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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반가성(夜半歌声)’, 우리말로는 ‘한밤의 노랫소리’ 정도로 번역되며, 영문 제목은 ‘팬텀 러버(Phantom lover)’인 이 영화는 한국에서 '장국영'으로 알려진 장궈룽(이하 장국영으로 표기)이 주연한 1995년작이다. 가수 출신인 장국영이 천재적인 노래 실력을 가진 배우 ‘송단평’ 역을 맡아 음악적 재능을 과시했다. 장국영의 노래뿐 아니라 비극적인 사랑의 주인공으로 보여준 감성연기 덕에, 송단평은 지금까지도 그가 연기한 주요 캐릭터 중 하나로 꼽힌다.
영화는 1930년대 한 젊은 배우가 지금은 폐허가 되다시피 한 오페라 극장에서 10년 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한 과거의 명배우 송단평과 지주의 딸 두운언의 로맨스를 들려주는 액자 형식으로 진행된다. 송단평이 영화 속 공연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부르는 노래 ‘야반가성’은 장국영이 직접 작곡했다. 감미로운 선율과 가사가 돋보이는 이 곡은 영화의 메인 테마로 여러 번 반복된다.
‘야반가성’의 서울 개봉 당시 관객은 8만 8천여명에 그쳤지만, 이 노래는 영화 자체보다 훨씬 많은 한국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장국영은 이 노래뿐 아니라 <심정상옹(深情相拥):깊은 사랑으로 안아주세요> <일배자실거료니(一辈子失去了你):일평생 당신을 잃었네>도 작곡해 금마장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곡상을 수상했다
‘야반가성’은 사실 중국영화사에서 끊임없이 리메이크되어 온 ‘고전’이다. ‘오리지널’은 1937년 상하이에서 마쉬웨이방(马徐维邦) 감독이 만든 영화다. ‘중국의 히치콕’으로 불리는 마쉬웨이방 감독의 두 번째 유성영화이며 중국 영화사 최초의 공포물로 알려져 있다.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1편(1001
movies you must see before you die)’이라는, 한국에서도 꽤 알려진 책에 포함됐을 정도로, 영화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꼽힌다.
‘야반가성’은 흔히 중국판 ‘오페라의 유령’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야반가성’이 프랑스의 소설가 가스통 르루가 1910년에 발표한 소설 ‘오페라의 유령’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마쉬웨이방 감독은 유럽과 미국에서 이미 공포영화로 만들어진 ‘오페라의 유령’을 모티브로, 중국 배경의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 냈다. ‘야반가성’은 중일전쟁 이후 시대적 상황을 감안해 애국적 색채를 더했는데, ‘오페라의 유령’과는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다.
‘오페라의 유령’의 ‘유령’은 선천적으로 기형적 외모로 태어났고 오페라 여배우를 흠모해 어둠 속에서 온갖 수수께끼 같은 사건들을 일으킨다. 하지만 ‘야반가성’의 송단평은 배우로 활동하며 지주의 딸과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을 하다가, 이 사랑을 막으려는 이들에게 염산 테러를 당해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진 것으로 나온다. 송단평은 자신의 사랑을 처음부터 끝까지 간직하는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그려지며, 젊은 남자 배우가 등장해 송단평의 이야기를 회상 형식으로 전한다.
1937년작 ‘야반가성’의 제작진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내용상 음악의 역할이 큰 영화인데, 중국인민공화국 국가를 작사한 톈한(田汉)이 대본에 일부 참여했을 뿐 아니라 영화에 삽입된 노래의 작사를 맡았다. 작곡자인 셴싱하이(冼星海)는 항일 구국운동에 투신하고 ‘황하대합창’ ‘생산대합창’ 등 수많은 작으로 중국 음악사에 족적을 남겨 ‘인민 음악가’로 불린다. 두 사람이 함께 창작한 <야반가성(夜半歌声)> <열혈(热血)> <황하지연(黄河之恋)>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야반가성’은 여러 장르에서 꾸준히 리메이크되었다. 먼저 마쉬웨이방 감독의 제자인 위안추펑(袁秋枫) 감독이 1962년 발표한 영화가 첫 번째 리메이크작으로 꼽힌다. 이 영화는 본래 마쉬웨이방 감독이 스스로 다시 찍으려다 1962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위안추펑 감독이 이어받아 완성한 것이다. 1985년 양옌푸(杨延晋) 감독은 예술성을 강조한 ‘문예영화’로 ‘야반가성’을 다시 한번 리메이크하는데, 1937년작의 애국적 색채는 옅어진 대신 인간 본연의 고독과 고통을 강조한다.
이어 1995년 앞서 소개한 장국영 출연 영화가 나오는데, 꾸준히 리메이크된 ‘야반가성’의 역사에서 1937년의 원작 못지 않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2005년에는 드라마 ‘야반가성’이 나오는데, 처음부터 장국영 ‘야반가성’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만들어졌다. 이 드라마를 연출한 사람은 바로 1995년작 ‘야반가성’에서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젊은 배우 역할로 출연했던 황레이(黄磊)였다. 이 드라마는 장국영과 황레이가 함께 출연한 영화 ‘야반가성’ 10주년을 기념해 장국영에게 헌정되었다. 30회의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기존의 주요 주제인 로맨스에 우정과 가족애, 욕망, 배반 등의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담았다.
가장 최근에 등장한 리메이크작은 뮤지컬 장르를 택했다. 홍콩의 유명 감독인 가오즈선(高志森)이 연출을, 역시 홍콩에서 활동하는 베이징 출신 배우 자오위안(焦媛)이 주역을 맡아, 8월 16일과 17일 광둥아트센터 대극원에서 초연되었다. 이 뮤지컬 역시 2005년작 드라마처럼 장국영의 1995년작 영화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데, 장국영이 작곡한 노래 세 곡을 모두 뮤지컬에 녹여 넣어, ‘장국영의 노래가 무대 위에 재현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영상 효과를 사용해 뮤지컬이지만 마치 영화 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다.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이,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1986년 작곡한 뮤지컬에 이르러 비로소 최고의 명성을 누리게 된 사실을 상기한다면, 또 작품의 배경이 공연장인 것을 떠올린다면, ‘야반가성’이 뮤지컬 무대로 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뮤지컬 ‘야반가성’은 단 이틀간의 초연 무대에 이어 홍콩에서 본격적으로 공연될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 인터넷에 올라온 관람평들을 보니 아직은 기대한 만큼은 아니라는 의견이 다수인 듯하다.
‘야반가성’이 뮤지컬로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정말 오랜만에 장국영의 노래 ‘야반가성’을 들었다. ‘야반가성’ 뮤지컬을 보러 공연장에 간 많은 중국 관객들도 장국영을 추억하고 싶어서 간 건 아니었을까. 나 역시 영화 ‘야반가성’을 다시 보면서 장국영을 추억해야 할 것 같다.
*네이버 중국 엔터트렌드 코너에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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