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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생활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중국어 과외 선생을 구했다. 산둥성 지난 출신으로 한국의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중국인 유학생이다. 한국에서는 행정학 공부를 하고 있는데, 알고 보니 중국에서는 미술대학을 나왔다. 내가 궁금해 하자 자신의 작품이 실린 도록을 보여주는데, 서양화와 중국화, 추상화와 구상화를 넘나들고, 중국 고대벽화를 모사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마치 만화 같은 일러스트도 있다. 초상화도 그리고, 포스터도 그리고, 도자기 공예에 조소, 설치미술 작품도 있다.  

과외 선생은 대학에서 회화뿐 아니라 조소
, 공예와 디자인까지,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다. 도대체 무슨 전공이냐고 물으니 벽화과(壁画系)라고 한다. ‘벽화과라니, 생소한 학과다. 한국에도 벽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있지만, 미술대학에 벽화과가 따로 있지는 않다. 검색해 보니 세한대학교 조형문화과에 환경인테리어 벽화 전공이 몇 년 전에 생겨,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문적인 벽화교육을 실시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미술대학에는 대부분 벽화 전공이 독립된 과로 개설되어 있다.


 중국 미술에서 벽화는 독립 전공으로 대접받을 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중국의 벽화는 둔황 막고굴의 그 유명한 벽화들처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문화유산이면서, 현대에 들어서는 중국의 사회주의 국가 건설과 맞물려 중시된 장르이기도 하다. 어느 대학이나 벽화과 소개를 보면 공통적으로 중국 고대벽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현대에 꼭 필요한 공공 환경예술로서 창조적 발전을 이뤄나간다는 목표가 나오는데, 특히 공익성을 강조한다. 학생의 창조정신과 열정을 민족정신과 사회의 요구에 조화시켜 공익적 예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현대벽화의 역사를 보면 이를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중국의 전통 벽화는 주로 궁궐과 사원, 묘지에 그려졌는데, 청나라 말기에 사실상 대가 끊기다시피 했다. 대신 1910년대 초부터 서양회화를 공부한 화가들이 서양회화의 기법을 사용해 새로운 화풍의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920년대에 중국 벽화의 중요한 흐름이 탄생한다. 중국의 혁명 근거지와 행군 도중 혁명과 항일을 주제로 삼은 선전 벽화들이다

1938 8, 집단창작으로 우창 황학루에 그려진 선전벽화는 특히 중국 벽화사에 중요한 작품으로 꼽힌다. 중일전쟁 발발 이후 난징이 함락되면서 중국의 임시수도였던 지역에 그려진 이 벽화는 최전선 병사들의 영웅적 항전을 찬양하고 후방의 전폭적인 지원을 독려한다. 같은 해 10월 우한이 일본군에게 함락되면서 파괴됐지만, 이 작품을 계기로 중국 벽화는 본격적으로  민족 해방투쟁 중의 선전 무기로 자리매김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출범 이후 벽화는 사회주의 건설에 핵심적인 장르로 더욱 중시되었다. 1955년에 폴란드에서 유럽 벽화예술을 공부한 첫 중국유학생들이 배출되었고, 베이징 천문관과 중국혁명역사박물관, 베이징민족문화궁 등 새로 건설되는 주요기관에는 <전국각민족대단결만세> <민족대단결만세> 등의 제목을 단 대형벽화들이 그려졌다



1958
년 대약진운동 중에는 농업생산 대약진을 주제로 한 벽화 운동이 중국 전역에서 벌어진다. 전문 화가보다는 지역의 아마추어 미술가나 미술전공 학생들이 참여했다. 1960년대 중반에는 농촌 사회주의교육운동의 확산과 함께 계급투쟁 선전을 주로 하는 벽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문화대혁명 중에는 영도자 찬양을 주제로 한 벽화들이 광장과 공장, 학교 등 주요 건축물마다 그려졌다.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은 전문작가들이 유화로 그린 문화대혁명 시기의 벽화들은 70년대 중반까지 대부분 철거되었다.


1976
년 이후, 중국 벽화는 새로운 재료와 기법으로 보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다루기 시작한 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함께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공공환경미술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기 시작한 시기다. <숲의 노래(森林之歌)> <과학의 봄날(科学的春天)> <백사전(白蛇传)> <생명의 찬가(生命的赞歌)> 벽화 제목만 봐도 변화를 짐작할 있다. 예술적 표현과 함께 장식성과 시각적 쾌감을 강조하며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는 베이징 수도국제공항 대형벽화(1979)는 중국 공공미술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후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활용한 대형 벽화들이 주요 대도시의 공공건축물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중국의 미술대학에 벽화과가 개설되기 시작한 것이 즈음이다. 1979년 중국의 명문 미술대학인 중앙미술학원에 후이민(侯一民) 교수 주도로 벽화연구실이 먼저 생겼다. 중앙미술학원은 1980년부터 벽화전공 학생을 모집하기 시작했고 1984년 벽화 전공이 독립된 과로 정식 개설되었다. 이후 칭화대, 난징미술대 등의 순서로 중국 전역의 미술대학에 벽화 전공이 속속 개설되기 시작했다. 중앙미술학원 체계를 보면 조형대학과 중국화대학, 인문대학, 예술관리교육 대학, 건축대학, 디자인대학 등의 단과대학이 있는데, 벽화과는 유화과, 판화과, 조소과와 함께 조형대학 소속이다.


벽화과에서 공부하는 과목을 보니 과연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융합형 전공느낌이다. 조형기초과목인 소묘, 조소, 조각, 평면.입체 디자인, 해부학, 투시학 등에서부터 색채학까지, 많은 과목을배운다. 중국전통 채색화, 고벽화 보수와 복원 외에도 상감벽화, 도자벽화 등 다양한 벽화기법을 배우고, 도자공예, 옻칠공예, 금속공예, 종합재료 공예 등 많은 공예과목을 공부한다. 벽화과에서는 참관과 실습이 중시되는데, 벽화과 교수들이 대형벽화 제작 의뢰를 받으면 학생들이 공동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다. 또 둔황 막고굴을 비롯해 시안박물관, 간쑤박물관, 영락궁, 롱먼석굴, 윈강석굴 등이 중요한 배움의 장소가 된다. 


이렇게 중국의 미술대학에서 벽화를 공부한 과외 선생은 한국의 한 청소년 기관에서 벽화 그리기 봉사를 한 적도 있다 한다. 왜 계속 전공을 살리지 않고 다른 공부를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중국에서 미술로 성공하는 것보다 공부해서 다른 길을 찾는 게 더 낫다고 답한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작품을 사주는 후원자가 있어야 가격이 형성되고 시장에서 팔리는 작가가 되는데, 별 연줄이 없는 화가 개인이 돈이 되는 벽화를 그릴 기회를 잡는 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벽화과가 있다는 건 확실히 중국이 한국과 다른 점이지만, 전업 미술가로 성공하기 어려운 건 한국이나 중국이나 차이가 없는 듯하다. 

*네이버 중국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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