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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올린 (1)편에서 이어집니다. 



얘기를 하다 보니 리처드 용재 오닐의 개인사도 화제에 오른 셈이다. 사람들이 내러티브를 좋아한다는 그의 말은 타당하다. 리처드 용재 오닐은 맨 처음 그의 가족사를 소개했던 프로그램 이후에도 몇몇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나는 갑자기 앙상블 디토라는 이름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이미 만들어진 지 5년째 된 이름인데 새삼 물어보는 게 우스운가. 하지만 그의 대답은 진지했다.  

 

 이름을 놓고 참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디토(ditto)’는 참 재미있는 단어예요. 사실 처음에는 속어에 가까운 말이 아닌가 싶어 좀 망설이기도 했어요. “I like potato(나는 감자를 좋아해)” “Ditto(나도)!” 이런 식으로는 쓰이는데, 브람스나 모차르트와 디토라는 말이 어울릴까, 걱정했던 거죠. 하지만 디토는 참 매력적인 말이예요. 기억하기도 좋고, 많은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이름이죠. 이를테면 누가 오늘 리처드 용재 오닐이 공연해하면 그래?’ 하고 말 수 있지만, ‘디토가 공연해하면 디토? 나도 갈래!’ 할 수 있는 이름이라는 거죠. ”

 

 사실 디토란 말을 저도 예전엔 잘 몰랐어요. 영화에 나와서 유명해진 거죠. 데미 무어 나온 그 영화…..제목이 뭐였죠?”

 

 “’고스트(한국 개봉 제목은 사랑과 영혼’)’! 아주 풍부한 감정을 담은 영화였죠…… ‘디토라는 말은 우리가 하는 일의 중심 아이디어를 표상해요. 우리는 함께 느껴요. 연주자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관객들 측면에서도. 그야말로 함께 하는 느낌이죠.”

 

리처드 용재 오닐은 디토 공식이 한국에서 많은 젊은이들을 클래식 음악 팬으로 만들고 있어 흥분된다고 했다. 뉴욕 링컨센터에서는 객석이 회색빛 바다(노년층이 많다는 뜻)지만, 한국에서는 까만 머리, 검정색 물결을 본다면서. 하지만 그는 이른바 디토 공식에 대한 비판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음악보다는 외면에 치중하고, 너무 대중에 영합하는 것 아니냐는. 그는 내가 묻기도 전에 이 얘기를 꺼냈다.  

 

 비판이 있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디토의 많은 관객들이 한 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시 공연장을 찾는다는 걸로 좀 방어가 되지 않을까요. 한 번 보러 오게 만드는 것보다 다시 오게 만드는 게 훨씬 어렵거든요. 저희는 콘서트홀에 관객을 오게 하는 방법만 다르지, 음악회 자체는, 저희가 입는 옷만 빼면 아주 전통적이고 진지해요. 음악은 바꾸지 않아요.

 

디토 프로젝트를 회의적으로 봤던 독일의 한 음악가가 실제로 공연을 보고는 너희들 음악은 정말 진지하구나!’ 하고 얘기해 줘서 고맙다고 한 적이 있어요. 사람들이 뭔가 다른 것을 낮춰 보는 경향이 있다는 걸 저도 이해해요. 존중 받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아주 미묘한 경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경계는 넘지 않을 거예요.”

 

사실 앙상블 디토의 활동 방향을 리처드 용재 오닐 혼자서 결정하는 건 아니다. 기획사인 크레디아는 처음부터 앙상블 디토의 컨셉을 2,30대 젊은 여성들을 가장 만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잡았다. 어차피 모든 연령대를 만족시킬 수 있는 컨셉은 없다. 다른 관객층을 위한 기획은 별도로 하면 된다. 디토는 젊고 호감 가는 외모, 친근함과 실력을 갖춘 남성 연주자들을 내세워, 클래식 음악에 관심은 있으나, 선뜻 음악회에 갈 엄두를 못 내는 젊은 여성들을 관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기획됐다. 정재옥 대표의 말을 옮겨본다.

 

매력적인 연주자, 아름다운 선율, 그리고 크리스마스처럼 일정 시즌에 하는 축제, 이런 식으로 시장에서 원하는 걸 찾으려고 했던 겁니다. 홍보도 인쇄물을 넘어서 인터넷과 동영상,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코드로 접근하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클래식 음악의 본질은 그대로예요. 클래식 음악이 음식이라면, 식탁보나 수저, 레스토랑 디자인을 어떻게 새롭게 해 볼까 많은 고민을 하고 있지만, 음식 자체는 바꾸지 않아요.”

 

앙상블 디토는 지난해 일본에도 진출해 큰 성공을 거뒀다. 앙상블 디토는 일본에서도 먹히는 컨셉이었나 보다. 크레디아는 덕분에 일본에 클래식 한류를 일으킨 공로로콘텐츠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디토는 대중음악의 아이돌 그룹과 비슷한 데가 있다. 외국인이나 교포가 포함돼 있고, 멤버 4명을 기본으로 게스트 음악가들을 더하면 독주에서부터 2중주, 3중주, 4중주, 5중주 등등 여러 가지 조합이 가능한 것이, 이른바 유닛활동을 하는 아이돌 그룹을 연상시킨다. 정재옥 대표에게 물었더니 맞다고 했다. 

 

앙상블 디토는 종종 클래식의 아이돌로 불리기도 한다. 대중음악의 아이돌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이례적이라 할 만큼 디토가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리처드 용재 오닐은 이런 디토의 활동에 대해 뚜렷한 주관을 갖고 있었다. 인터뷰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달변이었다. 기자간담회에서는 의례적인 답변밖에 나오지 않아 인터뷰가 제대로 될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풀어내는 게 인상적이었다.

 

리처드 용재 오닐 스스로 말한 것처럼, 디토의 대중지향적 활동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도 없진 않을 것이다. 디토의 관객은 진지하지 않고 가볍다고 여기는 사람도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클래식 음악이 그들만의 음악’, ‘소수만 즐기는 음악으로 갇혀 있지 않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대중과 호흡하려는 앙상블 디토의 시도는 그래서 의미 있게 받아들여질 만하다. 마리스 얀손스가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아무 것도 해 보지 않는 것보다는 뭔가 해 보는 게 훨씬 낫지 않은가.  

*SBS 인터넷 뉴스파일로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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