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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조수미 인터뷰 기사를 SBS 8뉴스에 냈다. 조수미 데뷔 25주년을 맞아서 한 인터뷰였다. 일반적인 방송 뉴스 리포트에서보다는 인터뷰이의 육성이 많이 나갔다. 이 중에는 조수미의 "아이유 노래 듣고 놀랐다. 아주 독특하고 뛰어난 가창력이다"라는 얘기도 있었다.

사실 인터뷰할 당시 조수미의 이 말을 듣고 '연예매체 같았으면 벌써 이 제목으로 기사 하나 썼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방송 나가고 나서 주변 사람들은 '아이유를 제목으로 했으면 시청률에서 이득을 봤을 거'라고 했다. 딸아이도 '엄마, 딴 건 기억 안 나고 아이유 얘기만 기억 나' 했다.

 사진: 조수미가 묵고 있던 호텔에서 인터뷰를 끝내고 잠시 피아노 치면서 노래하는 장면을 찍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조수미는 흔쾌히 응해줬다. 리날도 중의 '울게 하소서'. 잠깐이었지만 같이 갔던 촬영스탭 한 명은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를 들었다.

 조수미가 아이유 얘기를 한 것은 내가 '다른 사람들이 노래한 것도 많이 찾아 들으세요?' 하고 물었을 때였다. 그녀는 요즘 가수들이 아주 열심히 하고 잘 하더라면서 '드림 하이'에 특별출연했던 얘기를 꺼냈다. 수지와 택연. 그리고는 아이유 얘기를 했다. "비행기에서 들었는데, 아이유라는 가수라고 하더라고요. 노래 듣고 놀랐어요. 독특한 가창력으로 잘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국 와서 인터넷으로 찾아봤죠."

조수미는 '드림하이' 첫 회에 잠깐 특별 출연해 성악가 지망생 수지와 함께 라크메의 '꽃의 이중창'을 불렀다. 물론 수지는 목소리 대역을 썼지만. 그러고 보니 아이유도 '드림하이'에 출연했는데, 조수미는 전체 드라마는 보지 못했으니 그 사실은 모르는 것 같았다.

조수미가 요즘 아이돌 가수를 알고 있다는 것은, 그냥 지나가는 얘기였을지 모르지만, 의미있게 들렸다. 조수미 자신에겐 클래식 음악가가 본업이지만, 그의 관심은 클래식 음악에만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활동으로 대중을 만나왔으니까. 드라마 주제곡, 영화 음악, 뮤지컬 음악, 방송 출연 등으로 자신의 넘치는 끼를 발산해 왔으니까. 조수미는 '클래식 음악, 오페라를 어려워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게 현실이니, 이런 분들을 위해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조수미가 장르를 넘나드는 활동으로 대중과 친근한 스타가 된 것과, 아이유를 언급한 것이 얼마간 연관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뉴스 리포트에서 인터뷰를 그런 맥락으로 썼다.

지난 주말 공연을 보러 가서 프로그램 책자를 보니, 음악 칼럼니스트 노승림 씨의 글에 공감이 갔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 보련다.

 대중성은 언제나 진지함과 이분법을 이뤄왔다. 그 대립각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더욱 첨예하게 보인다. '정통은 언제나 대중성보다는 한 수 위이며 언제까지나 정통이어야 하는 법'이라는 알 수 없는 고지식한 편견이 한국 클래식 음악 시장을 지배해 왔다. 클래식 음악가가 영화음악이라든가 팝음악과 같은 '클래식이 아닌 음악'에 잠시 한눈이라도 팔았다가는 소위 '진지한 청중'으로부터 곧바로 외면당해버리기 일쑤다. 오히려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인 유럽 청중들이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더 관대하게 여겨질 지경이다.
소프라노 조수미는 이런 이분법의 대표적 피해자 중 한 명이다. 넘쳐나는 끼를 주체 못해 드라마 주제가를 부르고 크로스오버를 지향하면서 팬 층은 더욱 확대되었지만 그동안 '진지한 팬'들은 상당수 실망한 듯 보인다. 하지만 유럽 정통무대에서 그녀의 대한 평가가 여전히 유효한 것을 보면, 이런 편견은 단지 한국에만 국한된 것으로 보인다."

