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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가을부터 2년간 서울디지털포럼 기획부서에서 일할 때, 나는 문화부 근무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다른 업무와 함께 공연 업무를 맡았었다. 2009년 서울디지털포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기간과 겹쳤었다. 국민적인 애도 기간, 코미디와 예능 프로그램 방영이 줄줄이 취소됐다. 우리도 포럼 프로그램에 포함된 공연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참 회의를 많이 했다.

 

나는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포럼 본 세션을 기획했고, 네트워킹 만찬의 축하 공연 업무는 나와 입사 동기인 PD와 함께 맡고 있었다. 먼저 포럼의 본 세션에 포함됐던 서울시향 실내악 공연과 국립발레단 공연은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네트워킹 만찬의 축하 공연 진행 여부를 놓고는 결정에 진통을 겪었다. 포럼 개막을 불과 며칠 앞뒀을 때의 일이었다.

처음엔 무용단 공연을 빼자, 음량이 큰 곡은 빼고 조용한 클래식 음악 연주로 바꾸자, 등등의 '수정안'이 나왔다. 그래서 급히 새 연주자 섭외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전면 취소로 결정되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만찬 축하공연은 취소하는 게 무난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기획해온 우리는 공연 취소를 출연자들에게 통보하면서 허탈했다. 공연은 취소됐지만 연습 기간 동안의 경비는 지불해야 했다.

 

일하다 보면 이런 상황은 언제든 닥치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예상치 못했던 긴급상황. 어제 예술의전당과 주변 지역이 이번 폭우와 산사태로 큰 피해를 입었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그 많은 전시와 공연은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다. 취재하러, 공연 보러, 수없이 드나들었던 예술의전당이 처참한 모습으로 바뀐 걸 뉴스를 통해 보니, 내 마음도 아팠다. 어제는 조금 무리해서 일부 공연은 예정대로 진행했다고 하는데, 오늘은 모든 전시와 공연이 취소되었다.

 

나는 원래 어제 자유소극장에서 10대를 위한 연극 '쉬반의 신발'을 취재할 예정이었고, 오늘은 경기 필하모닉의 연주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보러 갈 예정이었다. ‘쉬반의 신발은 어제 오전 공연부터 취소되었으니 취재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경기 필하모닉은 어젯밤 늦게 공연 취소를 공고했다. 어제 오후 문의전화를 했을 때만 해도 아직 취소를 결정하진 않은 상황이었다. 아마 최종 취소 결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서울디지털포럼 네트워킹 만찬과는 조금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오랫동안 준비해온 공연을 취소해야만 하는 상황은 나도 겪어봤기에,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부디, 더 이상 비 피해가 악화되지 않았으면. 피해는 하루빨리 복구되기를, 그래서 예술의전당이 예전 모습을 되찾게 되기를 바란다. 이번에 공연 취소의 아픔을 겪은 단체들도 아쉬움을 떨어버리고 다음에 더욱 멋진 공연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글을 쓰던 중에 '쉬반의 신발' 공연기획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내일부터는 다시 정상적으로 공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행이다. 별 차질 없이 공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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