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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촉즉발’은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기구한 운명의 쌍둥이 형제 이야기를 펼쳐내는 중국드라마다. 이 드라마 7회에는 우연한 만남을 거듭하며 티격태격하던 남녀 주인공이, 비 오는
날 또다시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이 나온다. 남자가 여자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이전에 다소 서먹했던 사이가 풀리기 시작한다. 비가 오니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남자는 여자와 함께 걷기 시작한다. 여자가 남자에게,
나 만나기 전에 어디 가던 길이었느냐 묻는다.
“원래 란신 대극원에 음악회 보러 가려 했는데, 극장 수리 때문에 취소됐다지 뭐예요”
“아! 당신도 란신 대극원에 갔어요? 나도 갔는데! 취소됐다 해서 한바탕 싸우고 왔어요….”
“어떤 곡을 좋아해요?”
“모차르트! 당신은요?” (모차르트의 중국식 표기는 莫扎特. 발음은 ‘모짜트어’에
가깝다.)
남자가 대답을 않고 망설인다. 여자가 ‘나는 뭘 좋아하는지 다 알려줬는데 왜 대답 안 하냐’고 채근하자, 남자는 미소 지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만약 나도 모차르트를 좋아한다고 하면, 당신은 내가 일부러 당신한테 맞춰주려고 그런다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여자도 미소를 지으며 ‘안 그래요’라고
대답한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는 공통점을 발견한 두 사람이 급격히 가까워진다. ‘모차르트’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큐피드’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란신 대극원’은 실제로 있었던
공연장일까? 당시 상하이에 음악회가 많이 열렸을까?
알고 보니 ‘란신 대극원(兰心大剧院)은 당시 유럽식 건축양식과 첨단 시설을 자랑하며 중국 최고의 공연장으로 꼽혔던 곳이었다. ‘란신’은 지금도 영국계 극장 이름으로 알려진 ‘라이시움(Lyceum)’을 음차한 것이다. 란신 대극원의 모태는 1866년 상하이에 문을 연 중국 최초의 서양식
극장이다. 영국인 중심의 아마추어 극단이 공연했던 이 극장은 3년만에
화재로 소실됐고, 중건과 이전을 몇 차례 거치면서도 ‘란신’이라는 이름은 유지하다가 1931년 상하이 마오밍난루(茂名南路) 현재 위치에 문을 열었다. 한 때 ‘상하이 예술극장’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다시 ‘란신’이라는 원래 이름으로 돌아가 지금도 다양한 공연을 열고 있다. 올해 프로그램을 보니 한국 뮤지컬 ‘빨래’도 포함돼 있다.
(아래 사진은 란신대극원 옛날과 현재 모습. 출처: 중국경제망)
1930년대 란신 대극원에서 열린 음악회라면, 상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교향악단이 상하이 심포니일 정도로, 상하이의 클래식 음악회 전통은 꽤나 오래되었다. 중국 상하이 심포니는 1879년 창립된 아마추어 밴드 ‘상하이 공부국 공공악대(上海工部局公共乐队)’가
시초다. 아편 전쟁 이후 상하이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을 위해 연주하는 밴드였다. 이 밴드는 1907년 오케스트라로 확대됐고, 1922년 상하이 시립 교향악단, 1953년 상하이 심포니로 이름을
바꾼다. 초창기에는 단원도 외국인, 관객도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상하이 심포니의 공연에 최초의 중국인 관객이 등장한 것은 1923년이다. 상하이 조계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이 여전히 주 관객이긴 했지만, 상임지휘자였던
이탈리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마리오 파치(중국명 梅百器. ‘메이바이치’로 읽는다. 아래 사진)는 중국인 관객 계발도 중시했다. 1928년 여름 야외음악회가 중국인 관객에게 개방됐고, 관객 중
중국인 비중은 24퍼센트까지 올라갔다. 그러니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 중국인 클래식 애호가들이 등장하고,
클래식 음악이 연인을 이어주는 게 이상하지 않다.
상하이 심포니는 1930년 작곡가 황쯔의 ‘노스탤지아(怀旧)’를 초연한 것을 시작으로,
중국 작곡가의 곡도 종종 연주했다. 1938년에는 중국인 단원이 처음으로 입단했다, 기록을 보면 상하이 심포니는 1941년 란신 대극원에서 콘서트를 32회 열었는데 이 중 20회가 만석이었고, 나머지 공연 때도 모두 좌석의 3분의 2 이상이 찼다고 한다.
2차 대전 종전과 함께 단원들은 중국인으로 교체되었다. 공산당 집권 이후 논란이 있었으나
악단은 상하이 문화부 소속으로 존속되었다. 그러나 문화혁명과 함께 극심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단원들은 인민군 제복을 입고 10년간 지정곡만 연주해야 했으며, 홍위병들은 서양음악을 연주해 인민을 기만했다며 단원들을 폭행했다. 가족과
함께 자살한 단원도 있었고 상임 지휘자가 처형되기도 했다.
상하이 심포니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암흑기였던 문화혁명 시기를 언급하지 않는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공식 역사’에 의하면 1984년 지휘자 천셰양이 콘서트 시즌제를 처음 도입하고, 해외 투어를
시작하는 등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으며, 1986년 초대 음악감독이 되었다. 현재 음악감독은 중국의 대표적인 지휘자 유롱이 맡고 있다.
상하이 심포니는 1994년 처음으로 내한 공연을 했고, 이후 2002년과 2007년
한국을 다시 찾았다. 특히 2007년 한중수교 15주년 기념공연에서는 한국의 합창단들과 함께 천셰양 지휘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8번 ‘천인 교향곡’을
연주해 감동의 무대를 연출했다.
상하이 심포니가 주로 공연하는 공연장은 1930~40년대에는 란신 대극원이었지만, 지금은 상하이 심포니 콘서트홀이다. 상하이 심포니 콘서트홀은 1200석의 대극장과 400석의 실내악 전용관을 갖추고 2014년 문을 열었다. 푸동의 동방예술센터, 그리고 상하이 도심의 상하이 대극원에서도 종종 공연한다. 시즌 공연
목록에서는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이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상하이는 지금도 국제적인 면모를 자랑하는 대도시지만, 1920~30년대
이른바 ‘올드 상하이’는 ‘동양의
파리’로 불리며 다채로운 매혹을 발산했던 국제도시였다. 나는
상하이를 몇 차례 방문했지만, 아직 란신 대극원도, 상하이
심포니 콘서트홀도 가본 적이 없다. 다음에 상하이에 가면 꼭 가 볼 생각이다. 드라마 ‘일촉즉발’의
짧은 장면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고, ‘올드 상하이’ 시절부터
번성했던 공연문화를 현장에서 확인하고 싶어졌다.
*네이버 중국 엔터트렌드 코너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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