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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든 다른 언론사든 문화계 기사들이 예전만큼 활기 있게 나오지 않고 있는 듯하다. 문화에 대한 관심도 시들한 것 같다. 후배들과 얘기하다가 5년 전에 썼던 이 글이 떠올랐다. 다른 부서에 있다가 오랜만에 문화부로 돌아가 썼던 글이었다. 일단 알리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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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사, 필수가 아닌 선택

영국 연수와 서울디지털포럼 기획으로 3년간 문화부를 떠나 있다가 얼마 복귀했다. 기자로 일한 17 조금 넘는 기간 번째 문화부 근무이니 ‘문화부 3 시기’라고 할까. 돌아와 보니 그동안 동네 사정이 크게 나아진 같지는 않다. 이제 서울은 여느 국제도시 못지 않게 공연이 많이 열리는 도시지만, 그만큼 공연 관객층이 넓어지고 저변이 튼튼해졌다고 있을지는, 글쎄, 모르겠다.

TV
뉴스에서 문화 기사의 위상도 별로 달라진 없다. 뉴스에서 문화 기사는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TV 뉴스의 문화 기사는 고정 문화 면이 있는 신문과는 달리, 기사가 넘치는 날에는 우선순위에서 먼저 밀린다. 문화 기사가 나가는 경우에도 심층 보도는 어렵고, 눈요깃거리’정도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TV라는 매체의 속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그래도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어쩌면 답답함이 내가 기사 외의 글쓰기를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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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부터 동안 이른바 클래식 음악계의‘아이돌’피아니스트 공연이 풍년이었다. 윤디로 시작해 김선욱, 지용, 랑랑으로 이어진‘공연 라인업’은 음악계의 화제였다. 국적도 한국인 , 중국인 .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흥미로운 ‘대결’로 보기에 좋은 구도였다. 게다가 중국의 동갑내기 피아니스트 윤디와 랑랑의‘라이벌 관계’는 이미 유명한 얘기 아닌가. 재미있는 기삿거리라고 생각했고, 8 뉴스에 내보낼 생각으로 기사를 썼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회사 내부에서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소수의 클래식 팬들만 관심 있는 소재 아니냐, 일반인들이 중에 명을 알겠느냐, 이런 얘기들이 나왔다고 한다. 나는 윤디-김선욱-지용-랑랑을 세웠으니 상당히 대중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기사는 써놓고도 며칠을 밀리다 사장되고 말았다.

인터뷰 섭외해 기사 쓰고, 화면 편집 공들여 하고도 방송되지 못했으니, 아무렇지도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한동안 답답하고 속이 상해 주변 사람들에게 푸념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발견하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연히 ‘아이돌’ 피아니스트 명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이들을 모르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음악계 내에서는 ‘아이돌’일지라도 바깥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저‘생소한 이름’일 뿐이었다!

물론 뉴스가 만인이 아는 사람들만 다루라는 법은 없다.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얘기만 한다면 그게 무슨‘뉴스’이겠는가. 하지만 부서마다 8 뉴스에 기사를 내기 위해 ‘세일즈’를 하고 있는 와중에, 회사 내부에서부터 기사가 소수만을 위한 기사로 여겨진다는 사실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문제였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클래식 음악계의‘팬덤 현상’

나는 피아니스트 지용<사진>과의 인터뷰를 다시 떠올렸다. 지용은 ‘혹시 용모나 패션 감각 같은 외적인 요소만 보고 오는 팬들이 있다면?”하고 물었을 ,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아주 환영해요. 왜냐하면 저는 클래식 음악의 저변을 넓히고 친근한 음악으로 만드는 꿈이거든요. 그렇게 하려면 뭔가 이슈를 잡아서 사람들을 불러와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옷이 됐든 음악이 됐든 이미지가 됐든 뭐든 저에게 관심을 갖고, 클래식 음악을 듣던 분이 분이라도 음악회에 와주시면 얼마나 기쁜 소식이겠어요. 물론 저한테는 음악이 가장 중요하지만, 저의 이미지나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서 와주시면, 제가 열심히 연주하는 클래식 음악을 들을 있고, 귀가 높아지고, 그런 호기심을 갖고 다른 연주자들을 찾아볼 수도 있게 되는 거잖아요. 제가 ‘연결 고리’가 되는 거죠.

