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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국에서 가장 깨끗하고 공기 좋은 도시는? 칭다오! 최소한 ‘상합봉회’가 열렸던 9일부터 11일을 전후한 기간만큼은! 상합봉회는 ‘上海合作组织峰会(상하이합작조직봉회)'의 준말이다. 더 짧게 '봉회'(중국어 발음은 '펑휘')라고도 불린다. ‘상하이합작조직’은 한국에서 ‘상하이협력기구’로 번역된다.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담이 칭다오에서 열린 것이다.
상하이협력기구는 1996년 4월 상하이에서 중국과 러시아주도로 군사영역 협력을 논의했던 회의가 시초가 되었다. 2001년에 중국과 러시아 외에 카자흐스탄, 키르기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의 국가 원수들이 상하이에서 회의를 열고 정식 출범했다. 지난해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추가로 가입해 회원국이 8개국으로 늘었다. 올해 칭다오 회의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칭다오는 내가 살았던 도시이기도 하다. 마침 회담이 시작되기 직전에 중국에서 살던 집을 정리하기 위해 칭다오에 갔다가 상합봉회의 영향을 그야말로 온 몸으로 느끼고 돌아왔다. 칭다오는 ‘도시 미화’와 ‘보안’에 그야말로 총력을 경주하고 있었다.
먼저 도시 미화 작업. 칭다오는 안 그래도 중국의 ‘신 1선 도시’로, 발전된 지역이긴 했지만, 이번에 가보니 예전보다 훨씬 도심 곳곳이 깨끗하고 쾌적했다. 도로변 화단에 새로 심은 꽃들이 만개했고, 날씨도 쾌청하고 숨쉬는 공기까지 신선한 느낌이었다. 인공 강우로 공기 질을 개선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공해 유발 시설은 일찌감치 가동을 중단시켰다 한다. ‘무슨무슨 케미컬’이 회사 이름인 경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두 닫으라는 명령이 내려와 난감하다는 한국인들 얘기도 들렸다.
무엇보다도 야경이 눈에 확 띄게 업그레이드되었다. 이번 회담의 주요 개최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요트경기가 열렸던 올림픽 요트센터 근처다. 이 주변 야경이 몰라보게 바뀌었다. 중국 친구들 얘기를 들으니 무려 60억 위안(우리 돈 1조원 가량)을 칭다오 야경을 새로 단장하는 데 썼다 한다. 관광명소 조명을 모두 새로 설치했고, 특히 해안선 주변에 늘어선 빌딩들의 벽면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스크린처럼 사용해서 조명 쇼도 가능하다. (아래는 상합봉회를 앞두고 제작된 칭다오 야경 홍보 영상)
내가 칭다오에서 살았던 집은 올림픽 요트센터에서 도보 15분 거리의 아파트였는데, 아파트 단지 각 동마다 꼭대기에 새로 조명등이 달렸다. 주변 건물들에도 예전에 없던 조명이 생겼다. 전체적인 야경을 꾸미기 위해서인 듯했다. 그러나 야경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해변 산책로와 올림픽 요트센터 광장은 회의장 주변이라는 이유로 이미 폐쇄되어 결국 가보지 못했다. 칭다오의 상징처럼 된 5.4 운동 기념탑이 있는 광장 부근만 개방되었는데, 야경을 보러 온 중국인 관광객들로 연일 인산인해였다.
칭다오 시는 몇 달 전부터 특별한 조명 쇼를 준비하며 점등 리허설을 해왔다. 불꽃놀이 리허설도 열렸다. 중국 인터넷에는 관련 영상과 사진이 많이 올라왔다. '칭다오 야경이 홍콩에 이어 중국 제 2위'라고 선전하는 여행사의 홍보물도 눈에 띄었다. 국제회의 개막과 함께 5.4광장에서 열린 불꽃 예술공연은 중국 전역에 TV로 생중계되었다.
‘보안 강화’ 역시 칭다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실감할 수 있었다. 외국인들은 모두 지문을 등록해야 입국할 수 있다. 사실 미국에서도 하고 있는 일이긴 한데, 번거로운 데다 기분이 그리 좋지 않다. 칭다오 공항의 지문 자동 등록기에 줄을 섰다가 내 차례가 되었는데, 이상하게 기계가 내 지문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몇 번이나 등록에 실패해 반복하고 있는데, 옆에 제복을 입고 서 있던 군인인지 경찰인지 모를 남자가 갑자기 내 손을 홱 낚아채더니, 내 손바닥을 뒤집어 손가락 끝을 만져보고 있다. 놀라고 기가 막혀서 이 남자를 빤히 쳐다봤더니 자기도 머쓱했는지 얼른 손을 놓고 땀을 닦아보라고 손짓을 한다. 몇 번 시도 끝에 겨우 지문을 등록했다.
