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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30일 SBS뉴스 취재파일로 쓴 글.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 게스트로 고경일 씨를 초청해 나눈 이야기가 정말 흥미진진했기에 취재파일로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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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왕립 오페라 하우스는 정상급 예술가들이 서는 유럽 주요 오페라극장 가운데 하납니다. 덴마크 왕실 바로 맞은편 인공섬 위에 세워진 이 극장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공연장'으로 불립니다. 선박왕 맥킨리 모엘러가 2005년, 25억 크로네(한화 약 5천억원)을 들여 지은 이 극장은 덴마크 왕실 바로 맞은 편 인공섬 위에 세워졌습니다. 객석 천장을 만 개가 넘는 24K 순금 조각으로 마감했다고 하죠.  

https://youtu.be/J0f_Wo5FnIU(덴마크 왕립 오페라 하우스 소개 영상) 

이 극장은 코로나 이후 1년 반 동안 문을 닫았다가, 지난해 10월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를 공연하면서였죠. 오페라 '파우스트'는 덴마크 여왕을 비롯해 그동안 오페라 공연을 기다려 왔던 수많은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https://youtu.be/I4iynPKZ0oQ ('파우스트' 홍보영상) 

이 공연에서 가장 주목받은 출연자는 '메피스토펠레스' 역으로 노래한 베이스 고경일 씨였습니다. 고경일 씨는 덴마크 왕립 오페라단 270여년 역사상 첫 동양인 전속 솔리스트입니다. 2017년부터 덴마크 왕립 오페라단에서 활동했고, 2019년에 종신단원으로 계약했습니다. 덴마크 왕립 오페라단의 전속 솔리스트는 20명이고 종신 단원은 8명입니다.

유럽의 오페라극장은 전속 솔리스트가 있는 곳과 없는 곳으로 나뉘는데요, 독일과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스위스 일부는 전속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단원 중 일부는 종신계약을 하고, 대부분은 1, 2년 단위로 계약해서 일합니다. 종신 단원이라는 건 그만큼 그 아티스트의 위상이 확고하고, 극장이 신뢰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유럽 전역에서 오페라단 종신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성악가는 고경일 씨를 포함해 4명뿐입니다. 다른 국가의 오페라극장들은 대부분 단원이 없고 그때 그때 필요한 출연자들과 계약해서 공연하는 형태입니다.

덴마크 왕립 오페라 솔리스트(출처: 덴마크 왕립오페라 홈페이지)


한국에서 한세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한 고경일 씨는 프랑스에서 열린 콩쿠르에 우승하면서 2002년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마르세유 국립 오페라 최고연주자 과정 국비 장학생으로 공부했고, 처음엔 프랑스의 오페라 극장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해를 보냈지만, 전속 단원 제도가 있는 독일의 오페라극장에서 활동하고 싶어 독일로 근거지를 옮깁니다. 프랑스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언어도 환경도 완전히 다른 독일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한 거죠.

그런데 2010년, 명문 오페라극장인 독일 함부르크 오페라에서 활동하던 고경일 씨에게 뜻밖의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왼쪽 귀가 어느 날 갑자기 들리지 않게 된 겁니다. 원인도 분명치 않고, 오페라 가수 생활 최대의 위기였습니다. 한쪽 귀가 안 들린다는 건 음악가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고경일 씨는 SBS 골라듣는 뉴스룸 커튼콜 팟캐스트에 출연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는데요, 들어보시죠.

  
갑자기 귀가 왼쪽 귀가 이제 연습을 끝내고 집에 딱 왔는데 뒤통수가 느낌이 이상하더라고요 여기 왼쪽 뒤통수가 느낌이 쫙, 이게 왜 이러지 왜 이러지 그래 가지고 이렇게 하면 모르잖아요. 그냥 뭐가 이상한지, 그래서 느낌이 너무 안 좋아서 이어폰을 얼른 가져다가 귀에 이렇게 한 번씩 대봤어요. 네 근데 여기는 들리는데 여기가, 왼쪽 귀가 안 들리는 거예요.
-갑자기 갑자기요?
=그때 인생이 진짜 성악가로서 인생이 끝나나
-근데 갑자기 왜 그런 거예요. 무슨 병이?
=의사 말로는 이제 뭐 엄청난 스트레스, 좀 여러 가지 일이 있었었죠. 그러면서 스트레스가 좀 있었고 그런 상황에 귀가 안 들려 버리는데 이거는, 그 충격은 뭐 말할 수 없었어요. 사실 노래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고 노래에 올인 했었고.
-근데 이제 그냥 잘 모르는 분들은 그래도 한쪽 귀가 들리면 괜찮은 거 아니야? 그래도 다 안 들리는 게 아니라 한쪽 귀가 들리면 상관없는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잖아요. 왼쪽 귀만 안 들려도 그게 큰일인 거죠?
=이게 밸런스가 안 맞죠. 예를 들면 이렇게 내가 노래를 해도 만약에 고개만 돌려도 오케스트라 소리가 이상하게 들리죠. 네 이렇게 하면 여기는 또 들려도 또 이렇게만 노래할 수는 없잖아요. 발란스가 안 맞고 내 목소리가 또 이상하게 들려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불 덮어놓고 이렇게 막 말하시는 분 아무것도 안 들리잖아요. 그런데 그 느낌이 너무, 뻑뻑한 느낌이 들면서 노래까지 못하게 되는…. 진짜 큰일 났다.

