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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0, 북한에서 평양학생소년예술단과 평양교예단이 서울을 방문해 공연했을 때, 문화부 취재 기자로 아침 라디오뉴스에 출연했었다. 당시 라디오뉴스 진행자였던 ㅂ씨는 평양에서 온 대규모 공연단의 공연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문화부 기자네요? 그럼 공짜 표 많이 오겠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에이, 옛날엔 많이 오던데…..”

예전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평양학생소년예술단과 평양교예단 공연은 취재인원 제한이 엄격해서, 미리 초대권을 받기는커녕, 기자들도 미리 등록을 해놓지 않은 경우라면 취재할 수 없었다. 하지만 ㅂ씨는 못 믿겠다는 듯 빙긋이 웃으며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조금 과장하자면 네 책상서랍 안에 공짜 표 많이 있는 거 알고 있어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출연을 마치고 나오는데 쓴웃음이 나왔다. 생방송 뉴스 프로그램에까지 등장할 정도로, ‘문화부 기자들은 공짜 표를 많이 받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는 뜻이니까.

 
초대권은 공연 개막 즈음 홍보를 위해 발행하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다. 표가 너무 안 팔렸을 때 공짜 손님이라도 객석을 채우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 시기에 관계없이 다량 발행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처음 문화부에서 일하기 시작한 게 1998년인데, 이 무렵에는 초대권을 (친절하게도) 미리 회사로 보내주는 단체들이 가끔 있었다. 대부분 공연 기간이 긴 연극이나 뮤지컬이었다. 공연 시장이 그리 크지 않아 어차피 공연 초기에는 관계자들로 객석을 채우는 관행이 남아있을 때였다.

 
인심 쓰듯 초대권을 여러 장 주는 공연들은 대부분 정말 재미가 없었다. 초대권으로 공연 보러 갔다가 중간에 나온 경우도 몇 번 있었다. 당시에도 연극이나 뮤지컬과는 달리 한두 차례 공연으로 끝나는 클래식 음악회는 초대권을 보내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귀국독주회 류의 공연들은 보도자료와 함께 초대권을 꼬박꼬박 보내주긴 했지만, 어차피 이런 공연들은 사실상 초대 관객으로만 객석을 채우는 것이고, 이렇게 받은 초대권을 사용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기자들에게 초대권을 보내주던 관행은 공연시장의 성장과 함께 급속히 사라져갔다. 이런 와중에 처음부터 초대권 없는 공연장을 표방한 LG아트센터의 개관이 이런 변화를 가속화했다. LG아트센터의 원칙은 매회 한정된 좌석을 프레스석으로 정해놓고 담당 기자가 현장에 취재를 위해 오면 좌석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프레스석 기준을 아주 엄격하게 적용해서 문화부 기자라도 딱 그 공연 장르를 담당하는 기자가 아니라면 프레스석을 제공받을 수 없었다. 너무 야박하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그리 객석 규모가 크지 않은 LG아트센터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요즘 주요 공연장과 공연단체들은, 홍보라인을 통해 취재차 관람하겠다고 알리고, 공연 당일 현장에 담당기자가 직접 오는 경우에 한해 프레스용 좌석을 제공한다. 뮤지컬이나 연극 제작사들은 개막 초기 며칠간으로 프레스 관람 기간을 정해놓고, 미리 예약을 받아 기자들에게 관람 편의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기 공연들은 프레스라도 일찌감치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 그러니 문화부에 공짜 표가 많이 온다는 얘기는 사실과 다르다. 정확한 사실은 공연 담당기자가 취재차 관람이 가능한지 미리 확인하고 예약한 후 현장에서 프레스용 좌석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초대권을 많이 받는 곳은 따로 있다. 바로 공연을 후원하는 기업이다. 많은 기업들이 공연을 후원하는 대가로 다량의 초대권을 제공받고, 이 초대권을 기업 홍보와 접대를 위해 사용한다. 이렇게 초대권이 많이 발행되면, 공연 표를 돈 주고 사는 건 손해 보는 일이며, 웬만큼 사회적 지위가 있으면 초대권으로 공연 보는 게 당연한 일이라는 인식이 퍼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이 부분도 할 말이 많지만, 너무 길어지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문화부 기자로 일하는 동안 주변 사람들로부터 공연 표 좀 달라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정색하고 표 없다고! 없는 표를 어떻게 달라는 거야!’ 할 수는 없었다. 나 역시 문화부 가기 전 사정 모를 때에는 문화부엔 표가 많은 줄로만 알았으니까. 다행히 SBS가 관련된 공연이거나, 초대 관객을 수용할 여유가 있고 그 공연을 만든 사람들과 친분이 있는 공연이라면, 표를 구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마저 어려운 경우가 많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문화부에서 마지막 몇 년간은 표 부탁을 받으면 표는 없지만, 내가 취재하러 갈 때 동행하면 공연을 보여줄 수 있다고 대답하곤 했다. 그러나 일정을 맞추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표 부탁한 사람이 그렇게라도 하겠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공연을 보고 싶어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지금 나는 문화부를 떠난 상태이니 표 부탁 받을 일은 없지만, 혹시나 예전에 내가 표 부탁을 거절한다고 섭섭하게 여긴 분들이 계신다면 지금이라도 이런 사정이 있었다는 걸 이해해 주시기를

*방송기자클럽회보 10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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