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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공연이 참 많아요. 관객 입장에선 보고 싶은 공연이 같은 날 겹쳐서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많지요. 어제 저는 미샤 마이스키의 패밀리 콘서트를 보고 싶었습니다만, 아이들 때문에 같은 날 열린 바비 심포니 음악회를 보러 갔어요. 어린이들에게는 재미있는 음악회였지만, 저는 미샤 마이스키의 연주는 어땠을까 내내 궁금하고 아쉬웠어요.

취재 기자 입장에서도 요즘은 공연 일정이 너무 많이 겹쳐요. 4, 5월 들어서 하루에 공연 관련 취재 일정이 세 건 이상인 날이 꽤 많습니다. 내일만 해도 국립오페라단 '사랑의 묘약' 프레스콜, 뮤지컬 '헤드윅' 프레스콜, 국립극단 '아놀드 웨스커의 키친' 프레스콜이 있네요. 아, 첼리스트 다니엘 리 리사이틀, 엔니오 모리꼬네 공연도 있네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옵니다. (프레스콜이란 개막 전에 취재진에게 공연을 공개하는 것을 말합니다. 공연을 다 보여주는 경우도 있고 하이라이트만 보여주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지금 음악을 비롯해 공연의 전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데요. 예나지금이나 방송사 문화부 인력은 그리 넉넉지 않습니다.(다만 대중음악 분야는 후배가 합니다) 제가 1998년에 처음 문화부 근무 시작했을 때도 그랬죠. 장르 가릴 것 없이 정말 많이 취재하고, 보러 다녔습니다. 다행히 전 장르를 그닥 가리지 않는 잡식성이거든요. 

그 때만 해도 공연 수가 이렇게까지 많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정말 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요. 일정 챙기기가 버거울 정도예요. 그렇다고 공연기사를 소화할 수 있는 뉴스 시간이 늘어난 것은 아닌데, 보도자료 챙겨서 읽어보고, 중요한 일정 챙기는 데에만 에너지가 많이 소모됩니다. 일정을 다 챙겨서 간다고 해도 다 기사로 소화할 수도 없는데, 요즘 공연계 돌아가는 걸 알려면 가 봐야 하는 것들이 많아서, 빠지기도 마음이 불편합니다.

며칠 전 대학 동기들을 만나서 속이 뜨끔해지는 얘기를 들었어요. 전 학부 전공이 경영학이었기 때문에 금융계, 재계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많고, 이 친구들은 경제 기사 잘 챙겨봅니다. 그런데 그러더라고요. 요즘 기자들 너무 엉터리라고. 기사 보면 이 기자가 알고 쓴 건지, 그냥 남의 얘기 들은 대로 쓴 건지, 표가 확 난다는 겁니다.

그게 어디 경제 기사만 그렇겠어요? 문화 기사도 마찬가지겠지요. 공연장 한 번 안 가고, 사람 안 만나고, 자잘한 일정 쫓아다니지 않아도, 사무실에 앉아서 보도자료만 받아서 공연 기사 쓸 수는 있습니다. 편하게 공연 기자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쓰는 기사는 어디서든 표가 난다고 생각해요. 알아보는 사람들은 다 알아봅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공연을 다 볼 수 없어서요. 다 취재할 수 없어서요.

제가 뉴스에 소개하는 공연들, 다 보지 못합니다. 공연의 전 장르를 맡고 있으면서, 전 장르의 중요한 공연들을 다 가서 본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요. 방송뉴스 제작을 위해선 저녁 시간에 회사에 들어와야 하는데, 거꾸로 밤에 취재 나가야 하는 공연 기자의 속성상 힘든 측면도 있고요.

그래도 예전엔 되도록 많이는 보려고 애를 썼습니다만, 요즘은 더욱 힘드네요. 솔직히 나이 들어 체력도 딸리고, 아이들도 커서 더더욱 엄마를 필요로 하고요. 공연 취재 열심히 하면 좋은 엄마 못 합니다. 일찍 퇴근할 수 없으니까요. 남들은 공연 많이 봐서 좋겠다 하지만, 공연 관람을 일로 하는 건, 암만 제가 공연을 본래 좋아했다 해도 쉽지 않아요. 공연 보러 가는 날은 거의 100퍼센트 저녁을 굶는다고 보면 됩니다. 항상 시간이 빠듯해서 밥을 먹을 수가 없어요. 공연 보고 귀가하면 밤 11시 12시가 보통이죠.  

이렇게 예전에 비해 기운이 빠진 건 사실입니다만,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볼 생각입니다. 취재하지 못하는 공연, 직접 보지 못하는 공연에 마음이 쓰이는 건 아직은 저한테 일에 대한 애정이나 욕심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공연 취재 더 이상 못하겠다 싶다가도, 가끔 좋은 공연 만나면 신이 나서 남들에게 알리고 싶어지는 것도 그래서이겠지요. 기사로는 만족 못해 새벽까지 블로그 글을 붙들고 있는 것도 그래서이겠지요. 이게 남아있는 한은 헉헉거리면서도 공연 취재를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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