급히 병원을 찾은 그는 잘못하면 얼굴 왼쪽의 감각이 모두 마비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전신 마취를 한 채 받은 7시간의 대수술은 문제 없이 잘 끝났지만, 여전히 청력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돼지독감(신종플루)까지 걸려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죠. 고경일 씨의 입담 덕분에 슬픈 이야기였는데도 저를 포함한 팟캐스트 진행자들은 모두 폭소를 터뜨렸는데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저는 혼자잖아요. 그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의 성악가가 귀가 안 들려서 전신 마취하고 이렇게 다 옷을 다 벗고 그냥 누워 있는데, 갑자기 잠깐 자다가 깨라, 이렇게 독일 말로 잠깐 그러더라고요. 그러더니 뭘 딱 넣는데 진짜 한 10초도 안 돼서 그냥 자고 일어나는데 7시간이 지나 있는데 딱 눈을 떠서 일어나려는데 안 일어나져요. 몸이 너무, 전신마취 깨고 머리가 막, 그 고흐의 자화상 보시면 귀가 잘려 가지고 이 붕대를 이렇게 감고 다니잖아요. 딱 그렇게 해놓고 여기 귀를 막아놓고 이렇게 있었어요.
그러고 나서 이제 병원에 한 1주일 정도 더 있으라고 그래서 있으려고 했는데 그 때 당시 슈바이네 그리프라고 이제 돼지독감(신종 플루)이 그때 유행을 했는데 제 동료들이 문병을 온다고 왔는데 이제 제가 뭐 건강한 줄 알고, 몸은 아무렇지도 않았으니까, 수술한 상태에서 그냥 병원 뭐라 그러죠, 병원 가운이라고 그걸 입고서 막 돌아다닌 거에요. 잘 가라 잘 가라 하다가, 몸이 너무 아파 가지고 왜 이러지 왜 이렇게 춥지?
-돼지독감에 걸리신 거예요?
=몸이 그냥
-웃을 일이 아닌데 진짜
=침대에 누워서 이렇게 있는데 몸이 이렇게 떨리죠. 계속 떨리는 거예요. 추워서. 그러니까 병원에 간호사한테 나 추워 죽겠다. 죽겠다 하는데, 하는 게 없어, 이불만 한 10장 더 줘, 이불만 덮어줘요. 또 추워 그리고 또 이불, 이 이불을 10장을 더, 무거워 죽게끔 막 이렇게, 그러더니. 이건 코미디예요. 이제 한국 사람 아시아 사람이 갑자기 독일 병원에서, 근데 이거 정말 생각하면 외로운 거, 너무 늙은 거 같고,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웃기는 거잖아요. 네, 코미디같이 그렇게 지냈는데 이제 아무튼 병원에서 막 처치를 잘해주고 그래가지고, 그건 다 깨끗하게 나았고, 근데 계속 귀는 안 들리더라고요

