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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잭 더 리퍼를봤다.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19세기말 런던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이르는 말이다. 이연쇄살인범은 런던 이스트엔드의 화이트채플 가에서 5명 이상의 매춘부들을 잔인하게 난도질하고 신체의 일부를도려내는 방식으로 살해했다. 미해결로 남은 이 사건은 지금도 리퍼학을 낳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다. 이스트엔드에서는연쇄살인사건의 흔적을 쫓는 체험 관광코스가 운영되고 있다.

 

뮤지컬 잭 더 리퍼는이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진 수많은 작품 중 하나다. 이 뮤지컬에서는 장기이식 연구용 시체를 구하기 위해영국으로 건너온 의사 다니엘이 시체 브로커인 매춘부 글로리아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위해 살인마 잭과거래를 하게 된다. 이 뮤지컬은 연쇄살인범의 정체에 대한 새로운 가설을 제공한다.


체코산 뮤지컬이지만, 원작을 그대로 공연한 건 아니다. 원작의웹사이트에 올려진 시놉시스를 보니 한국 공연과 굉장히 다르다. 각색과 연출을 맡은 왕용범 씨는 거의창작에 준할 정도로 대본을 완전히 뜯어고쳤다.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음악도 상당한 편곡 작업을 거쳤다. 이렇게 재창조된 뮤지컬 잭 더 리퍼는 꽤 흥미롭다. 3년째 공연하면서 많이 다듬어졌다고 한다.


나는 공연을 보면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떠올렸다. 이 뮤지컬은 지킬 앤 하이드의 형제 뻘이다. 배경도, 분위기도, 비슷하다. ‘지킬 앤 하이드원작소설자체도 잭 더 리퍼실제 사건에 영향을 받아 쓰여졌으니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특히 뮤지컬 잭 더 리퍼의 선과 악이 맞부딪치는 클라이막스에서는 자동적으로 뮤지컬 지킬앤 하이드의 장면이 떠오른다. 원작에서도 그렇게 연출된장면이 있는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유난히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취향을 반영해 그렇게 연출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또 이 공연이 뮤지컬 시카고와 비슷한데가 있다는 생각도 했는데, 그것은 극에 등장하는 신문기자의 행태가 시카고에 등장하는 것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뮤지컬 시카고 1920년대미국이 배경이다. ‘시카고의 기자들은 기삿거리를 만들기위해서 침소봉대와 조작을 서슴지 않고, 펜대를 놀려 수감 중인 살인범도 일약 스타로 만들어버린다. 이들의 특종 기사는흥미를 쫓는 대중의 열광 속에 돈을 벌어들이는 도구가 된다. ‘메리 선샤인이라는 인물이 이런 기자들의 대표격으로 등장한다.


잭 더 리퍼에도 이런 대표 기자가 등장한다. 특종을 쫓는, 아니, 특종이 벌어다 줄 큰 돈을 쫓는 먼로라는 신문기자다. 먼로는 잭 더 리퍼 사건과 관련된 특종을 하기 위해수사관을 협박하기도 하고, 매수하기도 한다. ‘시카고의 메리 선샤인 기자가 그랬던 것처럼, 먼로 기자 역시 살인범을 낭만적으로포장하려 한다. 먼로 기자는 사건을 쫓아다니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사건에 개입하고 사건을 만들어낸다.


먼로라는 인물은 실제 잭 더 리퍼사건 당시언론의 모습을 반영한다. ‘잭 더 리퍼가 지금까지도 연쇄살인범의 대명사로 불리는 것은 당시 신문들이 그만큼 열정적으로 관련 기사를 쏟아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잭 더 리퍼라는 조어 자체가 언론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연쇄 살인사건은 당시 대중의 흥미를 자극하는 매력적인 기삿거리였다. 연쇄살인사건 기사가 실린 신문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하루에 대여섯 차례 호외를 발행하기도 했다. 기자들의 취재 경쟁은치열했고, 실제로 수사관을 매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출처http://www.jack-the-ripper.org/)

 

경제공황, 인권유린, 전쟁피해, 화재사건,

모두가 다 유행지난 이슈일 뿐.

사람들은 이렇게말하지.

재미없어 관심없어또 그 사건. 신문 덮어.

모두가 다 반복되는이슈일 뿐. 연쇄살인 흥미로워.

피가 튀는 사건현장, 끔찍해라.

 

사람들은 갈구하지. 피가 끓는 살인사건.

엽기적인 사건현장. 환호하지.

오늘은 또 누가죽어? 내일은 또 누가 죽어? 궁금해라. 희생자는.

 

더 보여줘, 더 죽여줘……

희대의 살인마, 하루종일 그 얘기뿐.

신문 속에 사건소식.

기다리고 기다리는내일 신문.

 

도대체 누구야? 잔인해, 재밌어.

보여줘. 더 끔찍한 사건!

 

뮤지컬에서 기자가 등장하는 장면에 나오는 노래 대사들이다. ‘대중이원한다는 미명 아래 선정적인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의 행태, 점점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잘 나타나 있다. 먼로 기자는 수사관에게 독점으로 정보를 제공하면수익을 나눠주겠다고 제의하며, ‘한 사건당 최소 천 파운드니까너무빨리 범인을 잡지는 말라고 한다. 살인범의 정체를 알게 된 후에는 특종 기사로 돈을 벌 생각에 혈안이돼 매니저를 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넌 살인마, 난매니저, 기사는 다 내가 독점. 계약하자 5 5를 외치면서

 

먼로라는 인물은 극의 진행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원작 뮤지컬에는나오지 않는다. 한국 버전에서 새롭게 창조된 캐릭터다. ‘먼로기자19세기 말 영국 런던에서 활동한, 설마 저런 기자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극단적으로 그려진 캐릭터이긴 하지만,한국 사회에서 기자언론이 어떻게 비치는지에 대한 힌트도 조금은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우리는 먼로 기자의 시대에서 얼마나 많이 발전해 있는 것인가.  

 

기자를 직업으로 삼고 있어서 그런지, 영화나 공연을 볼 때 기자가등장하면 남들보다 유심히 보게 되는 것 같다. 뮤지컬 시카고를 보고 나서도 주인공보다는 메리 선샤인 기자에 집중한 글을 썼는데, ‘잭더 리퍼를 보고 나서도 주인공 다니엘이나 살인마 잭보다는 결국 먼로 기자에 대한 글을 쓰게 됐으니. 어쩔 수 없다. 나에겐 먼로 기자가 잭 더 리퍼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었으니까. (내가 본 날 다니엘은 안재욱, 살인마 잭은 이건명, 먼로 기자는 이정열이 연기했다.)

*SBS 뉴스 인터넷 취재파일로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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