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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뮤지컬 '인당수 사랑가'가 곧 10주년을 맞아 새단장을 하고 공연에 들어간다 한다. 

오래 전에 보고 '애정'했던 공연이라 반갑다. 


2007년 2월, 이 공연을 보고 옛 블로그에 글을 썼었다.  

'인당수 사랑가'를 쓴 박새봄 작가를 만나보고 싶다고 썼었는데, 트위터를 시작하면서 만났다^^ 

박새봄 작가는 새로 공연을 올리면서 참고하기 위해 

남들이 옛 공연을 보고 쓴 글을 읽어본다는데, 내 글도 가끔 찾아 읽어본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이 글을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게 되었고, 그김에 이 곳으로 옮겨왔다. 

이 글을 다시 읽으니 새로운 '인당수 사랑가'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진다. 궁금하다.  


 

*여기서부터는 2007년에 옛 블로그에 썼던 글이다. 


요즘 주변에서 '볼 만한 공연을 추천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대학로에서 하는 소극장 뮤지컬이나 연극을 보러 가라고 권유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국립 극장 같은

'대극장'에서 하는 공연이면 무조건 좋은 공연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런 극장에서 하는 공연들이

자체 기획 과정이나 대관 심사를 거친 것들이기 때문에

대부분 웬만큼의 수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내가 본 공연들 중에서는 

소극장 공연이 대극장 공연보다 대체로 만족감이 높았던 것 같다.

소극장 공연은 대개 입장료도 훨씬 저렴하니,

굳이 대극장 공연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최근에 본 인상적이었던 소극장 공연 하나. 뮤지컬 '인당수 사랑가'다.

사실 이 공연, 나름 '유명하다'. 태풍 올 때 노무현 대통령이 삼청각에서 봤다는 바로 그 공연이다.

모 신문에서는 당시 '공연 고르는 안목은 또 왜 그 모양이냐'는 얘기도 썼다고 하던데,

대통령이 태풍 올 때 공연 보는 게 문제가 될 수는 있을지라도

많은 공연들 중에 이 공연을 고른 '선택'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당시 공연 장소였던 삼청각이 청와대에서 멀지 않았던 것이 중요한 이유였을 수도 있지만.


 어찌 됐든 '인당수 사랑가'는

당시 대통령이 봤던 공연이라는 유명세까지 안고 꽤 인기를 끌었는데,

이후에도 여러 차례 공연되면서 계속 수정 보완을 거듭했다고 한다.


 줄거리는 심청가와 춘향가를 합쳐놓은 듯한 내용이다  

눈먼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효녀 춘향이가 사또 아들인 이도령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이도령 아버지인 사또의 반대로 헤어지게 되고,

과거에 급제하면 돌아오겠다던 이도령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춘향이 앞에 신관 사또 변학도가 나타난다....


 뮤지컬은 친숙한 줄거리를 차용하고 변형시켜 새로운 이야기로 빚어냈다.

특히나 악역으로만 여겨졌던 변학도는 아주 매력적인 인물로 다시 탄생했다.

달밤에 혼자 정자에 앉아 술을 마시는 풍류가 헛되이 느껴지지 않고,

춘향의 싱그러운 젊음과 순수함에 끌리는 마음이

'여색만을 탐하는' 탐관오리의 작태 같아 보이지 않는다.


 서울 간 이도령에게서는 소식도 없는데,

이도령과 맺은 찰나의 인연, 그 사랑의 약속을 믿고 살아가는 춘향은

많은 사람들에게 '헛된 꿈에 매달려 살아가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고,

이런 춘향에게 변학도는 '삶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아느냐'고 충고하며 다가서려 한다.

춘향의 몸을 '빼앗으려' 하기보다는, 춘향을 설득해 마음을 얻으려 하려 하는 것이다.

세상사 알 만큼 아는 성숙한 남자.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랑 앞에서 고민하는 이 남자.

변학도가 춘향을 얻기 위해 쓰는 '술수'나 거짓말이 결국 비극의 씨앗이 되기는 하지만,

그를 미워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춘향은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서울 가서는 소식도 없는 이도령과 맺은 약속을 굳게 지킨다.

'한 번 마음 열어 사랑했는데, 어떻게 그 마음을 닫아요'라든지,

'기다리는 마음도 죄인가요.' 하는 춘향의 대사는 절절하게 마음을 울렸고,

현실에서는 어려울 것 같아 보이는 사랑의 '영원함'과 '순수함'을 찬양하고 있었다.

'인당수 사랑가'의 작가 박새봄씨, 만나보고 싶다.


 이 뮤지컬은 판소리와 서양의 뮤지컬을 접목한 실험,

도창자가 때로는 등장인물과 대화도 나누며 극을 이끌어가는 양식이 신선했다.

도창은 창극 공연 때 극중 인물이 아닌 사람이 무대 옆에서

판소리의 소리나 아니리로 관객의 흥을 돋우고 해설자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한다.


 때로는 도창자의 판소리와 극중 '뮤지컬 음악'의 조합이 어색하다는 느낌도 없진 않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이 만남이 아주 성공적이어서 독특한 매력을 풍겼다.

춘향가의 한 대목 '사랑가'는 그 어느 사랑의 노래보다도 더 마음을 움직였고,

서양 음악의 어법에 전통악기의 소리를 접목시킨 것도 좋았다.


 동네 처녀들, 포졸들 등을 연기하는 1인 다역의 배우들은 

익살스러운 몸짓과 연기로 객석을 웃음으로 들썩이게 했다.

특히나 방자가 이도령 대신 글 읽는 장면,

끝없이 엉뚱하게 조합해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속담 메들리는

개그 콘서트나 웃찾사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압권'이었다.  

'천냥 빚도 한 걸음부터' '믿는 도끼에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이런 식으로.


 배우들의 가창력이 조금 더 좋았다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인당수 사랑가'는 예상보다 만족도가 훨씬 높은 공연이었다.

그러고 보면 창작 뮤지컬 중에서도 대극장 뮤지컬은 아직 미흡하다는 느낌이지만,

소극장 뮤지컬에서만큼은 반짝거리는 작품들이 많다는 생각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고 따뜻한 소극장 공연들,

배우들의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는 무대를 즐겨 보시길. <20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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