수술을 받은 뒤에도 청력이 회복되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고경일 씨는 독일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버텼습니다. 마치 고흐의 귀 자른 자화상 같은 모습의 자신을 날마다 거울 속에서 보며 얼마나 힘겨웠을까요. 하지만 6개월이 지나자 기적같이 청력이 돌아왔습니다. 고경일 씨 얘기를 들으면서 저도 아 정말 다행이다, 마음을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의학 용어라 제가 정확하게 이해를 못했는데 뭔가가 찢어졌다고 그러더라고요. 이 안에서 스트레스로 뭔가가 찢어졌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근데 그거를 자기네들이 잘 메꿨으니 시간이 지나면(낫는다고). 그래도 6개월 동안은 지옥이었어요. 안 들리니까 그러니까 그 자화상 거울 아침에 보면 계속 피가 나요.
이렇게 피가 나요. 계속 나고 그래서 붕대를 감고 거울을 보고 있으면 이게 내가 성도 고씨잖아요, 내가 고흐가 된 건가, 고흐랑 같은 집안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거 정말 이렇게 살다가 나는 이거 뭐, 내가 인생이 뭐가 되는 건가, 뭐 별 생각이 다 들었죠.
그랬는데 딱 6개월 지나서 '어? 들린다!'
-그게 어떻게 그냥 갑자기 느낌이 좋은데 이렇게 (된 건가요?)
=느낌이 좋아요. 느낌이 뭔가 상쾌한 느낌이 나요. 상쾌해, 이상하다, 그래갖고 또 이어폰을 갖다 대니까 들리는 거예요.
-그게 그냥 독일에 계실 때 그때?
=네. 계속 독일에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 몸 상태로 한국에 들어올 수는 없었어요. 어떻게든 버텨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 인생이 뭐냐 하면 저는 포기하지 않은 인생을 항상 생각을 하거든요. '한 번 안 되면 어때 이 다음에 하면 되지' 그런 생각을 항상 갖고 있고 그때 당시에 내가 '아 이거 귀가 안 들으니까 난 끝났구나' 해서 무너지고 '한국을 가자' 해서 그냥 왔으면 사실 이렇게 지금 이렇게 SBS에 못 왔죠. 그러니까 항상 포기하지 않고 또 한 도전하고 또 한 번 도전하는 그게 저는 제 삶의 방식이거든요.
그래서 귀가 들리니까 '귀가 들리니까 한국 가자', 이게 아니고 귀가 들리니까 그때 당시 독일 매니저한테 '야 나 귀가 들린다 네가 지금 (공연) 잡을 수 있는 거 아무거나 아무거나 빨리 잡아달라, 나 지금 체류 허가가 곧 끝나기 때문에 무조건 뭐든지 잡아야 된다' 그래가지고 매니저가 그냥 부랴부랴 잡아준 게 세 곳의 극장이었는데, 세 극장이 다 합격이 되어버려요.

청력 회복 후 무대에 복귀한 고경일 씨는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각오로 작은 무대도 가리지 않고 섰고, 여러 작품을 섭렵한 덕분에 다름슈타트, 데사우, 함부르크 오페라 극장 같은 큰 무대에도 설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독일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역시 성악가인 아내, 소프라노 김지혜 씨를 만나 결혼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음악인생에 또다른 전환점이 찾아오는데요, 아내가 2016년 덴마크 국립방송합창단에 입단하면서부텁니다. 
 
근데 갑자기 어느 날 (부인이) 오빠, 덴마크 코펜하겐 방송국에 이제 덴마크 라디오라 해 가지고, DR 네네, 그 우리나라로 치면 국립방송국 KBS예요. 그러니까 그 덴마크 국립 방송국에 합창단이 있거든요. 거기에 자리가 나왔는데 어떡하지? '그래 한번 가 봐, 해봐' 그런데 해보는데 의무 지정곡이, 지정곡이 아니고 의무로 해야 되는 게 덴마크 노래인 거예요. 덴마크 노래는 뭐 말은 들어본 적도 없고 노래도 마찬가지로 이거 덴마크 말은 상상도 못하고, 네, 독일을 넘어갈 생각을 안 했고 독일 영주권도 있고 하니까 이걸 어떻게 하겠냐, 근데 열심히 하더라고요. 자기가 해보겠다고.
근데 유튜브를 보고 악보를 뽑아서 따라서 계속 공부를 하고, 아무튼 이걸 가지고 덴마크로 갔어요. 근데 그 잠깐에 있던 그 에어비엔비에 묵었던 주인 아줌마가 딱 읽어주는데 자기가 다 틀리게 공부한 거야. 그런데 이제 시간은 당장 이제 없고 한 이틀 뒤에 지금 노래를 불러야 되는데 발음이 다 틀렸대요. 
-에어비앤비 아줌마한테 특강을 받아야죠
=특강을 받아서 아줌마랑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그래서 그 아줌마가 결혼할 때 제가 가서 노래도 해줬어요. 그렇게 인연을 맺어가고 있습니다.
-너무 재밌어요.
=그랬는데 이제 와이프가 '오빠 나 합격했다'는 거예요. '이게 무슨 일이냐'
-운명이 덴마크로 가라고 하는군요.
=너무 좋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드는 생각이, 좋지만 이거 이거 그럼 떨어져서 지내야 되네, 독일이랑 덴마크, 어떻게 하지 왔다갔다? 그러니까 두 집 살림을 하게 되는 거예요. 이것도 걱정이 막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그래도 1년 동안은 그래도 떨어져 살았어요. 어쩔 수 없이.그랬는데 이제 와이프가 정보가 있어서, 이제 덴마크에도 덴마크 안에 성악가들의 커뮤니티가 있을 텐데, 와이프 동료들이 '왕립극장에 베이스가 자리가 나왔단다. 그래? 남편 베이스라고 그랬지? 한번 해봐? 오디션'.
근데 개인적으로 할 수가 없잖아요. 에이전시를 통해서만 가능해요. 그러니까 저 그때 당시 프랑스 매니저한테 이거 오디션을 한번 잡아달라 근데 여기에 커넥션이 없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도 만들어 한 번만 해줘 지금 와이프가 지금 여기 있는데 내가 한 번 해야 될 것 같으면 어떻게든 만들어 줘요. 그래서 매니저가 오디션을 만들어 줍니다.

