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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가 주최하는 서울디지털포럼 올해 행사가 다음주로 다가왔다. 나는 2009년과 2010년 서울디지털포럼 기획 부서에서 일했다. 내가 맡았던 여러 업무 중에서 나는 특히 공연 세션 기획에 많은 공을 들였다. 공연을 취재하던 기자에서, 공연을 직접 기획하는 입장이 돼보니,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게 보였다.

이제 보니 내가 기획했던 국립발레단 세션은 다시 보기 어려운 공연이 돼 버렸다. 당시 출연했던 네 명의 무용수 가운데 세 명-김현웅, 장운규, 박세은-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지금은 국립발레단 소속이 아니니까.

이 글의 맨 마지막 문장에도 썼지만, 나는 또 어떤 예술가들의 세션을 꾸밀까 궁리를 하고 있던 중에, 문화부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2011 서울디지털포럼이 다가오니 '공연기획자'로 살았던 그 때 생각이 난다. 지난해 클럽 발코니 픽스 매거진에 기고했던 글이다.

나는 SBS 보도국 ‘미래부’에서 일한다. 미래부는 SBS에만 있는 부서다. 언론사가 그날그날의 뉴스를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장기적인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부서다. 주요 업무 중 하나는 매년 봄에 열리는 서울디지털포럼 행사를 기획. 진행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이다.

2008년 가을, 1년간의 영국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미래부에서 일하게 됐을 때, 나는 약간 걱정스러웠다. 이전에 미래부에서 일했던 기자들은 IT 분야의 취재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내가 무슨 ‘디지털’과 관련이 있다고. 연수 이전에 근무했던 문화부는 미래부 바로 옆에 있었지만, 미래부가 하는 일에 크게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이래서야 미래부 업무를 제대로 해 낼 수 있을까. 

2009년 서울디지털포럼의 주제는 ‘STORY’로 정해졌다. 반드시 IT 분야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리더들의 ‘STORY’를 들어보자는 취지였다. 포럼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예술가들의 세션을 만들어보자, 나아가 공연을 세션에 포함시켜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는 서울디지털포럼이 벤치마킹하는 해외 포럼의 사례를 참고한 결과이기도 했다. 빙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예술가 세션을 위해 수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여러 예술가들을 접촉한 끝에, 서울시향 음악감독 정명훈 씨의 세션, 그리고 국립발레단의 세션이 확정되었다. 섭외 과정도 쉽진 않았지만, 섭외는 시작에 불과했다. 공연이 들어오면서 무대와 조명, 카메라 촬영, 음향, 진행 등 모든 것이 싹 바뀌어야 했다. 나는 온갖 기술적인 문제를 중간에서 조율하고, 브로셔 제작에서부터 진행자 대본, 현장 안내 스크린과 방송 프로그램 자막 원고까지 떠맡아 골머리를 앓았다. 

 

려움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피아노가 으뜸이었다. 정명훈 씨가 서울시향 수석단원들과 함께 연주까지 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서울시향 측에서는 피아노의 구체적인 사양은 물론이고 조율은 누가 해야 하는지까지 알려왔다. 피아노 업체에 공문을 보내고 협찬을 요청했다. 생전 처음으로 해보는 일이었다. 

그럼 피아노는 어떻게 무대에 올리고, 뺄 것인가? 많은 세션이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피아노는 정명훈 씨 세션 직전에 무대로 올라왔다가, 세션이 끝나자마자 퇴장해야 했다. 나는 무대 디자이너한테 잘 보여야 했다. 피아노 크기는 얼마나 되는지, 피아노가 어느 정도의 경사진 통로를 이동할 수 있는지, 온갖 세세한 상황을 무대 디자이너에게 전달하고, 제대로 반영이 되는지 점검했다. 무대 디자이너는 피아노를 밀어 올릴 수 있도록 경사로를 설치했고, 피아노가 대기할 수 있는 무 대 뒤 공간을 확보했고, 무대 장치는 피아노가 드나들게 미닫이로 열리도록 설계했다. 

