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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무(广场舞), 즉 광장에서 여럿이 함께 춤추는 것은 중국 특유의 문화다. 광장이라고 해서 꼭 넓디넓은 장소일 필요는 없고, 건물과 건물 사이, 공터, 놀이터, 다리 아래 등등 약간의 공간만 있으면 충분하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 무렵이 광장무 팀의 주 활동시간이다.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고 리더의 동작을 따라 함께 춤춘다. 내가 살았던 칭다오의 집 앞 광장에도 광장무 팀이 네 팀이나 있었다. 중장년층 여성이 주류였지만 광장무를 추는 아저씨들도 종종 볼 수 있었다.
광장무는 중국에서 공산당 집권 이후 집단 문화활동의 하나로 장려하면서 시작됐고, 특히 1990년대 중국 각 도시에 문화광장이 많이 설치되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하지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요즘 젊은이들에게 광장무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나 추는 것이고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인상이 강하다. 광장무 음악은 종종 민원을 야기하기도 하는데, 소음을 참다못해 광장무를 추는 사람들에게 물벼락이나 오물 세례를 퍼붓는가 하면, 사나운 개를 풀어 쫓아내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이에 따라 중국 당국은 광장무 허용 시간과 음량을 규제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광장무의 인기는 시들지 않고 있다. 은퇴한 연금 생활자나 많은 중장년층 중국인들에게 광장무는 건강과 사교를 위해 없어서는 안될 여가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광장무는 최근 중국 방송의 예능 프로그램으로까지 진출했다. 바로 방영 석 달째에 접어든 안후이 위성채널[安徽卫视]의 새 예능 프로그램 ‘함께 춤춰요[一起来跳舞]’다.
매주 토요일 밤 9시 20분에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중국의 유명 무용가인 진싱(金星)을 전면에내세웠다. 선양 출신의 조선족이며 중국 정부가 인정한 ‘트랜스젠더 1호’무용가로 이름을 알린 그녀는 거침없는 입담으로 ‘진싱 토크쇼’ 등 각종 TV 프로그램 진행자로 명성을 얻었는데, 이번에는 방송에서도 무용이라는 본업으로 복귀한 셈이다. 진싱은 심사위원으로 매회 참가하는 광장무 팀을 평가할 뿐 아니라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을 끌고 간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광장무 작품 안무도 할 계획이다.
진싱은 ‘지금은 광장무 2.0 시대’라고 선언한다. 7월 28일 방영 회차 첫머리에서 진싱은 ‘광장무에 대해 아직도 부정적인 인상—나이 많은 사람들이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시끄럽게 음악 틀어놓고 춤추면서 다른 사람들을 방해한다는--을 갖고 있다면,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단언한다. 진싱은 ‘광장무 2.0 시대’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사례들을 소개한다.
진싱은 먼저 틀에 박힌 전형적인 안무가 아니라 현대무용을 방불케 하는 창의적 동작으로 구성된 광장무를 보여준다. 광장무는 고루한 옛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맞춰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싱이 소개한 다음 사례는 더욱 흥미롭다. 수저우의 한 지역에서 현재 사용되고 있는 광장무 음향 시스템은 첨단 기술을 이용해 음악이 퍼져나가는 45도 각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음악이 들리도록 설계되었다. ‘광장무 2.0’은 이렇게 첨단기술을 활용해 소음 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광장무 2.0 시대’를 이야기하고 광장무를 추는 젊은이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중장년층을 주요 시청자층으로 삼는다. “젊은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서 ‘창조 101(중국판 프로듀스 101)’를 보고 있을 때, 부모들은 TV 앞에서 방영시간을 기다려 ‘함께 춤춰요’를 본다”고 한 관련기사의 이 구절은 핵심을 찌르는 표현이다.
