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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 북미 투어 취재기 첫번째...SBS 뉴스 웹사이트에 취재파일로도 올린 글입니다. 

“서울시향이 정말 그 정도로 잘 해요?”

서울시향 북미투어를 취재한 제 8시뉴스 리포트를 보고, 회사 후배가 이렇게 물어왔습니다. 제 기사는 서울시향의 북미 4개 도시 투어에서 매번 기립 박수가 나올 정도로 호응이 뜨거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미국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립하는 모습을 화면으로 보고서도, 이 후배는 한국 오케스트라가 그 정도로 해외에서 대접 받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우수한 한국인 솔리스트는 많지만, 한국 오케스트라의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게 오랫동안 통설이었으니까요.

서울시향은 캐나다 밴쿠버(오피엄 극장. 4월 15일)에서 시작해 미국 시애틀(베나로야 홀. 4월 16일), 산타 바바라(그라나다 극장. 4월 18일), 로스앤젤레스(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4월 19일)까지, 북미 서부 4개 도시에서 공연했습니다. 마지막 로스 앤젤레스 공연까지 취재하고 쓴 ‘결산’ 기사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 4월 21일 SBS 8시뉴스에 나갔습니다만, 이 기사만으로는 아무래도 아쉬워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서울시향은 지난해와 지지난해 유럽 투어를 이미 진행한 바 있습니다. 저는 지난해 유럽 투어 때 영국 에든버러와 독일 브레멘 공연 일정을 동행 취재했는데요, 집중력과 열정을 보여준 연주와 현지 관객들의 열띤 반응에 뿌듯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올해 북미 투어는 두 차례 유럽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서울시향이 유럽과 함께 최대 음악시장으로 꼽히는 북미 대륙에 본격적으로 데뷔한 무대였습니다. (서울시향은 이전에도 미국에서 공연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1회성 문화 교류나 교민 상대 행사에 가까웠습니다.)

서울시향의 이번 투어 프로그램에는 드뷔시의 ‘라 메르’, 라벨의 ‘어미 거위’, ‘라 발스’,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진은숙의 생황 협주곡 ‘수’, 스트라빈스키의 ‘불새’가 포함됐습니다. 도시마다 조금씩 연주 곡목이 달랐는데요, 진은숙 생황 협주곡은 LA에서는 이미 2009년에 초연된 바 있어 연주 프로그램에서 빠졌고,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는 시애틀에서 공연됐습니다. 서울시향이 ‘장기’로 삼는 곡들, 지난번 유럽 투어에서도 연주했던 곡들이 많습니다.

서울시향, ‘정말 그 정도로’ 잘 했습니다. 물론 도시마다 약간씩 편차는 있었습니다만, 서울시향의 연주는 전반적으로 훌륭했습니다. 정명훈 씨는 ‘나는 원래 평가에 인색해서, 웬만하면 연주 후에 잘 했다 이런 얘기 안 하는데, 이번 투어에서는 단원들이 정말 열심히 잘 해 줬다’고 만족감을 표시했습니다. 관객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습니다. 연주가 끝날 때마다 어김없이 기립 박수가 나왔습니다. 공연 후 몇몇 관객들을 인터뷰해 봤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는 평을 들려줬습니다.

미국의 클래식 음악 관객들은 연령대가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편입니다. 이들은 평생 웬만한 유명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죄다 들어본, 말하자면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관객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서울시향의 연주에 열광한 이유는, 뻔한 얘기지만 서울시향의 연주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이들로서는 평생 처음 만나는 한국산, 아니, 아시아산 오케스트라인데, ‘예상보다 훨씬 잘해서’ 놀랐을 겁니다. 호기심이 감탄으로 바뀐 거지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저는 서울시향이 자신 있는 레퍼토리를 골라서, 혼을 담아, 정말 열심히 연주한 것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유럽과 미국에는 서울시향만큼, 혹은 서울시향보다 기량이 뛰어난 오케스트라도 많습니다. 하지만 정명훈 씨는 서울시향처럼 ‘Passion(열정)’이 있는 연주를 하는 오케스트라는 많지 않다고 말합니다. 서양 오케스트라는 기량이 뛰어나지만 ‘기계적인’ 연주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울시향은 한국인들의 ‘열정’을 연주에 담아 들려준다는 것입니다.

저는 정명훈 씨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스타보 두다멜이 이끄는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에서 제가 감동을 받았던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습니다. 단원들 하나하나가 연주에 혼을 담아, 정말 열심히, 정말 즐겁게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으니까요. 서울시향의 연주 역시 그와 비슷한 감동을 저를 포함한 관객들에게 안겨준 겁니다. 물론 열정만 갖고는 안 됐을 겁니다. 정명훈 씨 재임 이후 몇 년간 크게 향상된 서울시향의 기량이 뒷받침된 결과지요. 

LA 공연이 끝난 직후 인터뷰한 미국인 관객 피터 존스—그의 인터뷰는 8시뉴스 리포트에도 나갔습니다—는 바로 그 감동으로 눈시울이 촉촉해져 있었고, 행복한 흥분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수많은 공연을 봤지만, 오늘밤 서울시향의 연주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며 고맙다는 말을 거듭 했습니다. 짧은 시간 이뤄진 인터뷰였지만, 저는 그가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큰 감동을 느껴서 하는 얘기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서울시향이 진은숙의 생황 협주곡을 프로그램에 포함시킨 것은 대단히 성공적인 전략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수많은 명문 오케스트라들이 셀 수도 없을 만큼 여러 번 연주해온 전통적인 레퍼토리보다는, 신선한 현대음악이 관객들에게 더 깊은 인상을 줄 수 있으니까요. 젊은 아시안 오케스트라, 현대음악에 강한 오케스트라를 표방하는 게 괜찮은 전략이라는 얘깁니다.

서울시향은 첫 유럽 투어에서는 진은숙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지난해와 올해 투어에는 생황 협주곡을 프로그램에 포함시켰습니다. ‘진은숙 선생님 곡은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 잘 한다’는 서울시향 스탭들의 말이 과장이 아닙니다. 게다가 생황 협주곡은 생소한 아시아의 전통악기가 주인공이니 서양 관객들에게 더욱 인상적이었을 것입니다. 시애틀 공연 이후 현지 언론은 다른 곡들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평가를 했지만, 특히 생황 협주곡에 가장 큰 비중을 할애해 찬사를 보냈습니다.


진은숙의 생황 협주곡은 아시아의 전통 악기가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아시아 전통음악의 분위기를 지닌 곡은 아닙니다. 아주 현대적인 곡이지요. 생황과 함께 갖가지 생소한 악기가 등장해 실험적 음향을 들려줍니다. 이 곡은 중국인 생황 연주자 우웨이가 없었더라면 탄생할 수 없었습니다. 우웨이의 생황은 전통 악기를 직접 개량한 것입니다. 'mouth organ, 즉, 입으로 불어 연주하는 오르간으로 불릴 정도로 스케일이 크고 다채로운 멜로디를 연주할 수 있습니다. 생황의 '비르투오소'인 우웨이의 연주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저는 이 곡 자체가 '아시아'와 '현대'라는 서울시향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곡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글이 아무래도 더 길어질 것 같습니다. 2편으로 이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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