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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후원'이라면, 돈 많은 기업인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현실이 그렇기도 하다. 수많은 공연들이 기업의 후원을, 또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무대에 올라간다. 대기업의 경우는 협찬금액도 억 단위일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런 후원은 대규모 극장에서 올려지는, 이름 있는 공연들에 한정된다.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같은 주요 공연장들은 대개 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거액의 돈을 내는 저명인사들이 포진하고 있는 이런 후원회 역시 일반인들에게는 멀게만 느껴진다.

최근 나는 '뛰다'라는 이름의 극단이 보내온 연차보고서를 우편으로 받았다. 이 연차보고서는 극단 '뛰다'의 지난해 활동과 재정상황 보고,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을 자세하게 담고 있었다. 나한테 왜 이 보고서를 보냈을까 생각하다가, 이 극단의 공연을 2005년에 취재한 적이 있어서, 그 때 연락처로 보낸 게 아닌가 짐작했다. 연차 보고서를 읽다 보니, 후원회원 500명을 모집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1달에 2만원씩 내는 '뛰다'의 서포터를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후원회를 만드는 게 '뛰다'가 처음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민간 단체들도 후원회를 운영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 대표의 개인적 연줄을 매개로 하는 인맥 모임에 가까워서 본격적인 '후원회'라고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뛰다'의 후원회원 모집은 본격적으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식적인 후원제도를 표방한 것이라서 내 눈길을 확 잡아끌었다.  

극단 '뛰다'는 대학로나 다른 지역의 극장을 대관해 공연을 올리고, 이 공연 수입으로 또 다음 공연을 준비하고, 하는 일반적 극단 운영체제에서 벗어나 있다. 이 극단은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해 폐교 건물을 극단의 본거지로 사용하면서, '지역 밀착형' 혹은 '공동체형' 연극, '축제형' 연극을 시도해왔다. 예를 들어, 여러 축제에서 공연했던 '쏭노인 퐁당뎐'은 '유목형 연극'을 표방하고 있다.  단원들은 공연이 이뤄질 지역에 텐트를 치고 머무르면서 연극을 준비하는데, 그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열어 주민들이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역할을 맡아 연극에 출연하도록 한다. (아래 사진은 쏭노인 퐁당뎐 워크숍. 출처 극단 '뛰다'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theatrefarm)

예술단체들의 활동은 사회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공공 지원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뛰다'는 현재 극단 운영비의 많은 부분을 공공 지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지원은 영구적인 지원이 될 수는 없는 법. 경제, 정치 상황에 따라 쉽게 변동하는 정부 지원에 극단의 생존을 맡길 수는 없다는 게 극단의 판단이었고, 이에 따라 마련한 자구책이 소액 후원회원을 모집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니 첫번째 이유는 '재정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돈 때문에 후원회원을 모집하는 것만은 아니다. 후원회비 2만원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적극적 관심의 표출이다. 후원회원은 '뛰다'라는 극단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이런 운영 방식에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동지'를 모으는 것이다. 소액 후원회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텐데도 굳이 500명이라는 숫자를 설정한 것은 이유가 있다. 긴밀한 관계 설정을 위해서는 그 수가 너무 많으면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은 모집 단계라서 세밀한 계획까지 세우진 못했지만, 후원회원들이 참여하는 연극 워크숍을 한다든지,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든지, 후원회원들간의 모임을 마련한다든지 하는, 특별한 '체험'을 생각하고 있다. 


최근 문화예술위원회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이라는 새로운 예술후원창구를 만들었다. 다수의 개인 기부자가 소액을 내서 예술가의 특정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것이다. 예술위가 공모를 통해 선정한 예술가의 프로젝트를 홈페이지에 소개하면, 일반인들이 예술위 홈페이지(www.arko.or.kr)에 들어가 인터넷 결제로 소액을 기부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첫번째 크라우드 펀딩 수혜자는 이원국 발레단과 시각미술 작가 박기원 씨다. 이원국 발레단은 140명이 모아준 500만원으로 다음번 발레 공연 '돈키호테'의 의상비를 충당하게 된다. 1,000원에서 수십만원까지, 다양한 액수의 기부금이 답지했다. 박기원 씨 역시 소액 기부자들이 모아준 500만원을 다음번 설치미술 작업에 사용하게 된다. 예술위에서는 모금 기간을 한 달로 잡았는데, 예정보다 일찍 모금이 마감됐다고 한다.

예술위에서는 크라우드 펀딩 목표액을 일정 기간 안에 모금하지 못하면, 기부자들에게 다시 돈을 돌려주는 방식을 택했다. 이렇게 '긴장감'을 조성하는 게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단다. 이 펀딩은 수익을 남겨 투자자에게 배분하는 일반적인 펀딩과는 달리, 참가자에게 금전적인 보상은 없다. 대신 리허설 참관, 전시 오프닝 초청, 예술가와 대화 등으로 '소통'하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예술위는 '복지 분야에서는 소액 기부가 활성화 돼 있는데, 아직 예술 후원에 대해서는 생소하게 여기는 현실을 좀 바꿔보고 싶다'고 한다. '예술가들이 가난하니 도와주자'라기보다는, 여럿이 공유하게 되는 예술 작품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이에 공감하는 일반인들이 간접적으로나마 예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기부에 참여한 시민들은 '단순히 보고 즐기는 수동적 입장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예술가의 작품 활동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는 게 기쁘다'고 했다.

영국에서 연수할 때, 다양한 방식으로 일반인들의 예술 후원이 이뤄지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국내에서도 일반인들의 예술 후원이 활성화돼서, 지금까지 기업의 거액 후원이나 공공 지원에 의존해온 예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줬으면 좋겠다. (SBS 취재파일로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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