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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은 베이징 한복판에 자리잡은 중국의 상징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명, 청대 황실의 궁궐인 자금성은 궁궐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지금은 고궁 박물원으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지만, 원래 자금성은 forbidden City, 즉 아무나 갈 수 없는 황제의 공간이었다.
이 자금성에서 올 가을 전세계 클래식 음악계가 주목하는 대형 이벤트가 열린다. 도이치 그라모폰이 창립 120주년 기념 콘서트를 자금성에서 연다고 최근 발표한 것이다. 노란색 로고로 친숙한 도이치 그라모폰은 1898년 독일 하노버에서 창립된 역사 깊은 클래식 음반사다. 카라얀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많은 녹음을 비롯해 빛나는 명반들을 보유하고 있어, 클래식 음악의 명가로 꼽힌다.
도이치 그라모폰이 창립 120주년을 맞아 마련한 ‘DG120’ 갈라시리즈는 오는 10월 10일 자금성 태묘 앞에서 열리는 론칭 콘서트와 함께 시작된다. 중국의 지휘자 위룽(余隆. 해외에서는 ‘Long Yu롱유’로 알려져 있다)이 이끄는 상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를 연주하고, 피아니스트 엘렌 그뤼모가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한다.
중국 국가대극원에서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와 바렌보임의 콘서트가 이어진다. 이 밖에도 안네 소피 무터, 랑랑, 조성진, 막스
리히터 등 도이치 그라모폰 소속 스타 음악가들이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기념 갈라공연에 출연한다.
소식을 접하고 처음에는
조금 뜻밖이라고 생각했다. 도이치 그라모폰이 120주년을
기념하는 첫 대형 콘서트를 중국에서, 자금성에서 한다고? 발상지인
독일이 아니고? 게다가 중국 오케스트라인 상하이 심포니가 연주한다고?
자금성에서 클래식 공연이 열리는 건 20년만이다. 1998년 이 곳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가 주빈 메타 지휘로 공연된 바 있다. 연출은 중국의 영화 거장 장이머우 감독이 맡았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 ‘투란도트’의 자금성 공연은 전세계적인 화제가
되었고, 경제적 효과가 10억 달러로 추산됐다. 중국 정부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특별히 허가한 이벤트였다. (이후
장이머우 감독의 ‘투란도트’ 프로덕션은 한국의 상암 경기장에서
공연돼 한국에 ‘경기장 오페라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도이치그라모폰 120주년 기념 콘서트는 ‘투란도트’와는
성격이 다르다. ‘투란도트’ 는 연출을 장이머우 감독이 맡기는
했지만, 무대의 주인공들은 다 외국 음악가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롱이 지휘하는 상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무대의 중심이 된다. 물론 외국인 협연자들도 있지만
‘투란도트’ 때와는 확실히 달라진 상황이다. 도이치 그라모폰은 이 콘서트가 도이치 그라모폰의 문화적 영향력과 함께 중국 클래식 음악계의 뛰어난 역량을 드러내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고 보니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오케스트라, 상하이 심포니는 최근 도이치 그라모폰과 음반 출시 계약을 맺었다. 상하이 심포니는 창립 140주년을 맞는 내년에 중국과 러시아 작품을
녹음한 첫 DG 음반을 낼 예정이다. 상하이 심포니의 음악감독
위룽은 중국의 대표적인 지휘자로 차이나 필하모닉과 베이징 음악제의 예술감독, 광저우 심포니의 음악감독도
맡고 있다. 도이치 그라모폰 측은 위룽과 상하이 심포니가 최근 10년간
눈부신 활약을 보여줬고, 특히 지난해 루체른 페스티벌에 성공적으로 데뷔하는 등 해외 투어도 인상적이라며, 협업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클래식 음악계 역시 중국의 존재감이 날로 커지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인 음악가들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데 그치지 않고, 클래식 음악 시장에서 중국인 소비자들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도이치 그라모폰이 소속된 유니버설 뮤직 그룹의 한국 관계자는 DG120 론칭
콘서트를 자금성에서 하는 것은 중국의 ‘시장’을 고려한 조치
같다며 내 추측을 확인해 줬다.
사실 중국의 클래식 음반 시장 규모는 한국보다 아직 크지 않다. 중국의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클래식 공연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거꾸로 보면 그런 만큼 앞으로 성장할 여지가 크다는 뜻도 된다. 중국 중산층 부모들의
음악 교육열은 한국 못지 않게 뜨겁다. ‘중국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는 학생 수가 한국 인구보다
많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다. 이런 열기 속에 2000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윤디, 그리고 랑랑, 유자 왕 등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중국인 음악가들이 속속 배출되고 있다. 또
부유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클래식 음악 소비가 새로운 여가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중이다.
클래식 음악계는
기존의 유럽과 미주 시장에서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유럽의 음악회 객석에는 은발의 노령층 관객들이 많다. 클래식 음악계가, 새로 유입되는 젊은 관객이 많은 아시아, 그 중에서도 14억 인구가 받쳐주는 중국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
것은 사실 그다지 뜻밖의 일도 아니다.
자금성 콘서트는 중국 정부의 협력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중국 정부는 이 콘서트를 중국의 ‘소프트 파워’를 보여줄 좋은 기회로 생각했을 것 같다. 20년 전 ‘투란도트’는 외국인 관광객을 주 대상으로 한 공연이었지만, 중국인 지휘자가 이끄는 중국 오케스트라가 주역인 이번 공연에는 중국 내국인 관객들도 많을 듯하다. 도이치 그라모폰의 자금성 콘서트는 이래저래 클래식 음악사에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중국 엔터트렌드 코너에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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