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난주 토요일 '늑대의 유혹'을 봤다. 처음부터 '한류뮤지컬'을 표방했다. K-팝 히트곡들을 사용해 귀에 익은 최신 가요들이 계속 흘러나오고, 박진감 넘치는 춤도 눈을 즐겁게 한다. 평범한 여고생을 두고 '킹카' 두 사람이 벌이는 공방이 주요 소재인 만큼, 체격 좋고 잘 생긴 남자 배우들이 등장한다. 유명 가수들이 포함된 캐스팅이 화려해 눈길을 끌만하다.

10대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귀여니의 인터넷 소설이 원작이다. 강동원, 조한선 등이 출연했던 동명의 영화도 큰 인기였다. (나는 소설이나 영화는 보지 못했다.) 뮤지컬은 망언고 '전설'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던 교생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선배들의 무용담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손발이 오글거려지고 유치한 대사가 난무하지만, 보다 보면 재미있다.

K-팝의 히트곡들은 아주 절묘하게 배치됐다. '너 이 쉐끼~' 하며 욕을 퍼붓는 대사가 'Shake it! Shake it!'이라는 노래 가사로 이어지고, 살벌한 분위기의 깡패들이 갑자기 캔디를 꺼내들며 '내 귀에 캔디'를 부르는 대목 등에서는 폭소가 터진다. '개그 콘서트'를 연상하게 하는, 날렵하게 치고 빠지는 코미디 코드가 여기저기에 배치돼 웃음을 자아낸다. 


커튼콜에서는 비극적인 결말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며 주인공들을 모두 다시 무대에 불러내 신나게 한 판 벌인다. 그리고 관객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이 판에 참여하라고 권유한다. 관객들도 함께 동방신기나 DJ doc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손뼉치고, 춤추면서 공연은 끝이 난다. 나도, 함께 공연을 본 딸도 즐거운 표정으로 공연장을 나섰다. 

태성이와 한경이가 알고 보니 친남매였다는 내용이 갑작스럽게 제시되고, 사랑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는 긴장감이 확 빠지고, 태성이가 깡패들과 맞서는 결말이 황망하게 마무리되는 등 뒤로 갈수록 엉성한 구성이 아쉽다. 하지만 '늑대의 유혹'은 관객층과 그 기호를 명확히 파악하고, 이들을 만족시킨다. 유치해 보이지만 영리한 계산 아래 만들어진 뮤지컬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늑대의 유혹'을 보고 나오는데, 뭔가 허전하다. 보면서 폭소를 터뜨렸고, 재미있었으니, 그거면 된 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가볍게 웃고 즐기면 되는 뮤지컬에 뭘 더 바래? 하면서도 공연장을 나서면서도 곱씹어보게 되는 여운이 없으니 아쉬웠다. 지금 생각해 보니, 최근에 본 공연들이 대부분 그랬다. 뮤지컬을 여러 편 잇따라 봤는데, 재미는 있었으되, 여운이 별로 길지는 않았다. 

모든 공연들이 다 심오한 주제의식을 담아야만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일에 치이고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심각한 공연보다는, 별 생각 없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찾게 된다. 그런데, 이런 공연들만 한동안 보다 보면 공허해진다. 다시 진지하고 관객을 생각하게 만드는 공연이 보고 싶어진다.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공연이 그리워진다. 배우들이 치열하게 한계에 돌진하는 연기를 보고 싶어진다. 영혼에 다가오는 공연을 만나고 싶어진다. '늑대의 유혹'을 재미있게 보고 나서도 갈증을 느낀 이유다.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