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레드 벨벳의 인기곡 '빨간 맛'의 오케스트라 버전 음원과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 오케스트라 버전은 최근 아카데미 회원이 된 영화음악 감독 박인영 씨의 편곡으로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연주한 것이다. 서울시향은 지난달 SM엔터테인먼트와 장르 간 협업을 위한 업무 협약을 맺었는데, 그 이후 첫 번째 협업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서울시향이 K팝을 연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외에서는 유명 오케스트라들이 대중음악을 연주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록그룹 스콜피언즈와 함께 '윈드 오브 체인지'를 연주한 게 유명한 사례다. 영국 로열 필하모닉은 클래식뿐 아니라 팝의 명곡을 즐겨 연주하는데, 영국 대표 록그룹 퀸의 노래를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연주한 음반을 내놓기도 했다. 전 세계적인 K팝의 인..
날씨는 야외공연의 중요한 변수다. 특히 고가의 섬세한 악기가 많이 동원되는 클래식 공연의 경우 궂은 날씨 속 야외공연은 난감한 일이다. 지난 10일 베이징 자금성에서 열린 야외공연에 참가한 상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 역시 궂은 날씨로 ‘악전고투’했다. 가을 날씨로는 이례적으로 영상 3도라는 낮은 기온에 바람까지 불어 체감 온도는 영하로 내려갔다. 상하이 심포니의 공식 위챗(한국의 카카오톡에 해당하는 SNS) 계정을 보니 이 공연을 위한 분투를 짐작하게 하는 사진과 글들이 올라와 있다. 상하이 심포니 단원들은 이 공연 연습을 위해 긴 국경절 연휴까지 포기했다. 베이징에 도착해서는 추위와 싸워야 했다. 스태프들은 급히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생강차와 핫팩을 준비했다. 몸에 핫팩을 붙이고 있는 단원들의 사진이 이..
크리스마스와 송년 분위기 물씬한 12월은 공연계 성수기다. 특히 매년 이맘때면 으레 무대에 오르는 송년 레퍼토리들은 변함없이 인기를 누리며 연말 공연 특수를 이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손꼽히는 송년 레퍼토리는 뭐니뭐니 해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다. 한국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12월에는 날마다 전세계 어디선가 이 ‘합창’이 공연되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합창’은 베토벤이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에서 작곡한,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다. 연중 언제 연주해도 좋은 곡이지만, 특히 송년 레퍼토리로 사랑 받는 것은 아마도 이 교향곡이 ‘합창’이라는 이름을 갖게 해 준 4악장 덕분일 것이다. 4악장에 나오는 합창은 프리드리히 쉴러의 ‘환희의 송가’에 곡을 붙인 것이다. ‘오 친구여!’로 시작..
*이 글은 서울시향이 1월 25일에 취소됐던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관현악 하이라이트 공연을 5월 7일에 열기로 결정하기 전에 쓰였습니다. 메세나협회에서 발간하는 잡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지난 1월 25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예술의전당에서 열 예정이었던 콘서트가 정명훈 예술감독의갑작스러운 허리 통증으로 취소되었다. 공연을 고대해 왔던 관객들이 실망한 것은 당연지사. 더구나 이 공연에서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관현악 하이라이트가 국내 초연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더욱 아쉬움이 컸다. 바그너는 세계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아직도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작곡가다. 성악이 중심인 이탈리아 오페라와는 달리, 바그너의 오페라는 화려하고 웅대한 관현악이 중심이 된다. 오케스트라 편..
지난주 금요일(1월 25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서울시향의 그레이트 시리즈-바그너 공연이 갑작스럽게 취소됐습니다. 이유는 지휘자 정명훈 씨의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 공연 직전인 저녁 6시쯤에 취소된 것이라 상황이 굉장히 급박했지요. 정명훈 씨가 어떻게든 공연을 하는 방향으로 해보겠다며 막판까지 취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가 도저히 서 있을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 눈물을 머금고 취소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멘붕’ 사태였습니다. ‘불금(불타는 금요일)’에 공연 관람 스케줄을 잡아 놨다가 갑자기 취소되니 관객들은 얼마나 허탈했을까요? 공연이 취소된 것을 모르고 예술의전당까지 갔다가 현장에서 알게 된 일부 관객들은 항의도 많이 했다는데, 그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공연 취소 결정을 내려야 했던 정..
서울시향 북미 투어 취재기 첫번째...SBS 뉴스 웹사이트에 취재파일로도 올린 글입니다. “서울시향이 정말 그 정도로 잘 해요?” 서울시향 북미투어를 취재한 제 8시뉴스 리포트를 보고, 회사 후배가 이렇게 물어왔습니다. 제 기사는 서울시향의 북미 4개 도시 투어에서 매번 기립 박수가 나올 정도로 호응이 뜨거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미국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립하는 모습을 화면으로 보고서도, 이 후배는 한국 오케스트라가 그 정도로 해외에서 대접 받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우수한 한국인 솔리스트는 많지만, 한국 오케스트라의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게 오랫동안 통설이었으니까요. 서울시향은 캐나다 밴쿠버(오피엄 극장. 4월 15일)에서 시작해 미국 시애틀(베나로야 홀..
