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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 나눠주는 공연장.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얘기다. 지난 1 10일부터 예술의전당은 콘서트홀 공연 관객 중 원하는 사람에게 사탕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공연장에는 보통 음식 반입이 금지돼 있지만, 이 사탕만큼은 예외다. 기침 예방용 사탕이기 때문이다.

기침은 휴대전화 벨 소리와 함께 공연을 방해하는 소음으로 꼽힌다. 전화를 끄면 해결되는 벨 소리와는 달리 기침은 생리적인 현상이라 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큰 기침 소리는 연주자에게, 또 주변 관객에게 방해가 되는 게 사실이다. 유명 지휘자인 쿠르트 마주어는 뉴욕 필하모닉 재직 시절, 객석의 기침 소리 때문에 연주를 중단하거나, 아예 무대에서 퇴장한 적도 있다. 희극적인 상황으로 그려졌지만, 벅스 버니 애니메이션 중에는 자꾸 기침하는 관객 때문에 연주를 시작도 못한 피아니스트가 분노를 폭발시키는 에피소드도 있다.

국내 공연장에서도 기침 소리는 큰 골칫거리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 실황 녹음을 했는데, 이 때마다 객석의 기침 소리가 함께 녹음될까 봐 신경을 곤두세웠다. (실제로 옛날 실황 음반에는 객석의 기침 소리까지 녹음돼 음반의 한 부분으로 역사에 남은 경우가 있다). 서울시향은 그래서 실황 녹음이 있을 때마다 특별히 기침 소리는 참아 달라고 부탁하는 안내 방송까지 따로 했다.

그런데 이런 안내 방송이 나온 날 기침 소리가 더 많이 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특히 악장과 악장 사이에 기침 소리가 집중된다. 이 중에는 악장 연주 도중에 참았던 기침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하지 않아도 될 헛기침소리가 더 많다. 객석 곳곳에서 하도 일제히 헛기침을 하다 보니, 그 상황이 우스워서 웃음이 터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연주자들은 객석이 다시 조용해질 때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악장과 악장 사이는 기침하라고 있는 시간이 아니다. 악장과 악장 사이도 엄연히 곡의 일부이다. 연주자들은 악장과 악장 사이에 헛기침이 많이 나오면 연주의 흐름도 깨진다고 한다. 피아니스트 김태형 씨는 참으려고 노력하며 소리 죽여 하는 기침은 사실 크게 방해 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연주가 안 나오니까 해도 되겠지하고 마음 놓고 헛기침하는 경우가 더 신경 쓰여요.’라고 말했다. 관객 처지에서도 마찬가지다. 한창 곡에 젖어있다가 한바탕 기침에다 웃음 소리까지 끼어들고 나면, 곡의 감흥이 흩어져 버린다.

실제로 관객들 중에는 기침 소리 때문에 제대로 공연을 즐기지 못했다며 공연장 측에 항의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고 한다. 예술의전당이 사탕을 나눠주기 시작한 데에는 공연을 방해하는 소음으로 자리잡은 기침 문제를 그냥 두고만 볼 수 없다는 사정이 있다. 기침 방지용 사탕을 나눠주는 해외 공연장을 벤치마킹한 것이기도 하다. 사탕을 까는 소리 자체도 소음이 될까 봐 예술의전당은 소리가 덜 나는 종이 포장이 된 사탕을 골랐다.

공연장의 기침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나는 예술의전당이 사탕을 나눠주는 걸 계기로 이 문제를 좀 더 심층적으로 보도하고 싶어 SBS의 조동찬 의학전문기자에게 함께 기사를 써보자고 제안했다. 사탕이 효과가 있다면 어떻게 있는지, 기침 소리를 줄이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를 의학적인 시각으로 풀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동찬 기자는 흥미로운 주제라며 관심을 보이며 공연장의 미세먼지까지 측정하는 열성을 보였다. 그래서 공연장 기침 문제를 문화부 기자와 의학전문기자가 사상 처음으로 함께 보도하게 되었다.   

 조동찬 기자의 취재 결과는 이랬다. 호흡기 질환이 있어서 기침이 나는 경우라면 사탕엔 의학적 효능이 없기 때문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심인성 기침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심인성 기침은 의학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낯선 환경에 놓이거나 긴장할 때 하는 기침처럼, 정신적 요인 때문에 생기는 기침을 말한다. 공연장에만 가면 괜찮다가도 괜히 기침이 날 것 같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심인성 기침이다. 기침을 주변에서 하면 따라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기침은 물을 마시거나 사탕을 먹는 것이 마음을 안정시켜 기침을 줄일 수 있다.

 또 실내 공연장의 특성상 미세 먼지가 기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공연장에는 한정된 시간과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공연 없는 상태일 때보다 공연이 열릴 때 미세 먼지 농도가 크게 높아진다. 미세 먼지가 호흡기에 들어가면 인체는 먼지를 배출하기 위해 기침을 하는 방식으로 반응한다. 이런 경우는 물을 마시거나 사탕을 먹는 게 기침을 줄이는 데 약간의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공연장 환기가 중요하다. 공연장 내 공기의 질에 대한 관심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3 7, 피아니스트 손열음 리사이틀을 보기 위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찾았다. 기침 예방용 사탕을 나눠주기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기침 방지용 사탕은 콘서트홀 안내 직원에게 요청하면 받을 수 있는데, 사탕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관객들이 많아 보였다. 그 날도 공연 도중 기침 소리가 꽤 들렸다. 환절기라서 호흡기 질환이 많겠다 싶기는 했다. 손열음 씨가 무대에 등장하기 직전이긴 했지만, 헛기침 소리가 곳곳에서 한꺼번에 터져 나오다가 웃음 소리로 바뀌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공연을 방해하는 기침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방법은 없지만, 줄일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호흡기 질환이 심해 기침을 참기가 어려우면 처음부터 공연을 보지 않는 게 상책이다. 또 심리적인 요인으로 나는 기침이라면 되도록 참도록 노력해 보자. 물이나 사탕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그런데 공연장에 따라 생수 반입이 가능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는 것은 유념해야 한다. 예술의전당은 생수는 반입이 가능하다.) 특히 악장과 악장 사이 곡의 흐름을 끊는 헛기침은 자제해야 한다. 그리고, 공연장 관계자들께도 부탁 드린다. 먼지를 줄이기 위해 공연장 환기에 좀 더 신경 써주시기를


*클럽 발코니 매거진 4-6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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