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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에 쓴 글에서 ‘10대를 위한 연극이야기를 했으니, 이번에는 ‘10대를 위한 음악회얘기를 하려 한다. 바로 최근 괄목상대할 만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마련한 청소년 커플을 위한 음악회얘기다. 11일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에서 열린다
.

청소년 음악회는 사실 방학 때면 주요 공연장에서 종종 열리는 공연이다. 공연 관람을 방학과제로 해야 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청소년 음악회는 방학 중 인기 공연 중 하나다. 청소년 음악회는 대개 해설을 곁들인 입문자용 음악회로 진행된다. 하지만 경기 필하모닉의 청소년 음악회는 청소년 커플을 위한 음악회라고 했으니 타이틀부터 심상치 않다
.

프로그램은 영원한 사랑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주제로 작곡된 곡들이다. 구노, 차이코프스키와 프로코피에프, 번스타인까지(번스타인이 음악을 작곡한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원작에서 10대로 그려진 청춘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한 곡들이 연주된다. 구자범 씨 지휘로 테너 나승서, 소프라노 강혜정 씨가 출연한다. ‘청소년 음악회라지만, 성인 관객들도 구미가 당길 만한 프로그램이다
.

이 음악회는 로미오와 줄리엣 나이인 10대 청소년들을 주 대상으로 한다. 표는 두 장 단위로만 판다. 두 장에 만 원이니 굉장히 저렴하다. ‘커플을 위한 음악회라고는 했지만, 반드시 이성 커플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단짝 동성 친구와 같이 봐도 된다.  만 19세 이상은 입장 불가다. 거꾸로 19금이랄까. 부모와 자녀가 같이 봐도 좋을 것 같은데, 10대들끼리만 볼 수 있게 했다.

경기 필하모닉은 구자범 상임지휘자 취임 이후 첫번째 정기 연주회에서 ‘만 18세 이상 입장방침을 내세워 화제가 됐었다. 말러와 바그너, 슈트라우스를 연주한 이 날 프로그램은 어린이나 청소년 관객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이해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의 연주회를 억지로 숙제 때문에 혹은 다른 이유로 보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 즐길 수 있는 사람만 즐기라는 의도가 담긴 조치였다. (그래서였는지 이 날 공연장 분위기는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경기 필하모닉은 대신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은 따로 마련하겠다고 밝혔었는데, 과연 이번에 청소년만을 위한프로그램을 마련한 셈이다.


이 공연 얘기를 처음에 듣고는 상당히 궁금했다. 기획 자체는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는데, 과연 이성친구와 같이 오는 10대 관객들이 얼마나 될까. 청소년 음악회는 보통 클래식 음악에 관심 있는 부모가 표를 사서 자녀를 보내는, 혹은 함께 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아이들끼리만 들어갈 수 있는 공연 표를, 더구나 청소년 커플을 위한공연 표를 사주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물론 꼭 부모가 표를 사줘야만 공연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공연은 10대가 자신의 문화생활을 결정하는 주체라는 전제 하에 기획된 것 같다. 표 값도 영화 관람료보다 오히려 싸니까 굳이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더라도 용돈을 좀 아끼면 낼 수 있는 돈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10대들이 자발적으로 공연을, 그것도 음악회를 보러 가는 일은 별로 많지 않다. 초등학교 6학년인 내 딸 역시 친구들끼리 표를 사서 영화는 보러 가지만, 음악회를 친구들과 가는 경우는 없었다.  

 

생각난 김에 딸에게 이 음악회 얘기를 해주고는 물었다. 
너 이 음악회 보러 가고 싶니?”

~ 내가 그런 델 왜 가. 커플들 바글바글한데.”

그래? 그럼 너도 남자친구 있으면 같이 보러 갈 생각 있구나?”

아니, 남자 친구 있으면 가까운 극장에서 영화나 보지.”

이게 영화 보는 돈보다 더 싼데?”

그래? 그렇게 싸? 그러다가 망하면 어쩌려고?”

청소년들 보는 거니까 싸게 해야지. 너는 이 음악회에 사람 많이 올 것 같아?”

글쎄, 애들이 관심도 없고, 알려지지도 않았잖아.”

딸은 그러면서 이 음악회에는 예중 예고 언니들이 손 잡고 갈 것 같다고 했다.

10
대의 부모들뿐만 아니라, 10대들에게 직접이 공연을 알리고, 이 공연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평소 클래식 음악계에서 표를 사는 소비자로 생각지 않았던 계층을 대상으로 공연을 홍보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이번 공연을 앞두고 10대를 직접 만날 수 있는 학교나 학원 같은 곳을 찾아 알리는 데 애썼다고 한다.

 

앞에도 썼지만, 10대가 자발적으로 하는 문화생활은 영화 관람 정도에 한정돼 있다. 딸과 얘기하면서 새삼 깨달은 건데, 영화 관람은 그만큼 대중적이고 가까운 곳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문화소비 행위다. 연극은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 하루 한 차례, 많아 봤자 두 차례 공연되고, 음악회는 보통 단 한 차례 공연에 그친다.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사고 시간을 맞추고 공연장까지 가는 수고를 하기에는, 10대들의 관심도 적고 정보도 많지 않다. 


하지만 10대 관객이 없다는 이유로 공연이 만들어지지 않고, 공연이 없어서 관객도 개발되지 않는 상황에 언제까지나 머무를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 전멸하다시피 했던 10대를 위한 공연들이 다양한 기획으로 선보이고 있는 것은, 10대를 키우는 학부모로서도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이번 음악회에 딸을 친구와 함께 보내고 싶지만, 공연이 열리는 장소가 우리 집에서 너무 멀다. 역시나 이번에도 힘들게 됐다.) 경기 필하모닉의 이번 음악회가 얼마나 흥행에 성공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설혹 시행착오를 겪게 되더라도 이런 신선한 실험 혹은 시도는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  

*SBS 뉴스 인터넷 취재파일로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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