서울시향 정명훈 예술감독의 연봉이 과다하다는 주장에서 시작됐던 '논란'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금도 정명훈 감독의 명성이 부풀려졌다는 주장이 몇몇 인사들에 의해 반복되고 있다. 서울시향의 상임작곡가이기도 한 진은숙 씨가 이와 관련해 장문의 자필 '반론'을 서울시향을 통해 각 언론사에 보냈다. 진은숙 씨는 최근의 상황을 보면서 잠을 제대로 못 이루고 진행 중이던 작업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근심하고 있다 한다. 그의 마음이 느껴지는 글이다. 아주 긴 글이지만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정독할 가치가 있다. 자필 원고는 너무 용량이 커서 워드로 다시 정리한 글을 PDF파일로 올린다. (덧붙이자면, 제가 직접 워드로 다시 친 건 아니랍니다. 저도 지인으로부터 받은 거예요.^^)
지휘자 정명훈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나는 정명훈을 비판하는 글들에 '정명훈은 MB가 데려온 사람이니 몰아내야 한다'는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왜곡된 정보가 상당히 많이 동원됐다고 생각한다. 왜곡에 대한 지적에는 아예 귀를 닫고 정명훈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진보인가? 이건 보수 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정명훈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정명훈도 비판 받을 게 있으면 받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정명훈을 공격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허점이 많고 비상식적이다. 이런 논리가 힘을 얻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태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었으나, 정명훈 공격의 선봉에 서있는 김상수 씨가 첫 글을 쓴 지도 꽤 시일이 지나 그간의 과정을 정리하는 것 자체가 지난한 과제로 느껴졌다. 게다가 다..
22일 서울시향이 말러 교향곡 8번, '천인 교향곡(Symphony of a Thousand)'으로 말러 시리즈의 대장정을 마친다. '천인 교향곡'이지만, 여러 사정상 실제로 천 명이 하는 경우는 드물고, 4백명~5백명 정도가 출연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번 공연에는 성인 합창단 250명, 어린이 합창단 80명, 오케스트라 150명 정도가 출연해 500명 가까운 인원이 무대에 서게 된다. 더 출연하고 싶어도 예술의전당 무대가 좁아서 힘들 거란다. 서울시향은 연습 장소 구하는 데도 애를 먹었다고 하니, 웬만해서는 공연하기 쉽지 않은 레퍼토리임에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략 10년에 한 번씩 공연됐던 기록이 있다. 원래는 공연을 하루 앞두고 열리는 리허설을 취재해 보려 했다. 그런데 오늘의 충격적인 뉴스-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영감을 제공해 왔다. 영화, 연극, 뮤지컬, 발레 등등 수많은 장르로 다시 만들어졌다. 내가 본 다양한 장르의 ‘로미오와 줄리엣’만 해도 수십 종이 될 것 같다. 내가 본 ‘로미오와 줄리엣’ 가운데 최고로 꼽는 작품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가 안무한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마이요는 1960년 프랑스 태생으로 모나코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몬테카를로 발레단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인,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안무가다. 그의 작품 ‘라 벨르’나 ‘신데렐라’도 한국에서 소개된 바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1996년 발표된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2000년 국립발레단의 공연으로 초연됐다. 당시 로미오와 줄리엣은 김용걸-김지영, 로렌스 신부와 캐..
‘베토벤 바이러스’ 드라마가 뜨면서 ‘~마에’라는 명칭이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해졌다. 김명민 씨가 맡았던 까칠한 지휘자는 극중 성이 강씨라서 ‘강 마에’로 불렸다. ‘마에’는 ‘마에스트로’를 줄여서 부르는 말. ‘마에스트로(maestro)는 ‘거장’이라는 뜻으로 오케스트라 지휘자나 작곡가에 대한 경칭으로 많이 쓰인다. 그런데 ‘마에스트로’는 남성형이다. 그럼 여성 지휘자는 뭐라고 부르나? 바로 ‘마에스트라(maestra)’다. 사실 서양에서도 클래식 음악계는 굉장히 보수적이고 여성들에게 벽이 높았다. 빈 필하모닉은 오랫동안 여성 단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단원들도 그런데 지휘자는 말할 것도 없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100여 명의 단원들을 통솔해 자신의 원하는 음악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
* SBS가 주최하는 서울디지털포럼 올해 행사가 다음주로 다가왔다. 나는 2009년과 2010년 서울디지털포럼 기획 부서에서 일했다. 내가 맡았던 여러 업무 중에서 나는 특히 공연 세션 기획에 많은 공을 들였다. 공연을 취재하던 기자에서, 공연을 직접 기획하는 입장이 돼보니,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게 보였다. 이제 보니 내가 기획했던 국립발레단 세션은 다시 보기 어려운 공연이 돼 버렸다. 당시 출연했던 네 명의 무용수 가운데 세 명-김현웅, 장운규, 박세은-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지금은 국립발레단 소속이 아니니까. 이 글의 맨 마지막 문장에도 썼지만, 나는 또 어떤 예술가들의 세션을 꾸밀까 궁리를 하고 있던 중에, 문화부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2011 서울디지털포럼이 다가오니 '공연기획자'로 살았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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