프로그램은 전국 각지에서 온 광장무 팀들이 경연을 벌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참가팀은 1차 공연 후에 팀 소개와 토크를 진행하고 이후 2차 공연을 하는데, 2차 공연에서는 광장무 전문가 20명으로 구성된 평가그룹도 참가팀과 함께 춤을 춘다. ‘따라서 춤추는 그룹[跟跳团]’으로 불리는 이들은 직접 춤추면서 작품이 널리 보급하기에 적합한지를 판단하고 점수를 매긴다. 심사위원과 방청객, 그리고 평가그룹이 준 하트(점수)가 220점 이상이면 참가팀은 우수 광장무팀 인증패를 받게 된다.
평가가 이뤄지기는 해도 치열한 경쟁이나 날카로운 심사평을 보기는 어렵다. 독설로 유명했던 진싱은 칭찬과 덕담을 아끼지 않고, 종종 심사위원석을 박차고 무대로 뛰어나가 참가자들과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 다른 심사위원들은 춤 전문가뿐 아니라 운동 전문가, 심리학자, 사회학자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로 구성돼, 어떤 춤 동작이 관절에 부담을 줄일 수 있는지, 혹은 광장무가 노년의 삶에 어떤 효용을 주는지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연출자인 양라이라이(杨莱莱)는 중국에서 춤을 소재로 했거나 일반인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중장년층을 위한 프로그램은 없다는 데 착안했다. 이 프로그램은 광장무 보급 프로그램에 그치지 않고, 광장무를 통해 보통 사람들의 꿈과 삶을 이야기하고 중국 사회의 현재를 보여준다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일반인들로 구성된 광장무 팀에 마음껏 춤추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한다.
실제로 프로그램을 보면 춤 자체보다도 참가자들의 사연들이 더 흥미롭다. 하얼빈에서 온 한 광장무 팀은 1987년에 만들어졌으니 무려 31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같은 공장 직원들끼리 모여, ‘광장무’라는 이름도 없을 때부터 광장무를 함께 춰왔다. 이제는 모두 은퇴했지만 여전히 함께 춤추고 있다는 이 팀은 멤버들의 평균 연령이 67.5세, 가장 나이 많은 멤버는 올해 81세다. 81세의 리더 할아버지는 흥겨운 ‘쿵푸팬더’ 음악에 맞춰 스트릿 댄스 동작까지 거뜬히 소화해냈다. 부인 역시 같은 광장무 팀 소속이다. 자식은 없지만 30년 이상 함께 한 광장무 팀 멤버들이 모두 가족이라 했다.
후난성에서 온 한 광장무 팀은 지난 2004년 2만 8천여명이 동시에 추는 광장무에 참여해 기네스북에 등재됐을 때의 사연을 소개했다. 이 팀의 젊은 남성 지도자는 11월에 짧은 소매 옷을 입고 빗속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추운 줄도 모르고 한 마음으로 춤을 췄다며 당시의 열기를 회상했다. 그는 또 다른 광장무 팀과 교류하다가 그 팀 리더와 사귀게 되었고, 함께 광장무를 추며 연애하다 결혼에도 성공했다며, 광장무 없는 자신의 삶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했다. 이 밖에도 4대가 함께 광장무를 추고 있다는 참가자, 남편이 얼마 전 쓰러져 식물인간이 됐다며 울먹이다가 광장무가 자신의 버팀목이라며 미소 지은 참가자 등등,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주 시청자가 SNS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이 프로그램이 중국에서 엄청난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중장년층을 겨냥해 새로운 소재를 끌어온 예능 프로그램으로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외국인의 시각으로 평가하자면, 광장무에 대한 호들갑스러운 찬사가 이어지는 것이 마치 건전가요 들을 때처럼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출연자들의 건강한 웃음과 활력을 보면서 광장무의 효용을 확인했고 ‘라오바이싱(老百姓)’으로 불리는 중국의 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광장무가 삶의 일부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네이버 중국 판 '엔터트렌드' 코너에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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