엄격한 오디션을 거쳐 2017년 덴마크 왕립 오페라에 첫 동양인 솔리스트로 입단한 고경일씨. 출연하는 작품마다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2019년 종신 단원 계약까지 맺게 됩니다. 꿈만 같았다고 하네요. 당시 상황을 회상하는 고경일 씨의 목소리에서 지금도 감격이 묻어나옵니다.
 
이제 솔리스트는 자꾸 극장장이 와서 면담을 해요. 이 공연은 어땠고 자꾸 평가를 한단 말이에요. 왜냐하면 극장의 얼굴이잖아요. 다른 거는 잘 표가 안 나는데 솔리스트는 다 표가 나요, 어떻게 하는지. 근데 저랑 그때 같이 들어간 동료들이 독일에 노르웨이에 웨일즈 영국 그 옆에 있는 웨일즈에, 덴마크도 있었고. 그런 동료들이 다 해고당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면담을 하면 나는 더 연장이 안 됐어 안 됐어, 그렇게.
그럼 이제 나도 올 것이 왔구나, 너 와라 그러길래 또 다른 극장을 준비해봐야 되겠다 하고 들어갔는데, 극장장이랑, 이제 우리 극장의 1인자 2인자가 이렇게 앉아 있고, 저기 앉는데, 계속 칭찬을 주고받더라고요 . 뭐가 좋고 뭐가 좋고, 되게 분위기가 이상해. 좋대. 좋아? 땡큐 땡큐. 그래 그래, 오케이, 오케이, 그랬는데, 갑자기, 그렇기 때문에 너한테 퍼머넌트 컨트랙트(종신단원 계약)을 주고 싶다,
-예상도 못하고 있었는데?
=상상을 못했어요.
-너 떠나라고 통보할 줄 알고
=이제 그래서 저는 다른 극장, 어디 극장을 가볼까 막 이런 생각까지 해보고 있었는데, 그러면 너 어떻게 할래 지금 사인할래 아니면 네 계약기간 남아 있으니까 나중에 할래, 이러더라고요. 
-그러니까 2년 남아 있을 때?
=계약 기간 1년 남아있을 때였어요. 왜 이렇게까지 나한테 호의를 베풀지? 그러니까 지금 좋다는 거예요. 무작정 그래, 너무 이게 이해가 안 돼가지고 막 서로, 뽀뽀해 줬어. 2인자는 스위스 여자고, 1인자는 영국 남자인데, 이게 나한테 있을 수 있는 일이냐, 나한테 이런 영광을 너희가 나한테 주냐, 너무너무 고맙다, 난리가 나서 거의 울기 일보 직전이고. 생각할 게 뭐 있어요. 가족이 여기 있는데.

오페라에서 '사랑을 나누는' 주역은 주로 테너와 소프라노가 맡습니다. 베이스는 일반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보다는 받쳐주는 역할일 때가 많죠. 하지만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마르케 왕, '세비야의 이발사'의 돈 바질리오, '돈 조반니'의 레포렐로 같은 배역들은 베이스가 맡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들입니다. 고경일 씨는 가장 자신 있고 관객의 호응도 컸던 배역으로 메피스토펠레스를 꼽았습니다.
 