조수미는 지난 토요일, '학구적인' 프로그램이었던 아카데미 오브 에인션트 뮤직과 바로크 레퍼토리로 공연을 마치자마자  부랴부랴 달려가 케이블 채널 의 '오페라스타' 프로그램 마지막회에 출연했다. '오페라스타'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이른바 '정통'과 대중성'을 한 데 모아놓은 프로그램이다. 가수들이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게 하고, 평가를 시청자 투표에 맡기는 것이다. (물론 전문심사위원단이 있긴 하지만, 순위를 정하는 결정적 요인은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시청자들의 문자투표다) 

사실 '오페라스타'는 지난주부터 '다음주 깜짝 놀랄 스타가 출연한다'는 예고를 해왔고, 나는 그게 조수미가 아닐까 추측했었다. 그래서 인터뷰할 때 '오페라스타'에 출연하게 되느냐고 물었더니, 조수미는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 공연 끝나자마자 가야 해서 너무 일정도 빡빡하고...... 그런데 오페라스타 좀 보세요?' 하고 거꾸로 물어왔다. 

나는 '네, 요즘 그 프로그램 재미있어요. 저희 집에서도 열심히 보고 있거든요. 가수들이 오페라 아리아를 배워가는데, 점점 발전해 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노래 잘하는 가수가 오페라도 잘 하더라고요." 라고 대답했다. 조수미가 출연을 최종 결정한 것은 그 이후라는데, 괜찮은 프로그램이라는 내 얘기가 조금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이건 그냥 혼자만의 망상일지도 모르겠지만^^)

'오페라스타'는 실제로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어느 정도는 기여한 바가 있는 것 같다. 출연한 가수들도 한결 같이 얘기한 것이었지만, '오페라가 이렇게 좋은 줄 예전에는 몰랐어요'랄까. 실제로 내 딸도 '오페라 스타'를 통해 많은 오페라 아리아를 알게 되었고, 프로그램이 끝나도 아리아를 찾아서 듣고 있는 중이다. 뭔가 고급스러운 클래식 음악의 이미지를 오락 프로그램에 이용한 사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른바 '정통'과 '대중성'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준 것 아닐까.

조수미는 '오페라스타'의 특별 무대에서 '라 트라비아타'의 '아 그이였던가'를 불러서 객석의 열럴한 갈채를 받았다. (이 아리아는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곡이 끝나는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대목이 중간에 있다. 여기서 객석의 기립 박수가 터져나오는 바람에 결국 끝까지 부르지 못한 게 안타깝긴 했다.) 그리고 사회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진지하게, '쓴소리'도 한 마디 했다. 바로 '오페라스타'라면 결승에서 오페라 아리아들을 부르는 게 좋았을 것'이라는 지적을 한 것이다. 안 그래도 '오페라스타' 마지막 회에서 불려지는 노래들이 모두 영화음악이거나 칸초네 종류고, 진짜 오페라 아리아는 한 곡도 없어서 아쉽던 참이었다.

대중성과 진지함은 공존할 수 있다. 조수미의 존재 자체가 이를 웅변하고, '오페라스타' 같은 프로그램들도 작으나마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조수미가 아이유 노래 칭찬한 걸 방송뉴스의 제목으로는 쓰지 못했다. 다른 내용이 메인이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선 이런 주제로 쓰는 글이니, 제목으로 써도 '낚시'라고 분개하는 사람들은 없겠지? 바라건대 내 글도 '대중성과 진지함'이 공존할 수 있는 글이 됐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이런 제목으로 올리면 정말 클릭수가 급증할까? 그럼 그건 아이유의 힘일까? 궁금하다.^^)

사진: 아카데미 오브 에인션트 뮤직 리처드 이가가 한복으로 갈아입고 고악기 편곡으로 앙코르 곡 '꽃구름 속에'를 연주한 뒤 객석의 갈채에 답례하는 중. 한국 관객들을 배려한, 꽤나 기분 좋은 팬 서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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