 집으로 잠시 쉬러 들어갈 때, 공작이 지젤의 턱을 들어올려 유심히 쳐다보는 것 등이 이런 설정을 뒷받침하는 마임입니다. 


사실 저는 이 얘기를 듣기 전에는 공작이 지젤의 턱을 들어올려 유심히 쳐다보는 걸, ‘얼굴 꽤나 반반하게 생겼군’ 하고 탐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짐작했었어요. 자세한 사정 모르는 관객들이 안무가의 이런 ‘설정’을 척 하고 알아채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용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그런 구도라면 지젤과 바틸다의 처지가 더욱 대조적으로 사무치게 다가올 수 있고, 지젤의 어머니가 지젤을 바라보는 심정이 더욱 절절해질 것 같더라고요. 그러니 연기에 현실감과 깊이를 더할 수 있겠지요.

  3월 1일부터 4일까지 열리는 이번 '지젤'의 주역은 김지영-이동훈, 김주원-이영철, 이은원-이재우, 박슬기-김희현 이렇게 네 커플이 맡습니다. 국립발레단의 보도자료는 네 명의 지젤을 이렇게 묘사했더군요. 


"지젤 라인의 대명사로 알려진 김주원과 완벽한 테크닉에 원숙한 연기가 무르익어 최고의 무대를 선보이는 김지영. 2011년 지젤로 데뷔해 가장 주목받는 신인 이은원. 지방무대에서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으며 당당히 예술의전당에 서게 된 박슬기. 이들이 선보이는 각기 다른 색깔의 지젤" 


각기 개성있는 지젤과 만나는 나흘간의 공연. 안무가가 숨겨놓은 막장 드라마 코드도 알고 본다면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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