할 때마다 거기에 그냥 모든 몰입을 하기 때문에 다 행복하게 하고 있지만, 당연히 뭐 메피스토펠레스, 그 베이스가 할 수 있는, 사실 오페라는 아시겠지만 테러나 소프라노에 모든 포커스를 맞추잖아요. 그 사람들만 주인공이잖아요. 모든 오페라가. 그런데 베이스가 사랑에 빠지고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악마 역할로서 포커스를 가장 많이 화려하게 받는 게 메피스토펠레스, 그러니까 그거 할 때 가장 기뻤던 것 같아요. 내가 베이스로서 할 수 있는 걸 막 열정적으로 할 수 있다. 뭐 이런 거 굉장히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거 할 때 인생에서 덴마크 관객한테 저거 딱 끝나고 커튼콜을 하는데, 그 함성으로 이렇게 막 휘청거릴 정도의 그걸 받아서, 관객들이 그냥 소리를, 막 일어나 가지고 소리를 지르는데, 그래서 다른 가수들한테도 저렇게 하나 그랬는데 그렇게까지는 안 하더라고요. 그래 가지고 참 이렇게, 신기하네 왜 이렇게 나를 좋아하지 이렇게 덴마크랑 합이 맞나 뭐 그런.
-근데 그 역할을 덴마크에서만 하시지는 않았을 거잖아요?
=독일에서도 좋았어요. 그러니까 그 역할에 잘 맞는 것 같아요. 저랑.
-완전 악역인데요?
=이 생긴 게 좀 그게 몬스터같이 생겼으니까 지금 분장 좀 해놓고 몬스터가 되거든요. 잘 맞는 것 같아요.
-악역 말고 또 다른 역은 또 좋아하는 게?
=다른 역할 지금 들어볼 마르케 왕이에요(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에서) 그러니까 보통 이렇습니다. 베이스는 살인자, 아니면은 왕이지만 실연을 당한 왕, 왕인데 지금도 마르케 왕도 그런 거예요.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서로 눈이 맞는데, 원래는 막 이 왕이 흠모했던 여자고, 이 사람이랑 결혼을 해야 되는데, 갑자기 트리스탄이 나타나가지고 눈이 맞아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충격을 받아가지고 나의 충신이었던 트리스탄이 날 배신하고 나의 여자를! 이런 장면에 아리아인데, 충격에 휩싸여서 부르는 노래죠. 보통 베이스의 역할들이 그렇습니다. 아니면 악마거나. 직접 사랑에 빠져서 여자랑 이렇게 러브스토리가 되는 건 잘 없어요. 베이스는 그렇습니다.

고경일 씨의 성공의 비결은 간단했습니다. 실력과 끈기.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거죠. 게다가 프랑스, 독일의 오페라 무대를 두루 거친 경험을 바탕으로, 초청 지휘자와 연출가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는 것도 장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저의 인생은 상상하지 못하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처음에 유학 갈 때는 그냥 한 3 , 4년 하고 들어가겠지 그런 생각이었는데 뭐가 계속 계약 연장이 되니까 올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20년이라는 세월이 이렇게 벌써 금방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동안 내가 뭘 잘해서 지금 여기까지 이렇게 올 수 있었다. 뭐 이런 게 (있을까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포기 안 하는 거. 뭐 안 되면 어때 안되면 당장은 실망스럽지, 그렇지만 또 하는 거 또 하면 되지. 지금 당장 귀가 안 들려? 이제 들리면 또 하면 되지. 근데 그런 생각을 계속하는 거예요. 포기하지 않는 거. 나 끝났어 이제 그러면 벌써 한국 왔겠죠. 뭐, 한국에서 좋은 일이 또 있었을 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만. 포기하지 않고 더 해보고 더 해보고 더 해보고 그게 그냥 저의 원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독일 오페라극장은 한국인 가수 없으면 멈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럽에서 한국인 성악가들의 역할은 큽니다. 그리고 한국인 성악가들의 활동 영역은 더 널리 확장되고 있죠. 동양인이 거의 없는 덴마크에서도 한국인이 왕립 오페라극장의 스타로 사랑 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고경일 씨는 29일과 30일 서울시향과 협연하는 모차르트 '레퀴엠'으로 한국 관객을 만나게 됩니다. 서울시향 음악감독 오스모 밴스케가 특별히 그의 출연을 원했고, 오페라 공연 일정 때문에 동료들과 '근무를 바꿔서' 겨우 한국에 올 수 있었다고 하네요. 유럽 활동에 바빠 한국 무대에 선 적이 없었기에 한국 관객들에게 베이스 고경일은 아직 낯선 이름입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기억해 둬도 좋겠습니다. 그가 출연하는 오페라도 한국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경일 씨가 출연했던 팟캐스트 '커튼콜' 링크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618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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