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들의 의대 진학을 말린 이유

치아문단순적소미호(致我们单纯的小美好)는 요즘 한국에서도 ‘아름다웠던 우리에게’라는 제목으로방영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중국 드라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남학생 장천(江辰)과 여학생 천샤오시(陈小希)를 중심으로 학창시절부터 이어지는 풋풋한 사랑과 우정 이야기를 그려낸다. 때로는 한국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연상하게 하는데, 주인공 커플이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도 달달하지만, 우리와 같은 듯 다른 중국의 학교 생활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드라마의 배경은 저장성 항저우다. 학교 1등을 도맡아 하는 우등생 장천은 베이징의 명문대학인 칭화대 수학과 합격 통지를 받는다. 하지만 장천은 칭화대 수학과 대신, 그 지역 명문인 저장대 의학과를 지원한다. 장천의 어머니가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하지만, 장천은 고집을 꺾지 않는다.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떠올리며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고, 베이징에 가면 천샤오시와 헤어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뭔가 생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과는 정반대 상황 아닌가. 한국은 기초과학 분야는 기피하고 의대로만 수재들이 몰리는 경향이 심하다. 한국에서는 의사가 사회적 지위가 높은 고소득 직종으로 여겨진다. 한국식으로 예를 들자면, 부모가 서울대 수학과 간다는 아이에게 다른 대학 의대를 가라고 권했을 것 같다. 많은 부모들이 수학과보다는 의대 나와서 의사 하는 게 안정된 장래를 보장한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중국에서는 의사가 그리 좋은 직업이 아니었다. 장천 어머니의 고집은 명문 칭화대에 대한 집착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사에 대한 중국 사회의 인식을 보여준다. 중국의 우수 학생들은 의대보다는 공대를 선호한다. 중국에서 의사는 급여는 일반 대기업 직원보다 낮고 업무량은 많은 직종이다. 급여가 많지 않으니 비정상적인 ‘뒷돈 문화’가 발달해서, 수술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따로 촌지를 받는 문화가 만연해있다.

2017년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업종별 연봉 조사 결과를 보면 중국에서 의사는 그리 고소득 직종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가장 평균 연봉이 많은 직종은 정보통신 소프트웨어로, 13만3천150위안이었다. 이어 금융이 12만2천851위안, 과학연구가 10만7천815위안, 전력 가스 수력 등 에너지산업이 9만348위안으로 나타났다. 의사 직종이 포함된 보건 사회서비스는 8만9천648위안으로, 전 직종 평균 연봉인 7만4천318위안보다 그리 많지 않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에서 의사는 위험한 직업이기도 하다. 2015년도 의사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의사들 가운데 60% 이상이 환자들로부터 욕설을 듣거나 위협을 받았고, 13%는 물리적 폭행을 당했다. 수술 결과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의사를 살해하는 사건도 잊을 만하면 발생한다. 몇 년 전 선전의 한 병원에서는 의사와 간호사가 폭행을 피해 철모를 쓰고 근무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의료서비스 수요는 늘어나는데, 중국의 의료 시스템은 아직 열악하다. 정부 지원금을 받는 중국 대부분의 병원들은 지원금만으로는 정상적 운영을 할 수 없어, 과도한 검사와 진료, 약품 판매로 영리를 추구한다. 많은 의사들의 급여가 기본급과 성과급으로 이뤄져, 성과를 올리느라 고된 업무에 시달리고 뇌물의 의혹에 빠지기도 한다. 진료에 만족 못한 환자들과 마찰이 늘어나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나마 우수 의료인력은 도시에 집중돼 있어, 특히 농촌의 의료 서비스 품질이 떨어지고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치아문단순적소미호’ 뿐 아니라 다른 인기 드라마에도 중국에서 의사라는 직업의 사회적, 경제적 위상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 종종 나왔다. 메디컬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외과풍운’에서는 대형병원 의사가 가난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환락송’에서는 부잣집 딸의 의사 남자친구를 두고 ‘돈은 없는데 자존심만 세다’는 평가가 등장하기도 한다.

‘치아문단순적소미호’의 장천은 유능한 의사가 되어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 천샤오시와 맺어진다. 장천은 대형병원에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천샤오시도 만화가로 성공했으니 생계를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장천의 의대 지원 장면에서 궁금증이 생겨 중국의 의사와 의료시스템에 대해 알아보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역시, 중국 드라마 시청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중국 사회에 대한 공부이기도 했다.

*네이버 중국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