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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의 책사 사마의를 조명한 중국 드라마가 한국에서도 인기다. 제작비 760억원, 제작기간 5년의 대작으로, 1부인 ‘미완의 책사 사마의(원제 대군사사마의지군사연맹大军师司马懿之军师联盟)’가 지난해 먼저 방영되었다. 현재 2부 ‘최후의 승자 사마의(원제 대군사사마의지호소용음大军师司马懿之虎啸龙吟)’도 국내에서 방영 중이다. 


 삼국지를 토대로 한 드라마에서 사마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건 사실상 처음이다. 위나라와 사마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니 유비 관우는 거의 비중이 없다시피 하다. 1부에서는 전투 장면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그 유명한 ‘적벽대전’조차 내레이션으로 간단히 처리해 버린다. 


 작가 창장(常江)은 80년대 출생한 젊은 여성 작가다. ‘영웅호걸이 천하를 두고 다투는’ 이전의 드라마와는 접근방식이 다르다. 영웅호걸도 가정이 있는 법, 가정사의 중요성 역시 새롭게 다룬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었다. 4년 넘게 썼다는 드라마 대본은 위나라 조정의 냉혹한 권력투쟁과 함께 인간 심리와 관계의 복잡미묘함까지 솜씨 있게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남성 취향으로 여겨지는 정치 드라마라 할 수 있지만, 가족 드라마의 면모도 차고 넘친다.    


 드라마 속 사마의에게 가족은 그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이다. 특히 부인 장춘화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장춘화는 젊은 시절 강호의 협객이었던 여장부다. 남편의 비밀을 염탐하는 간첩을 가차없이 처단하는가 하면, 적진에 담판하러 들어가는 남편의 호위 무사를 자처하고, 몰래 빼낸 조조의 국새를 태자 조비에게 전달하는 위험천만한 임무를 완수한다. 


장춘화 역은 ‘랑야방’에서 기개 있는 여장군 ‘예황군주’를 연기했던 배우 류타오가 맡아 안성맞춤으로 어울린다. 장춘화는 성미 급한 여장부다. 남편보다 무예가 뛰어나고, 남편이 마음에 안 들 때 귀를 붙잡고 혼내는 습관이 있다. 사마의는 언제나 이런 장춘화에게 꼼짝 못하고 쩔쩔맨다. 애처가를 넘어 공처가다. 중국어에 ‘치관옌(妻管严)’이란 단어가 있다. 처의 관리가 까다롭고 엄격하다는 뜻이다. 딱 드라마 속 사마의 얘기다.   



 황제 조비가 사마의를 감시하기 위해 ‘백령균’이라는 미인을 사마의에게 첩으로 보내는데, 이 때문에 사마의 집에서 한바탕 난리가 벌어진다. 사마의와 장춘화가 부부싸움을 하는데, 사실은 사마의가 장춘화에게 일방적으로 혼나는 상황이다. 사마의는 맞아서 얼굴이 벌개진 채로 해명을 하려 애쓰지만, 장춘화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기만 한다.  


 안방이 시끄러우니 아들 사마사와 사마소가 차례로 들어와 ‘무슨 일이냐’고 묻는데, 사마의는 ‘엄마 옥비녀가 없어져서 찾고 있는 것’이라고 둘러댄다. 장춘화 역시 ‘그래, 그 놈의 옥비녀는 어디로 갔대?’ 소리 지르며 애꿎은 옥비녀 핑계를 댄다. 아들들은 ‘어머니가 계신데 집안에 또 여인을 들이는 건 반대’라며 장춘화 편을 든다. 


 장춘화는 황제의 명을 어기면 안 된다며 자신을 설득하러 온 남편 친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 남편 친구의 얼굴에 손톱자국까지 냈으니, 현대인의 눈으로 봐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다. 이런 장춘화도 황제의 명령을 끝까지 거부할 수는 없어, 우여곡절 끝에 백령균을 집에 들이기는 한다. 하지만 사마의는 계속 아내를 생각해 백령균을 멀리 한다. 


 어느 날, 사마의는 백령균 때문에 또 장춘화에게 불려간다. 이번에는 각오를 하고 미리 아내의 옥비녀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왜? 장춘화에게 혼나다 시끄러워져서 아들들이 또 무슨 일이냐 물으면, 옥비녀 찾는 중이라고 핑계를 대야 하니까. 


 드라마는 이렇게 두 사람의 부부생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데, 때로는 폭소를 자아내는 공처가 에피소드가, 때로는 애틋한 부부애를 보여주는 낭만적 장면이 이어진다. 그러나 사마의가 부인을 너무 사랑해 황제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첩을 거부했다는 드라마 내용은 실제와는 다르다. 


 드라마 속 백령균은 사마의가 총애했던 첩 백부인을 모델로 한 것이다. 사마의는 백부인 외에도 정실부인보다 한참 어린 첩을 여럿 두었다. 그 중에서도 백부인을 가장 사랑했고, 둘 사이에 사마륜--후일 사마씨의 진나라 권력 다툼에 뛰어들어 황위를 찬탈하는 인물이다--을 비롯해 자식도 여럿 낳았다. 


 그럼 장춘화는 실제로 어떤 여인이었을까? 10대에 사마의에게 시집온 장춘화가 걸핏하면 칼을 뽑아 드는 강호의 협객이었을 리 없고, 남존여비와 가부장적 관습이 자리잡은 중국 그 시절에 사마의가 장춘화에게 맞으며 살았을 리 없다. 그러나 실제로도 장춘화가 판단이 빠르고 담대한 여인이었다는 점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사마의가 조조의 부름에 응하지 않으려고 병을 핑계로 누워있던 시절의 일이다. 갑자기 폭우가 내려 마당에 널어놓은 책이 젖게 되자, 사마의가 급한 마음에 뛰어나가 직접 책을 걷었고, 이 장면을 집안의 여종이 봤다. 후환을 없애려고 장춘화가 이 여종을 죽였다. 사마의가 지혜로운 부인에게 감탄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드라마에도 약간 다르게 각색돼 나오는 에피소드다.       


 그러나 사마의는 만년에 장춘화와는 거의 왕래도 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멀어졌다. 어느 날 병이 난 사마의를 장춘화가 보러 오자 ‘보기 싫은 늙은이가 뭐 하러 왔냐’고 타박했고, 장춘화는 속상하고 화가 나서 곡기를 끊고 죽겠다고 드러누웠다. 자식들도 ‘단식투쟁’에 동참하겠다며 엄마 편을 들고 나섰다. 결국 사마의가 사과했는데, 이는 마누라는 죽어도 섭섭하지 않지만, 자식들이 걱정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드라마는 ‘大事不虚, 小事不拘(큰 일은 틀림 없게 하되, 작은 일은 얽매이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랐다. 역사의 큰 줄기는 충실하게 그려내되, 세세한 부분은 구애 받지 않고 작가의 상상력으로 요리했다. 현대인의 눈으로 봐도 배포 크고 거침없는 여장부 장춘화, 아내 사랑이 지극한 나머지 ‘공처가’ 반열에 오른 사마의, 이 두 사람의 모습은 사실에 완벽하게 부합하진 않더라도, 드라마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드라마의 배경이 고대이든 현대이든 시청자는 모두 바로 이 시대 사람들이다. 어쩌면 작가는 이 시대 여성들의 희망을 은연중에 인물에 투사한 것 아닐까. 드라마는 지금 이 시대를 반영하는 법, 사마의가 주인공인 역사극도 예외는 아닐 터이니.   


*네이버 중국 엔터트렌드 코너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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