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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울시향이 1월 25일에 취소됐던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관현악 하이라이트 공연을 5월 7일에 열기로 결정하기 전에 쓰였습니다. 메세나협회에서 발간하는 잡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지난 1월 25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예술의전당에서 열 예정이었던 콘서트가 정명훈 예술감독의갑작스러운 허리 통증으로 취소되었다. 공연을 고대해 왔던 관객들이 실망한 것은 당연지사. 더구나 이 공연에서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관현악 하이라이트가 국내 초연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더욱 아쉬움이 컸다.
바그너는 세계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아직도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작곡가다. 성악이 중심인 이탈리아 오페라와는 달리, 바그너의 오페라는 화려하고 웅대한 관현악이 중심이 된다. 오케스트라 편성이 방대하고 구성이 복잡해 연주가 어렵다. 게다가 오페라 한 편이 때로는 대여섯 시간에 이를 정도로 길고 스케일이 크다. 웅장한 관현악을 뚫고 소리를 내야 하는 성악가 입장에서도 쉽지 않다. 이렇게 바그너는 연주가 어려워 한국에서 자주 공연되지 못했다.
하지만 바그너 탄생 200주년인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서울시향의 바그너 공연은 취소됐지만, 조만간 다시 열릴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향이 이 공연에 쏟았던 열성이나 관객의 기대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바그너 생일인 5월 22일에는 한국 바그너협회 주최로 생일 축하 공연이 열린다. ‘니벨룽의 반지’ 4부작 가운데 두 번째 작품인 ‘발퀴레’의 1막을 오페라 콘체르탄테로 선보인다. 국내외 바그너 전문가수들과 KBS 교향악단의 협연이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폭격 장면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발퀴레의 비행’ 음악으로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10월에는 국립오페라단이 바그너 오페라 ‘파르지팔’을 무대에 올린다. 바그너 최후의 걸작으로 꼽히는 ‘파르지팔’의 국내 초연인데다, 구르네만츠 역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베이스 연광철이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손꼽히는 화제작이 될 만하다. 국립오페라단은 특히 금관악기가 큰 역할을 하는 바그너의 웅장한 관현악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해외 관악 주자들도 초청할 예정이다.
바그너 탄생 200주년 기념공연들은 우리 음악계에 그만큼 다양성이 확보되었다는 걸 보여준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연주단체들이 대규모의 후기 낭만주의 교향곡을 많이 연주하면서 바그너 작품을 연주할 수 있는 기초 체력을 갖췄다. 또 연광철, 사무엘 윤처럼 바그너 오페라의 본산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성악가들이 등장하면서 바그너 음악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즉 바그너를 연주하고, 들을 만한 여건이 마련되었다는 뜻이다.
바그너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알고 보면 바그너는 클래식 음악 사상 가장 대중에게 친숙한 멜로디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결혼식에서 신부가 입장할 때 연주되는 ‘결혼행진곡’이 바로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곡이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세계 어디선가는 이 곡이 연주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든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든 멜로디다. 마찬가지로 바그너의 오페라에는, 들으면 들을수록 이렇게 귀를 사로잡는 음악으로 가득하다.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맞아 한국에서도 차려지는 ‘생일 잔칫상’이 그 동안 자주 연주되지 못했던 바그너 음악의 매력을 새롭게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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