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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부에서 근무할 때, 여론 조사에 내가 주장해서 '비슷한 조건의 남성 후보, 여성 후보가 출마한다면 누구를 뽑겠느냐'는 문항을 넣어본 적이 있다. '비슷한 조건이라면'이라는 전제가 현실성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여성 후보를 뽑겠다'는 대답이 훨씬 많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정치부 데스크 선배는 이에 대해 '놀라운 결과'라고 했다. 하지만 비슷한 문항을 넣었던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이는 여성 정치인들이 이미 '기득권'인 남성보다 구습에서 좀 더 자유롭고 청렴할 것이라는 인식, 그리고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감수성이 높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정치현실을 보면 잘 나가는 여성 정치인들은 이런 장점을 갖춘 신선한 인물인 경우보다는, 기득권층의 구습 정치에 잘 적응해서 잘 나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워낙 여성 정치인의 수가 적어서 여성 정치인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의가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단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고 해서 그 정치인이 의미 있는 '여성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나는 여성의 한 사람으로서, 여성 정치인이 제대로 성장하는 걸 보고 싶다. 그런데 나경원 후보가 오늘 기자회견에서 '남자가 쩨쩨하게', '여성 후보를 상대로 야권 대선후보들이 총출동'  운운하고, 자신을 '골리앗에 맞선 다윗'으로 표현했다는 기사를 보고 마음이 불편해졌다. 피부 클리닉 비판은 '여성정치인에 대한 테러'라고 했단다. 그녀는 왜 이런 식으로 '여성성'을 발현하려 하는가. 이건 암만 봐도 내가 여성 정치인에게 기대하는 '여성성'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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