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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정부가 문화예술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한 데 대해 예술가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최근 접하고, 나는 지난해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로열 콘세르트허바우와 함께 내한했던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를 떠올렸다. 그는 인터뷰에서, 문화예술은, 보이진 않지만, 마음 속에 큰 건물을 짓게 되는 것과 같다며,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강조했던 바 있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난 김에 마리스 얀손스와 인터뷰하고 옛 블로그에 썼던 글, 이리로 옮겨왔다. 두 편으로 나눠썼다.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격이 다른'연주가 뭔지를 보여준 공연이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바로 전날 마린스키 발레단 '백조의 호수'공연을 보다가 국내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한숨을 여러 차례 내쉴 수 밖에 없었던 터라, 이 '격이 다르다'는 느낌이 더욱 컸을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역시'를 되뇌게 했던 윌리엄 텔 서곡에서부터, 길 샤함이 아주 단정하고 깔끔한 연주를 들려줬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던 브람스 교향곡 4번. 여기에 객석을 흥분 상태로 몰아넣었던 앙코르 두 곡,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과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까지. 딴 생각이라고는 할 틈 없게 만드는, 영감으로 충만한 연주였다. 앙코르가 끝나자마자 저절로 용수철처럼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다.
지휘하는 마리스 얀손스를 쳐다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협연자나 단원들과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이고 웃는 모습에 내 가슴이 벅찼다. 지난 수요일 마리스 얀손스와 인터뷰 할 때의 기억도 아직 생생하다. 인터뷰했던 날 바로 후기를 쓰고 싶었지만 일이 밀려들어 미루고 있었는데, 공연을 보고 나니 더 늦기 전에 풀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마리스 얀손스를 인터뷰할 때, 처음에는 꽤 긴장도 됐다. 그가 바로 전날 밤에 도착해 굉장히 피곤해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를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로열 콘서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이끄는 거장이라는 ‘무게’가 가볍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정말 소탈하고 친근해서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공식적이고 딱딱한 질의와 응답을 했다기보다는, 개인적인 고민도 털어놓고 즐겁게 대화를 한 듯한 느낌이었다.
피로해 보였던 얀손스의 눈빛이 반짝거리고 제스처도 많아지기 시작한 것은, 내한공연과 관련된 질문 몇 가지를 한 뒤 '클래식 음악의 미래'에 대해 물었을 때부터였다. 마리스 얀손스는 ‘클래식 음악이 엘리트의 음악, 소수의 그룹을 위한 음악으로 여겨지고 젊은이들은 클래식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며 이대로 가면 미래에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 세대가 아예 없어질지 모른다며 걱정스러워했다.
그렇다면 해법은 있을까. 그는 '프로파간다'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클래식 음악에도 좋은 의미의 '프로파간다'는 필요하다면서 대답을 이어갔다.
"제 생각에 클래식 음악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육이 중요합니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음악을 충분히 가르쳐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접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야 한다거나 모든 사람이 다 음악가가 돼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원하는 걸 선택할 자유가 있지요. 문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전혀' 접하지 않고 있고, 클래식 음악이 어떤 것인지 어떤 단서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겁니다.
전세계 어디서나 대중문화 일변도로만 치닫는 건 좋지 않습니다. 너무 인기 있고, 너무 쉽고, 다른 모든 것을 잠식해 버립니다. 우리 클래식 음악가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해야 합니다. 적어도 더 많이 알리려는 노력은 해야 합니다. 이게 우리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콘서트를 하는 이유이고, 젊은이들을 리허설에 초청하고, 학교에도 가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는 음악가들의 '자구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이건 국가적인 차원에서 '정책'의 문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국가들이,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 음악을 포함한 문화예술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학교에서 언어나 수학이나 역사를 배우는 것처럼, 문화예술도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고.
그는 서구의 음악회 관객들은 계속 고령화되는 데 비해, 한국이나 중국은 관객들이 젊다며, 아주 멋진 일이라고 했다. 그는 기회만 되면 이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1996년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했을 때에도 한국 관객들의 젊음에 큰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아마 이번 내한공연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했으리라.
클래식 음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해야 한다는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2006년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연주 도중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는데, 알고 보니 이 전화기의 주인은 지휘자였던 마리스 얀손스였다! 그는 전화기 끄랴, 지휘하랴, 쩔쩔매는 모습을 멋지게 '연기'’해서 관객들의 폭소를 이끌어냈다. 아무리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가 전세계 5천만 명이 시청한다는 '대중적 이벤트'라 해도, 체통 떨어진다 생각했으면 하지 못했을, 유쾌한 '퍼포먼스'였다.
그렇다면 그는 종종 '클래식의 대중화'를 내걸고 이뤄지는'크로스오버'나 '퓨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마리스 얀손스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게 실제로 어떤 효과가 있는지, 자신은 잘 모르겠지만, 만약 효과가 있다면 좋은 일 아니냐며.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무슨 시도라도 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처음부터 마리스 얀손스에게 묻고 싶었던 게 있었다. 바로 최고 42만 원에 이르는,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의 입장료 얘기였다. 나는 해외 오케스트라 초청 공연은 워낙 많은 인원과 예산이 동원되는 행사라서, 이렇게 입장료를 책정해도 '남는 장사'를 하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 실제로 이번 공연은 적자를 기록했다. 그래도, 물었다.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것은 사실 돈이 많이 드는 일이고, 공연 관람료도 비쌉니다. 이번 공연도 마찬가지고요. 이렇게 비싼 관람료 때문에 '클래식 음악이 소수의 부유층을 위한 음악'이라는 관념이 더욱 굳어지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소 껄끄러운 질문에 대한 마리스 얀손스의 대답은 이랬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해외 오케스트라 공연의 경우 굉장히 비싸지요. 슬픈 일입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모든 나라의 정책이 바뀐다면 이런 현실도 바뀔 거라는 점입니다. 보조금이 지급될 테니까요. 좀 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정부의 주요 정책에 문화 부문을 포함시켜야 합니다"
사실 뾰족한 대답은 아니다. 얀손스에게 '뾰족한 대답'을 기대했던 건 아니었다. 내친 김에 다시 물었다. 정부의 돈을 문화에 투입하는 게 해법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글쎄요, 저는 경제학자도 정치가도 아니지만, 전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문화예술을 선사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문화예술은 인간을 한 차원 높은 세계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내면세계와 관련된 일이라는 점에서 '종교'와도 같습니다. 예술은 정신의 양식입니다. 예술에도 투자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돈을 투자해서 큰 건물을 짓는 것처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에만 투자하려 합니다. 하지만 내면 세계는 어떤가요? 만약 돈을 투자해서 사람들이 전시회나 공연을 가게 되면, 그들의 마음 속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똑같이 큰 건물을 짓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보이지 않는데 돈을 투자해야 하지?’ 하고 물어요. 돈이 모든 분야에서 너무 많은 힘을 갖고 있어요. 모든 걸 갉아먹고 균형을 깨고 있죠. 좋은 방향이 아닙니다." (2010년 11월 16일-2편에 계속됩니다. 아래 글 목록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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