이후에도 다중 시설에 입장할 때,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혹은 거리에서, 수시로 보안 검색이 이뤄졌다. 반드시 신분증을 휴대하고 다녀야 했고, 외국인들은 여권 소지가 필수였다. 나도 고속도로 타고 도심에 들어갈 때 신분증 검사를 받았고 가방을 열어 소지품을 모두 보여줬다. 보안 검색 인력이 부족해 베이징 등지에서 만 6천명의 경찰을 지원받았다고 들었다.
회의장이 보이는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아예 ‘소개 명령’이 내려졌다. 주변 아파트 고층 거주자들은 회의가 열리는 도심을 피해 다른 곳에 머물렀다 오면 1인당 하루 800위안씩 실비 지급했다 한다. 아무리 돈을 준다 해도 갑자기 살던 집에서 나가 있으라니 불편이 컸다. 항저우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외국인 유학생들은 단체로 여행을 보냈다는 얘기를 듣고 설마 했었는데, 설마가 아니었다.
내가 살았던 아파트는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었는데, 회담장에서 멀지 않아 경계가 삼엄했다. 아파트 현관문 출입 카드를 모두 새로 바꾸고, 동마다 경찰이 지키고 서서 방문객을 일일이 확인했다. 아파트 단지 출입문도 두 곳만 남기고 모두 닫았다.
이 아파트에 사는 18세 이상 한국인 유학생들은 모두 회의기간에 칭다오를 떠나 있으라는 ‘권고’가 학교를 통해 전달되었다. 비행기표나 기차표 등 회의 개막 전에 칭다오를 떠난다는 증빙 서류를 제출하라 했다. 떠나지 않으면 회의 기간 내내 경찰이 밀착 감시할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결국 한국인 유학생들은 남은 비자기간과 상관없이 떠밀려 귀국하거나 다른 도시로 떠났다.
회의 기간에 칭다오 국제학교들은 모두 휴교하거나 일찍 방학에 들어갔고, 회담장 주변 기업에 근무하는 한국인들은 회의기간에 휴가를 쓰라는 통보를 받았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음식점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물론 보안 강화 때문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이 한국인 뿐만은 아니었다. 중국인들도 불편을 겪었다. 불시에 회담장 주변 교통을 통제한 것은 물론이고, 화물차나 택배 오토바이는 회담 기간 아예 운행을 금지했다. 회담기간 전후 이사나 우편물 배송, 배달이 모두 막힌 것이다.
내가 다녔던 중국 해양대의 라오산 캠퍼스에 친구를 만나러 갔더니 주변 음식점과 상점이 모두 문을 닫고 ‘회의 기간 잠정 휴업’이라는 표지를 달았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그 지역은 회의장과 멀리 떨어진 곳이라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규모 국제 행사에 보안을 강화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도가 좀 지나치고, 외국인들이 예비 용의자 취급 받는 것 같아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칭다오를 다녀온 나의 소감은 ‘애증이 교차한다’는 것이었다. 칭다오가 더 쾌적한 도시로 거듭났으니 좋았다는 면과, 보안 검색이 강화돼 불편하고 짜증스러웠다는 면이 교차했다. 돌이켜보니 내가 중국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 역시 양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좋다 할 것도, 무조건 싫다 할 것도 아니다. 세상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지난 13일 칭다오에 엄청난 태풍이 들이닥쳤다는 소식을 접했다. 시속 125킬로미터 강풍에 우박과 폭우까지, 피해가 컸다. 그나마 회의가 끝난 다음이라 다행이다. 칭다오에 있는 친구들이 하늘에서 주꾸미와 불가사리, 새우가 내렸다며 ‘해산물 비’ 사진을 보내줬다. 강풍에 날려온 것인데, 바다에서 왔는지 인근 수산시장에서 왔는지는 확실치 않단다.
상합봉회 이후에도 사상 최고의 강풍과 폭우가 닥치는 바람에 칭다오는 이래저래 중국에서 뉴스의 중심이 되었다. 한바탕 비가 내린 후, 칭다오 날씨는 쾌청하고 다시 관광객들로 북적댄다고 한다. 이번에 칭다오를 떠나올 때는 ‘다시는 올 일 없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자꾸 생각이 난다. 내 삶 중 2년이란 시간을 보낸 애증의 칭다오. 친구들도 볼 겸, 업그레이드된 야경도 제대로 볼 겸, 칭다오에 또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SBS 뉴스사이트에 취재파일로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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