포럼 전날. 우여곡절 끝에 피아노가 도착했다. 2시간 동안 다른 무대 작업과 리허설을 ‘올 스톱’ 시키고 조율을 했다. 이어진 공연 리허설에는 다른 공연 일정 때문에 오지 못한 정명훈 씨와 서울시향 단원 대신 다른 연주자들을 섭외해 음향, 조명, 카메라 위치 등을 점검했다. 서울시향 관계자의 조언을 얻어 악기 위치를 정하고 카메라 앵글과 조명 위치도 이에 맞췄다. 피아노 건반을 생생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카메라 한 대를 추가로 설치했다. 피아노의 등 퇴장도 실전처럼 연습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정명훈 씨가 매니저를 통해 공연 먼저, 강연 나중으로 돼 있는 순서를 바꿔달라는 뜻을 전해온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순서도 이미 한 차례 바뀐 것이었고, 지금 또 다시 바꾸려면 상당한 혼란을 감수해야 했다. 서울디지털포럼은 방송을 위한 녹화까지 이뤄지는 포럼이다. 순서 하나 바뀌면 카메라 워킹과 오디오, 조명, 진행 대본 등 모든 걸 다 뜯어고쳐야 한다. 나는 ‘순서가 아주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그냥 예정대로 가주셨으면 좋겠다’고 양해를 구했고, 세션은 원래 예정됐던 대로 공연-강연의 순서로 진행하기로 했다. 

드디어 포럼이 개막됐다. 정명훈 씨 세션은 포럼 첫날 오후에 잡혀 있었다. 바로 전 세션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전날 연습한 대로 피아노를 무대 전면으로 끌어내 정해진 위치에 놓았다. 보면대와 의자도 놓았다. 순식간에 공연을 위한 준비가 끝나서, 철저하게 준비한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정명훈 씨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거, 피아노 위치가 왜 이렇지?”

무대 위로 올라온 정명훈 씨가 피아노 위치가 틀렸다면서 직접 소매를 걷고 피아노를 밀기 시작한다. 어어, 이러면 안 되는데. 스태프들이 저쪽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뭐라고 외친다. 공연 직전에 이렇게 피아노 위치가 바뀌면 어제 조명과 카메라 앵글을 맞춰놓은 게 다 허사가 된다는 얘기일 테지. 무대 진행요원들은 당황해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저, 선생님, 피아노 위치가 많이 잘못됐나요?”

 "그래요, 이거 이렇게 하면 안돼요.”

정명훈 씨의 어조는 단호했다. 이를 어쩌나. 할 수 없다. 이번엔 예술가가 하자는 대로 해야지. 나는 소매를 걷어붙였다.

 

“선생님, 피아노 옮기는 건 저희가 할 테니까 놔두세요. 얼마나 옮겨야 하는지만 알려주시고요.”

정명훈 씨는 그래도 계속 피아노를 밀었고, 무대 진행요원들과 내가 합세했다. 카메라 감독과 조명 감독이 ‘상당히 강한 어조로’ 어필하는 게 계속 들려왔지만 못 들은 척 했다. 진땀이 다 났다. 

피아노가 다시 자리잡은 뒤에 공연은 시작됐다. 브람스의 피아노 4중주 1번 1악장과 4악장. 훌륭한 연주였지만, 나는 마음 편하게 즐길 수가 없었다. 한 공연기획자가 ‘나는 내가 기획한 공연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아니, 제대로 볼 수가 없다’고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어두운 구석에 선 채로, 무대보다는 청중석 쪽을 더 많이 쳐다봤다. 

세션 기획과정에서, 포럼 청중은 클래식 공연의 관객과는 다르기에, 실내악 연주를 어려워하거나 지루해 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 적이 있다. 나는 괜찮을 거라고 주장했지만, 실제 공연이 시작되자 약간 조마조마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우였다. 청중은 완벽하게 공연에 몰입하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자 커다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일부는 기립까지 했다. 내가 박수를 받은 양 흐뭇했다. 정명훈 씨의 강연도 기대 이상이었다. ‘최고의 세션’이었다는 평가를 여러 사람한테 들었다. 