그렇다. 나도 ‘연결고리’를 찾아야 했다. 지용의 인터뷰에서, ‘아이돌’ 피아니스트 공연 시리즈의 스타트를 끊었던 윤디에게서 실마리를 찾았다. 윤디의 공연이 끝나고 로비에서 열린 사인회의 열기가 대단해서 놀랐는데, 윤디는 공연이 끝난 다음날에도 미팅을 열어 한국 팬들을 따로 만나고 갔다는 것이다. ‘팬 관리’에 열심인 피아니스트. 클래식 음악계에도 ‘팬덤’현상이 있고, 음악가들도‘팬 관리’에 열심이다! 기사의 ‘초점’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지용의 경우는 안성맞춤이었다. 지용은 자신의 말대로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몸에 붙는 바지에 스웨터, 높은 신발을 즐겨 착용하고, 화려한 장신구도 꺼리지 않는 패션 감각부터 눈에 띈다. 공연 사인회나 미팅은 기본이고, 인파로 붐비는 명동 거리 한복판에 피아노를 놓고 연주하더니, 파격적인 뮤직 비디오까지 선보였다. 지용은 뮤직 비디오에서 연주뿐 아니라, 스모키 화장을 들판을 달리고, 바닥에 쓰러지면서 연기까지 소화해냈다‘스토리텔링’이 있는 대중가요의 뮤직 비디오를 연상하게 한다.

윤디. 지용. 그럼 김선욱은? 런던에 거주하고 있는 김선욱은 요즘 새로운 미디어로 각광받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근황을 한국 팬들에게 전하고 있다. 공연 일정을 알리는 물론이고, 끊임없이 고독한 싸움을 해야 하는 연주자의 고민을 솔직히 털어놓기도 한다. SNS 자연스럽게 활용해 팬들과 소통하는 것도 ‘팬 관리’의 예로 있지 않을까.

기사를 다시 썼다. 너무 길어질까 제일 마지막으로 공연한 랑랑까지 기사에 담지는 못했지만, 지용과 윤디, 김선욱의 사례를 소개하며 클래식 음악계의 ‘팬덤 현상’과 젊은 음악가들의 적극적인 ‘팬 관리’를 이야기했다. 등장인물은 비슷하지만 처음 썼던 기사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결국 기사는 8 뉴스에 채택돼 무사히 전파를 탔다.

나로서는 우여곡절을 겪고 아쉬움도 많은 기사였지만, 기사에 대한 회사 안팎의 반응은 괜찮았다. 공연 정보는 전혀 담지 못했지만, 시청자들 몇몇이라도 기사를 보고 요즘 클래식 음악계에는 저런 연주자들도 있구나, 하고 관심을 갖게 된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이 당장 공연장에 오지 않아도 좋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가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그게 출발점이 된다고 생각했다.


일단 손님은 끌고 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랑랑을 만났을 ,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아서 랑랑의 사례까지 기사에 담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쉬웠다. 클래식 음악계의 수퍼스타’로 불리는 랑랑은 자신을 알리는 정말 적극적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한중일 팝아트 전시회인 ‘메이드인 팝랜드’ 명예홍보대사직을 수락해 미술관에서 연주하고 몇몇 방송의 음악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랑랑은 예능이나 드라마 출연을 강력히 원했다고 한다. 여러 사정상 무산되긴 했지만, 랑랑의 소속사는 인기 가상결혼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의 닉쿤과 빅토리아 편에 랑랑이 빅토리아의 남자친구로 깜짝 출연하는 안까지 내놨다고 한다. 빅토리아가 중국 출신이라는 것을 감안한 아이디어였다. 랑랑은 자신의 공연장에 빅토리아가 찾아와 뭔가 함께 하는 방안도 적극 수용하겠다고 했다니, 만약 안이 성사됐다면 커다란 화제가 됐을 것이다.

랑랑이 지나치게 쇼맨십이 강하고 연주할 제스처도 너무 작위적이라며 싫어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하지만 나는 랑랑을 인터뷰하고 그의 연주를 보면서, 클래식 음악이‘그들만의 음악’으로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는 그치지 않으려면 랑랑 같은 음악가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 모습을 3D DVD 발매하고, 게임이나 영화 음악에 참여하고, 피아노 어플로 아이패드를 연주하고, 대중적인 이벤트를 열면서,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로 화제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건 분명 중요한 ‘트렌드’였다.

사실 클래식 음악계는 상당히 보수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른 바‘대중성’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자칫하면 음악의 본질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일부 젊은 연주자들의 열성 팬들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며 못마땅해하기도 한다. 실제로 대중성을 내세우면서 음악을 망치는 경우도 없진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는 모든 시도를 배척할 필요는 없을 같다.

얼마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했던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와 했던 인터뷰의 대목이 떠오른다. 그는 클래식 음악이 엘리트의 음악, 소수 그룹만을 위한 음악으로 여겨지고 젊은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듣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 클래식 음악에는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종종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내걸고 이뤄지는 시도들(퓨전이나 크로스오버 같은)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했더니 그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시도들이 실제로 어떤 효과가 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효과가 있다면 좋은 아니겠어요. 아무것도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무슨 시도라도 하는 낫습니다.


얀손스의 말대로, 아무것도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무슨 시도라도 하는 낫다. 역시 사람들이 문화의 가치를 몰라준다고, 문화 기사에 관심이 없느냐고 안타까워하기만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있도록 새로운 발상으로 기사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너무 통속적인 아니냐고? 위기 상황이다. 일단 손님은 끌고 봐야 한다. 문화부 3 시기에 새삼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교훈이다. <2010년 12월 클럽발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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