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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성진. 클래식음악에 별 관심 없더라도, 그 유명한 쇼팽 콩쿠르의 첫 한국인 우승자 조성진의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조성진은 공연 표가 1분만에 동나고, 130만원짜리 암표가 등장하는 등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런 인기는 국내에만 한정되지 않는데, 중국에서도 조성진의 인기를 실감하게 해 주는 해프닝이 있었다.  

 
중국의 유명 음악출판사인 인민음악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잡지 <피아노예술(艺术)> 4월호에 조성진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피아노예술>은 중국 유일의 피아노음악 전문 월간지다. 제목은 안녕하세요, 피아니스트 조성진입니다(大家好, 我是琴家成珍)”. 중국 매체에 최초로 실린 조성진의 장문 인터뷰 기사였다. 4월호에 실린 기사는 상편으로, 5월호에 하편이 이어 게재될 것임을 예고했다

 
그런데 이 기사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기사 제목 아래 ‘2017 11월 하순 <클럽발코니><객석>의 조성진 인터뷰라고 표시됐고, 이어 번역 정리를 한 중국인 필자의 이름만 쓰여 있었다. <클럽발코니> <객석>은 한국의 예술잡지다. 조성진을 인터뷰해 기사를 쓴 한국인 필자가 당연히 따로 있다. 그런데도 이 잡지에는 번역자의 이름만 나왔다. 자칫하면 이 번역자가 직접 조성진을 인터뷰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게 돼 있다. 알고 보니 이 기사는 한국인 필자와 잡지사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번역 게재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중국에서 저작권을 침해 당한 사실을 한국인 필자는 어떻게 알았을까. <클럽발코니>의 인터뷰 기사는 <클럽발코니> 에디터인 음악 칼럼니스트 이지영 씨가 쓴 것이었다. 지영 씨는 이 중국인 번역자의 SNS보고 자신이 쓴 기사가 무단으로 번역돼 중국 잡지에 실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국인 번역자는 자신이 번역한 기사가 중국의 잡지에 실렸다며 중국어 기사 사진과 한국어로 쓴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려놓았다


 
지영 씨는 기사가 어떤 중국 잡지에 실렸는지는 정확히 모르는 상태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지영 씨처럼 저작권을 침해 당한 월간 <객석> 기자가 번역자 인스타그램 계정에 항의 메시지를 보냈으나, 답은 없고 게시물만 내렸다고 한다. 지영 씨의 페이스북 게시물에는 많은 사람들의 댓글이 달렸는데, 역시 중국은 아직 멀었어, 중국서 저작권 보호라니 기대하기 어렵지, 참 막막하겠다, 등등으로 대부분 운 나쁜지영 씨를 위로하는 내용이었다.

 
지영 씨의 페이스북 친구인 나 역시 우연히 이 게시물을 봤다. 바로 중국 인터넷을 검색해 기사를 실은 잡지가 <피아노예술>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잡지가 듣보잡이 아니라 꽤 이름 있는 출판사에서 발행된다는 것을 알고 나니, 잡지사에 직접 연락해 시정을 요구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지사의 대표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 기사 링크를 찾아 지영 씨에게 전달했다.  

 
지영 씨에게는 마침 음악계에서 일하는 타이완 출신 페이스북 친구가 있었다. 지영 씨의 게시물에 중국어 기사 사진이 등장한 것을 궁금해한 이 친구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고, 지영 씨는 사정 설명과 함께 내가 전달한 자료를 다시 이 친구에게 전달했다. 그는 이 사정을 다시 자신의 페이스북 친구인 중국인 평론가에게 알렸다. 이 평론가는 음악잡지 <그라모폰> 중국판 편집장을 지낸 음악계 인사였다.

 
중국의 <피아노예술> 편집장과 아는 사이였던 이 평론가는, 번역 기사에 저작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지영 씨의 연락처를 전달했다. <피아노예술> 편집장은 곧바로 지영 씨에게 메일을 보내왔다. 번역자가 저작권 문제를 제대로 처리한 줄 알았다며, 불찰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모든 일들이 한국과 중국 사이를 오간 페이스북 메시지와 댓글, 이메일을 통해 단 하룻밤 만에 진행되었다. 사건을 처음 인지한 것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도 모두 SNS를 통해서였다.

 
이 해프닝에 담긴 의미. 그 첫 번째는 앞서 쓴 것처럼 중국에도 조성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중국은 조성진보다 앞서 쇼팽 콩쿠르에 우승한 윤디, 그리고 클래식의 슈퍼스타로
불리는 랑랑을 배출했다. 중국의 피아노 음악도가 한국 인구보다 많다는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이니,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이웃 나라피아니스트 조성진에 대한 관심 높은 게 자연스럽다. 그게 아니라면 유수의 음악잡지가 두 달 연속 조성진 인터뷰 기사를 싣겠다고 할 리가 없다.

 
문제의 중국인 번역자는, 저작권 개념이 없었던 물론 유감이지만, 조성진에 대한 팬심으로 충만한 피아노 음악도였다. 그는 이전에도 조성진 공연의 리뷰를 중국 매체에 기고했다고 한다. 자신의 SNS ‘‘현재 중국은 부족한 없는 시대이고, 피아니스트도 즐비하다, 성공의 지름길은 어디서나 찾을 있지만, 이익을 위한 들썩거림은 영혼을 버리게 수도 있다 썼다. 그러면서 조성진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이름처럼 귀한 사람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조성진을 대단히 높이 평가했다.

 
번째, 중국은 아직 저작권 개념이 철저하지 않다는 점이다. 번역자가 모르고 그랬다 쳐도 잡지사는 기사를 싣기 전에 저작권 문제를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중국이 마냥 저작권이고 뭐고 뭉개면 된다는 식은 아니라는 것도 확실해 보인다. 이제 중국도 국제적 기준 무시할 없는 상황이 되었다. 지영 씨의 타이완 출신 친구가 연결해준 평론가는 자기 일처럼 지영 씨와 함께 걱정해 줬고, <피아노예술>편집장 역시 지영 씨에게 보낸 메일에서 우리는 항상 저작권 보호를 중요시한다 강조했다.

 
번째, 역시 꽌시 중요하다! 관계 중국식으로 발음한 꽌시, 단순한 관계라기보다는 연줄, 인맥의 의미를 닌 단어. 이번 일은 SNS,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해 해결됐다.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라면, 바로 꽌시에 관한 비스 아닌가. 지영 씨의 꽌시가 확장돼 가면서 또 다른 꽌시들이 개입했고, 처음엔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던 통로가 하룻밤 안에 국경을 건너 뚫린 것이다. <객석>역시 지영 씨를 통해 <피아노예술>측과 접촉해, 기사의 저작권 관계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한다.  

 
시작은 유쾌하지 않았지만 끝은 원만하게 풀리기를 기원한다. 앞으로 조성진의 중국 팬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이번 일로 한국의 음악계 인사가 중국의 음악계 인사와 면을 트게 셈이니, 설적인 꽌시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보태본다.

*네이버 중국 엔터트렌드 코너에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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