(이 세션은 TV로 녹화 중계됐는데, 정명훈 씨가 피아노 치는 장면의 앵글이 ‘과연’ 약간 삐딱하다. 방송 화면의 질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방송 스태프들에게는 큰 문제였을 것이다. 일반 시청자들이야 별로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마찬가지로, 피아노 위치가 약간 비뚤어진 것도 다른 사람은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연주자에게는 큰 문제일 것이다.


 


포럼 둘째 날 국립 발레단 세션도 준비가 만만치 않았다. 충격을 흡수하는 무용 공연용 바닥재를 새로 깔아야 했다. 설치에 시간이 걸려 전날 밤에 미리 시공하고, 포럼 둘째 날은 첫 세션부터 이 바닥을 깐 채로 진행하기로 했다. 발레 공연이 생소한 방송 스태프들을 위해 나는 리허설 때 무대 이쪽저쪽을 오가며 언제 무용수가 어느 쪽에서 등장하는지, 언제 조명이 켜지고 꺼져야 하는지를 입이 아프도록 설명했다. 진행자 대본도 직전까지 고치고 또 고쳤다. 

국립발레단의 세션은 ‘STORY’라는 주제에 맞춰 ‘몸짓으로 이야기하다’라는 제목으로 열렸다. 포럼의 ‘부대행사’가 아니라, 포럼의 주제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으로서 발레 공연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이번에도 무대 옆쪽 구석에 서서 공연을 지켜봤다. 김주원-장운규, 박세은-김현웅 조가 각각 보여준 ‘지젤’의 아다지오, ‘돈키호테’의 그랑 파드되는 발레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도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처음으로 공연 세션을 도입한 2009년 서울디지털포럼의 시도는 성공적이었던 셈이다. 나는 그간의 고생을 잊고 흐뭇하기만 했다. 포럼이 끝나고 며칠 뒤, 뒤풀이가 열렸다. 공연 세션 준비하면서 겪었던 일들이 화제에 올랐고, 스태프들 가운데 한 사람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내년 포럼에도 공연 또 하는 거야?’ 했다. 누군가가 이 말을 받았다. “공연 꼭 해야 한다면, 웬만하면 피아노하고 발레는 빼 줘!”

나는 2010 서울디지털포럼에서도 공연 세션을 맡아 기획했다. ‘다행스럽게도’ 피아노는 아니었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의 세션이었다. 문화부 시절 인터뷰가 너무나 흥미로웠던 기억을 떠올려 나름대로 ‘확신’을 갖고 기획한 세션이다. 그런데 올해도 난 별 이유도 없이 조마조마해서 세션 내내 객석에 앉지 못한 채 구석에서 청중 얼굴을 힐끔힐끔 훔쳐보고 있었다. 황병기 선생의 세션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평가가 좋았다. 진솔한 강연은 물론이고, 공연 애호가가 아닌 다음에야 실제로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가야금 연주에 열광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나는 포럼을 준비하면서 친분 있는 공연 기획자들에게 여러 차례 의견을 구하곤 했다. 이건 어떻게 해요? 저건 어떻게 해요? 귀찮게 물어대는 나에게 한 공연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김 기자가 왜 우리가 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정말 그랬다. 공연장에서 열리는 정식 공연도 아니고, 표를 파는 공연도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포럼의 공연을 기획하면서,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공연 기획자의 애환을 조금이나마 느껴본 셈이다.

온갖 자잘한 디테일에 골머리를 앓고, 예술가의 말 한마디에 전전긍긍하고, 관객 반응에 목숨 걸고, 자기가 기획한 공연을 편안히 앉아서 보지 못하고, 공연이 끝난 뒤 쏟아지는 박수가 마치 나를 향한 것인 양 흐뭇해 하는 기획자의 삶. 언제까지 미래부에서 일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 일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확실하다. 올해 포럼이 끝나자마자 내년에는 어떤 예술가를 섭외할까, 어떤 세션을 꾸밀까 궁리하기 시작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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