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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거 꽃보직아니에요? 부러워요!”

문화부에서 공연 담당 기자로 일할 때 주변 사람들에게 참 많이 들었던 말이다.

공연 보는 게 일이잖아요. 놀면서 돈 버는 거니 얼마나 좋아요?”

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처음엔 그냥 남들은 그렇게 생각하나 보다 하고 넘겼다. 이전부터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터에 공연 취재를 맡게 됐으니 다른 일보다 적성에 맞아서 좋았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꽃보직이니, ‘놀면서 돈 번다는 얘길 하도 많이 들으니 언제부터인가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문화부 기자는 쉽고 편한 일이라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놀고 먹는 일이라는 인식이 은연중에 깔려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화부에서 일할 때 귀가가 늦는 날이 많아 가족들의 원성을 샀다. 공연을 밤에 취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중요한 공연을 못 보면 문화계 흐름을 놓칠까 봐 빠질 수 없었다. 늦은 시각까지 취재원들을 만나 업계 동향을 파악하는 일은 기본이었다. 물리적으로 위험한 사건사고 현장을 뛰어다녀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문화부에서 뉴스 리포트를 만들 땐 제작과 편집에 더더욱 품을 많이 들여야 했다. 그만큼 고민도 많이 했다

물론 남들은 여가 생활로 즐기는 공연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으니, 그 일 자체도 여가 생활과 비슷한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겠지만, 이것도 엄연한 이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직무 특성이 조금씩 다를 수는 있어도, 나는 딴 부서에 근무할 때나 문화부에 있을 때나 똑같이 치열하게 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공연장 직원들도 이런 오해를 자주 받는다고 한다. 공연 마음껏 보고 설렁설렁 다니면서 편하게 돈 버는 직업이라고. 공연 관객들에게 공연장은 일상에서 벗어난 오락이나 휴식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공연장 직원들에게 공연은 힘겨운 노동의 결과물이요, 공연장은 생계를 위해 일하는 일터이다. 공연장 직원이라고 해서 매일 공짜 공연을 보는 것도 아닐뿐더러, 직무상 필요에 의해 보는 것은 순수한 관객으로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 되어버린다.

장래 희망이 뮤지컬 배우인 딸이 얼마 전부터 성악 레슨을 받고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노래하는 걸 좋아했고, 공연을 보면서 무대를 동경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막상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니 힘이 드나 보다. ‘엄마가 왜 남들처럼 그냥 공부하는 게 제일 쉽다고 했는지 알겠어하는 걸 보면. 학과 공부와 배우 수업을 병행하는 것도 힘들지만, 요즘은 친구들의 이해 부족 때문에 속상하단다.  

엄마, 애들이 내가 뮤지컬 배우 될 거라고 했더니 공부 안하고 매일 춤추고 노래만 하면 되니 얼마나 좋겠냐고 해. 춤추고 노래하는 건 뭐 그냥 되는 건가. 내가 학과 공부를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딸은 그래서 요즘은 친구들이 심심하면 , 노래 좀 불러봐하는 것도 짜증이 난다고 했다. 자기한테는 노래 한 곡 부르는 것도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닌데, 남들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또 정작 노래를 부르면 별로 열심히 들어주지도 않는단다.   

하하. 벌써 프로 배우가 된 것처럼 예민하게 구는구나. 그럴 필요 없어. 애들이 그냥 하는 말 갖고 뭘 그렇게 신경 쓰니.”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 줬지만, 딸의 하소연을 들으니 어떤 심정일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화부 기자나 공연장 근무자들이 흔히 받게 되는 오해와 비슷한 맥락으로 느껴졌으니까.

비록 지금은 보도국을 떠나 있는 상황이지만, 문화부 기자로 일할 때 행복했다. 적성에 맞았을 뿐아니라, 열심히 일하면서 업계의 문제를 지적하고, 유망한 예술가들을 알려내고, 대중의 문화 향유 기반을 넓히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에게 문화부 기자는 좋은 직업, ‘꽃보직이 맞다. 하지만 단순히 편하고 수월한 일’, 혹은 놀고 먹는 일을 뜻하는 거라면, ‘꽃보직이라는 얘기는 좀 그만 들었으면 좋겠다.   

*방송기자클럽 회보 1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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