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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합창단(Virtual Choir)에 대해 들어보셨는지. 얼마 전 TED 2011(TED는 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의 약자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적인 컨퍼런스의 이름이다. 내가 이런저런 글을 통해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다)에서 에릭 휘태커가 소개해 갈채를 받은 프로젝트다. 에릭 휘태커는 40대 초반의 미국 작곡가로, 합창곡과 오케스트라 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보그 모델로도 활동할 만큼 수려한 외모로도 유명하다.

 에릭 휘태커는 강연에서 먼저 자신이 합창 음악의 매력에 빠졌던 결정적인 순간을 회상한다. 그는 대학교 다닐 때 합창단에 예쁜 여자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구경 갔다가, 합창단이 모차르트 <레퀴엠> 중 ‘키리에’를 부르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나보다 큰 무엇인가에 소속된 듯한 느낌’ ‘많은 사람들이 비전을 함께 하는 느낌’이 그를 매료시킨 것이었다. 그는 합창단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 지금은 합창곡을 쓰는 작곡가가 되었다. 

그가 ‘가상 합창단’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그의 소녀 팬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을 보고 나서였다. 이 영상에는 그가 작곡한 <Sleep>이란 곡의 소프라노 라인을 소녀가 자신의 방에서 부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는 이 영상에서 영감을 받아, 서로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이 각각 합창곡의 성부를 나눠 부르는 영상을 올리면 이걸 합쳐서 ‘가상 합창단’을 조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에릭 휘태커는 <Lux Aurumque>라는 자신의 곡을 직접 지휘하는 영상과 녹화 요령을 유튜브에 올리고, 이 지휘에 맞춰 노래를 불러줄 ‘가상 합창단원’들을 모집했다. 전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각각 테너와 베이스, 소프라노, 알토 등 자신의 성부를 부르는 모습을 동영상에 담아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 <Lux Aurumque> 가상 합창단에는 12개국에서 185명이 참여했다. 소프라노 솔로도 동영상 오디션을 거쳐 뽑았다. 이 동영상을 모아서 마치 실제로 합창단이 한 자리에 모여 에릭 휘태커의 지휘에 맞춰 노래하는 것처럼 편집한 영상은 유튜브에 올려져 60일 만에 1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지금은 200만 조회수가 넘었다.)

<Sleep>은 에릭 휘태커의 두 번째 가상합창단 프로젝트 곡이 되었다. Virtual Choir 2.0. 이번에는 첫 번째 프로젝트 때보다 중,장년층이 더 많아졌고, 참가국도 더 다양해졌다. 당초 목표는 900명을 모으는 것이었지만, 참여 열기가 뜨거워 전세계 58개국에서 2,051명의 비디오가 도착했다. 에릭 휘태커는 가상 합창단이 부르는 <Sleep> 영상의 일부를 TED에서 처음 선보였다. 싱가폴에서, 미국에서, 영국에서, 남녀노소 각양각색의 단원들이 내는 목소리가 합쳐져, 장엄하고 아름다운 화음이 빚어지는 광경은 경이로웠다. ‘커다란 무엇인가에 소속된 느낌’, ‘많은 사람들이 비전을 함께 하는 느낌’ 그대로였다.

에릭 휘태커는 합창단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는 것을, ‘각자의 고독한 섬에서 메시지를 담은 병을 띄워 보내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가상 합창단’은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을 찾고 교류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 합창단은 ‘가상의 관계’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연결되는 느낌을 갖는다고 그는 말한다. 이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면 참여했던 사람들은 모두 한 가족처럼 친밀해진다는 것이다.  

지난해 피아니스트 랑랑을 인터뷰했을 때 그는 ‘기술이 음악세계를 확장시킨다’고 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었는데, 올해 동영상 오디션으로 뽑힌 전세계의 연주자들이 시드니에 모여서 마이클 틸슨 토머스의 지휘로 함께 연주한 ‘유튜브 오케스트라’에 이어, 에릭 휘태커의 ‘가상 합창단’ 프로젝트까지 접하게 되니, 과연, 하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에릭 위태커가 다시 한번 가상 합창단 프로젝트를 하게 된다면 그때는 나도 참여해 보고 싶다.

(사족 한 가지. 에릭 휘태커는 올해 5월 SBS가 주최하는 2011 서울디지털포럼에 연사로 방문할 예정이다. 마침 올해 서울디지털포럼의 주제는 ‘Connected’다. 에릭 휘태커의 ‘가상 합창단’이야말로 ‘Connected’라는 주제를 강력하게 보여주는 예가 아니겠는가. 그의 TED 강연 http://youtu.be/2NENlXsW4pM에 반한 내가, 서울디지털포럼 사무국에 그를 연사로 적극 추천한 결과다.)

*씨엘로스 클럽 웹진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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