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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아침뉴스 커튼콜(11-05-11)>

고양 아람누리에서 열린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정기 연주회를 보고 들어왔다. 독일 국립 하노버 오페라 극장의 수석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다 귀국해 광주 시향에서 2년간 재임하며 '돌풍'을 불러일으켰던 지휘자 구자범 씨를 지난 3월 상임지휘자로 맞아들인 후 첫 정기 연주회였다.

구자범 씨가 재임할 때 광주 시향의 연주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직접 들은 적이 없어서 궁금했었다. 경기 필하모닉은 얼마나 바뀔 수 있을까. 지난 월요일, 이 공연 리허설을 취재했다. 비록 긴 시간 지켜본 건 아니지만 리허설에서부터 달라진 모습이 느껴졌다. (위에 동영상 첨부한 뉴스는 이 리허설을 취재해 제작한 것이다. 비록 아주 짧긴 하지만 인터뷰 나오는 부분까진 말러 1번 4악장, 인터뷰 후엔 바그너다). 그리고 오늘 공연은 기대 이상이었다.

슈트라우스와 바그너도 좋았지만, 역시 오늘의 압권은 말러 1번 '거인'이었다. 이 곡의 매력을 이번 공연에서 새롭게 깨달은 것 같다. 말러 1번은 처음 들었을 때 뭔가 '잡다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곡이다. 장중하게 나가다가 불쑥 유랑밴드 연주 같은 선율이 끼어들기도 하고, 악장 처음부터 귀를 찢는 불협화음을 때려대기도 하고, 처연하다가 갑자기 행진곡풍으로 바뀌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즐겨 들었던 곡이지만 100퍼센트 납득은 안됐다고나 할까. 그런데 오늘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냥 즐기면 되었다. 확 터져주다가, 확 사그라들다가, 물결 타듯 음악을 타고만 있으면 되었다. 그러더니 점점 가슴이 벅차왔다. 긴 곡이지만, 그리 길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사실 객원 연주자가 많아 긴밀한 앙상블을 만들어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금관이 좀 더 잘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만들어낸 건 대단한 일이다. 경기 필하모닉, 솔직히 구자범 씨 취임 이전에 크게 존재감이 있었던 오케스트라는 아니었다. 이전에는 정기연주회를 본 적은 없고, 반주하는 걸 몇 차례 본 듯한데,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바뀌어도 정말 많이 바뀌었다. 지휘자와 단원들이 혼연일체로 만들어낸 결과다.

혼신의 힘을 다한 연주라는 거, 이런 거다. 연주가 끝나자마자, 너무나 자연스럽게, 객석에서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기립박수도 자연스러웠다. 땀에 푹 젖어버린 구자범씨와 단원들은 뿌듯한 표정으로 여러 차례 무대 인사를 하고는 퇴장했다. 로비로 나오니 막 공연장을 빠져나온 많은 관객들도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영국 연수 시절, 워릭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 공연을 많이 보러 다녔었다.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은 학교 안에 있어서 걸어서 10분이면 갔던 워릭아트센터와,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인 버밍엄 심포니 홀에서 자주 공연했다. 나는 버밍엄 시립교향악단 공연을 보러 다니면서,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이 마치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인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사카리 오라모의 페어웰 연주회를 보고, 안드리스 넬슨스의 취임 연주회를 보면서,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의 '역사'를 내가 지켜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리고 한국에도 이런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한국에서도 물론 많은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봤지만,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라는 느낌이 드는 오케스트라는 사실 없었다. 내가 사는 곳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리는 예술의전당에서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집에 어떻게 가야 하나 걱정하곤 했다. 예술의전당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으면서도 아직도 나는 예술의전당 가는 게 어디 먼 곳으로 '원정 가는' 느낌이다. 

그런데 '경기 필하모닉'은 앞으로 정기 연주회를 경기 북부의 고양에서 한 차례, 경기 남부의 수원에서 또 한 차례, 이런 식으로 열 방침이라 한다. 고양 아람누리 콘서트홀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시설 좋고 음향 좋은 공연장이지만, 음악회가 자주 열리지는 않았었다. 경기 필하모닉이 고양 아람누리의 상주 단체는 아니지만, 앞으로 이 곳에서 정기적으로 연주회를 하게 된다니, 마치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연을 보고 여유롭게 귀가하면서 기분이 좋았다.  

구자범 씨는 앞으로 국내에서 자주 연주되지 않던 곡들도 많이 연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경기 필하모닉의 다음달 정기 연주회 일정이 벌써 잡혔다. 6월 24일.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처럼 느껴지는 경기 필하모닉 연주, 앞으로도 기대된다. 뭔가 새롭게 기대되는 일이 생겼으니, 내 인생도 그만큼 더 재미있어진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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