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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기간 열대야 지속 기록을 갈아치웠던 올 여름은 매미 소리도 유난히 시끄러웠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듣던 매미 소리는 청량한 느낌이었는데, 요즘 도심의 매미 소리는 왜 이리 시끄러울까.

울음 소리가 큰 매미는 아열대 지역에 서식하는 말매미 종류다
.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한반도 기온이 높아져 국내의 말매미 개체 수가 폭증했고, 열섬 현상으로 기온이 높아진 도심에 더 많은 매미가 서식하게 되었다. 도심에서는 밤도 낮처럼 환해 매미가 밤낮없이 울어대니, 매미 때문에 잠을 못 이룬다는 민원이 곳곳에서 발생한다.     


이렇게 현대인들에게 매미는 성가신
불청객이 되어버렸지만, 과거 매미는 선비들이 사랑하여 귀하게 대접한 곤충이었다. 매미는 오랜 세월 유충으로 지내다 허물을 벗고 날개를 펼치며 성충이 되는 특성 때문에 해탈부활을 상징했다. 유교에서는 매미를 군자의 덕이 있는 곤충으로 칭송했다.


중국 서진의 시인 육운은 매미가 문
(
), (), (), (), ()오덕(五德)’을 지녔다고 했다. 매미의 입은 글()에 뜻을 가진 선비의 갓끈처럼 곧으며, 곡식을 탐하지 않으니 염치()가 있다. 또 집이 없으니 검소()하고, 죽을 때를 아는 신의()가 있고, 이슬만 먹고 사니 맑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왕들은 매미 날개 모양의 관모 익선관을 쓰고 일하며 군자의 덕을 마음에 새겼다.     


매미는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 소재가 되었다
. 조선의 화가 정선은 송림한선(
松林寒)’에서 소나무 숲의 가을 매미를 그렸다. 소나무 가지에 앉은 매미의 모습이 청아한 기운을 전해준다. 한국에서 랑야방2:풍기장림이란 제목으로 방영된 랑야방지풍기장림(琊榜之风起长林)’에도 매미가 등장한다. 오프닝 타이틀 화면부터 매미가 청아한 기운을 뿜어낸다.


매미는 이 드라마
(이하 풍기장림으로 표기)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풍기장림은 중국의 가상왕조 양나라를 배경으로 한 랑야방의 속편이다. 전편 랑야방의 주인공 매장소(
长苏)는 본래 용맹하기로 이름난 적염군의 소년 장수 임수(林殊)였다.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몰살된 7만 적염군과 가족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원래 신분을 감춘 채, 적염군의 결백을 믿는 정왕의 책사로 활약하며, 정의를 다시 세우려는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한다.




매장소는 적염군을 두둔하다 반역죄로 죽은 기왕(정왕의 형)의 아들 소정생을 노비 신분에서 구출하고, 정왕은 소정생을 양자로 삼는다. 정왕은 매장소의 도움으로 황제가 되고, 매장소는 외적의 침입에 맞서 나라를 지키려 전장에 나갔다가 장렬하게 전사한다.  



풍기장림은 후일 장림왕(长林王)’이 된 소정생과 그의 두 아들 소평장, 소평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장림왕 소정생은 황제의 형으로, 양나라 북방 주둔군인 장림군을 이끄는 백전노장이다. 장림군은 정왕이 매장소임수에서 한 자씩 따서 붙인 이름이니, ‘매장소(임수)의 군대라는 뜻을 내포한다.  



풍기장림장림에 바람이 인다는 뜻이다. 드라마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전장에서 시작된다. 장림군은 전편에서 적염군이 그랬듯, 장림군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시기하는 사람들의 음모 때문에 시련을 겪는다.  장림군은 음모에 휩싸여 결국 해체되고, 양나라 조정에는 다시 한번 피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장림왕의 둘째 아들
, 총명하고 재기 넘치는 소평정은 매장소가 소년장수 임수였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소평정은 자유분방한 막내 도련님이었지만, 형과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며 고통 속에 자신을 단련해, 진중하고 책임감 있는 장수로 거듭난다. 황위를 찬탈하려는 반란이 일어나자 뿔뿔이 흩어졌던 장림군은 소평정의 지휘 아래 다시 모여들어 난을 평정한다. 황제는 앞으로 지휘관이 누구이든 장림군이라는 이름은 영원히 이어가라고 명한다. 

풍기장림은 결국 소평정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소평정의 성장, 그리고 장림군의 부활은 땅속에서 긴 시간을 보내다 허물을 벗고 날아오르는 매미의 상징과 상통한다. 풍기장림 13화를 보면 매미가 소평정을 상징한다는 걸 암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고민에 휩싸인 소평정이 검무를 추다가, 조조의 아들로 유명한 시인 조식(曹植)이 매미를 소재로 쓴 선부(蝉赋)한 대목을 읊는 장면이다.  


   皎皎贞素, 侔夷节兮. 帝臣是戴, 尚其洁兮.

깨끗하고 정결하니 백이의 절개에 비하겠네.

천하의 어진 이가 받들어 그 고결함을 숭상하네.

 
*帝臣是戴 황제와 신하가 모두 매미 모양의 관을 쓴다는 . 여기서는 한국에서 방영된 드라마의 번역을 따랐다.

조식은 이 시에서 매미를
백이에 비유했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중국 상나라 말기의 형제다. 상나라가 멸망하고 주나라가 들어선 뒤에도, 상나라에 대한 충성을 버릴 수 없어 녹봉을 거부하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으며 살았다. 이후 주나라 녹봉은 거부하면서 주나라의 산에서 주나라의 고사리를 먹는 건 어찌된 일이냐는 말을 듣자, 고사리마저 먹지 않고 결국은 굶어 죽었다. 백이는 충절을 지킨 의인의 대표격으로 중국 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전편인 랑야방
11화에도 조식의 선부가 등장했다. 매장소가 자신의 스승 여숭의 옛 친구 주현청과 만나는 장면이다. 매장소는 속세와 담을 쌓았던 주현청 선생에게 여숭의 유품인 옥 매미를 보여주고 도움을 받았다. 주현청이 매장소에게 여숭이 옥매미를 차고 다닌 이유를 아느냐고 묻자, 매장소는 선부의 또 다른 대목을 읊는다.  

 

实澹泊而寡欲兮,独怡乐而长吟。声皦皦而弥厉兮,似贞士之介心。

담박하고 욕심이 없어 홀로 기꺼이 노래 부르니

그 소리 우렁차고 엄숙하여 충절지사의 정신을 닮았노라.

그러고 보니 소평정은 매장소의 후계자이다
. ‘담백하며 욕심이 없고, 절개 있는 선비의 강직한 마음’, 매장소의 고결한 뜻은 장림군을 이끌었던 소정생에게, 그리고 그 아들인 소평장과 소평정에게 전해졌다. 권력을 탐하는 욕망과 음모는 반복되지만, 고결한 뜻을 품은 이들의 충절은 변치 않는다. 충절지사의 상징인 매미는 랑야방풍기장림을 관통하며, 매장소와 소평정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인 셈이다.  


랑야방풍기장림을 보면서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을 보냈다. ‘풍기장림마지막 편인 50화까지 다 보고 나니 어느새 날씨가 선선해졌다. 그러고 보니 시끄러웠던 매미 소리도 한결 청량하게 들린다. 아니, 어쩌면 매미 소리는 같은데, 듣는 내가 이전과 달라졌는지도 모른다. 이제 매미 소리를 들으면 소평정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네이버 중국 엔터트렌드 코너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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