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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화문 금호아트홀이 문을 닫던 날, 고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흉상과 그가 즐겨 앉던 자리의 명패를 보면서 고인의 생전 모습을 떠올렸다. 타계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많은 음악인들이 아직도 그를 그리워한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추모식이 열린 곳이 바로 광화문 금호아트홀이었다. 수많은 음악가들이 찾아와 애도했다. 그 자리에서 울려퍼지던 말러의 '아다지에토'. 이 음악은 2005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에서 고인에 대한 추모의 뜻으로 연주되었다. 아직도 당시의 '아다지에토' 연주가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2.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24일 시작된 한국 공연에서 특별한 추모 연주를 들려줬다. 다뉴브 강 유람선 사고 희생자를 애도하며 한국 가곡을 노래한 것이다. 음악으로 전하는 따뜻한 위로였다. 음악회를 다니면서 몇 차례 들었던 '추모 연주'는 다시금 음악의 힘을 상기하게 했다. 고 박성용 회장에 얽힌 추억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추모 연주 이야기, 오래 전에 썼던 글이지만, 다시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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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 8월, 첼리스트 장한나는 독주회에서 본 공연에 앞서 포레의 ‘비가’를 연주했다. 그해 타계한 지휘자 주세페 시노폴리를 추모하기 위한 연주였다. 시노폴리는 장한나가 ‘정신적 아버지’로 부를 정도로 생전에 장한나를 무척 아끼던 지휘자였다. 나는 시노폴리가 지휘하는 모습을 객석에서 단 한 차례 봤을 뿐이었지만, 함께 고인을 추모했고 감동했다.  고인을 애도하는 예술가의 진심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후 또 한 차례의 감동적인 ‘추모 연주’를 목격했다. 바로 2005년 6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에서였다. 

“오늘 우리는 공연에 들어가기 전에 말러의 ‘아다지에토’를 특별히 연주할 것입니다. 이 곡은 지난 5월 23일 세상을 떠난 금호그룹 박성용 명예회장을 추모하기 위한 것입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도 그분 덕분에 성사됐습니다. 오늘밤 우리는 위대한 예술 후원자 중 한 사람이었던 고인에게 이 음악을 바칩니다. 우리는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고 지원하기 바랍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은 지휘봉 대신 마이크를 든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의 추도사로 시작했다. 뜻밖의 추도사에 객석 여기저기에서 낮은 탄성이 들려왔고,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하자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말러의 교향곡 제5번 4악장 ‘아다지에토’. 한없이 아름다워 슬픈, 현과 하프의 잔잔한 선율이 풍성하게 물결쳤다.  

나는 어느새 고인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음악담당 기자로서 생전의 고인과 몇 차례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공적인 관계였지 개인적 친분이 깊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아다지에토’ 연주는 내가 갖고 있는 ‘나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데 충분했다.

2000년 12월 어느 날, 금호갤러리(현재의 금호미술관) 공연장. 나는 독주회를 앞둔 바이올리니스트 이유라의 연습을 취재하고 있었다. 이유라는 금호 음악영재 출신으로, 1994년 도미 이후 처음으로 고국에서 여는 독주회였다. 카메라 기자가 연습을 촬영하는 동안 연주를 듣고 있는데, 박성용 회장이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와 객석 뒤쪽에 앉았다. 

웬일인가 의아해하는 나에게 금호문화재단의 홍보담당자가 “회장님이 공연에 애정이 많아 리허설도 자주 챙겨 본다”고 귀띔했다. 나는 홍보담당자와 공연장 문 앞에 서서 앳된 얼굴의 이유라가 연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소곤소곤 대화를 나눴다. 주로 이유라의 연주 경력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 조용하고도 단호한 목소리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연주할 때는 조용히 해주세요.” 

박성용 회장이었다. 연주에 집중하고 있던 그에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거슬렸던 것이다. 정식 공연이나 연습이나 그에게는 모두 중요한 연주였던 것이다. 나와 홍보담당자는 화들짝 놀라 문을 열고 공연장 로비로 나왔다.  

“어휴, 취재하러 왔다가 회장님한테 혼났네요.” 

고인은 이날 ‘음악가의 연주는 어떤 상황에서든 존중돼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점잖은 책망으로 전해줬던 셈이다. 나는 이유라의 독주회에서 연습 때와 다르지 않은 열성으로 연주에 몰입하는 그의 모습을 봤다. 커튼콜 때 기쁨에 찬 표정으로 기립박수를 보내던 모습까지. 물론 이유라가 ‘금호 음악영재’ 출신이라 더욱 애정이 컸겠지만, 그의 이런 모습은 이후 다른 연주자의 공연에서도 볼 수 있었다.  

내가 고인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04년 11월 고양시 덕양 어울림누리에서 열렸던 김남윤-이경숙 듀오 연주회에서였다. 새로 생긴 공연장을 멀리서 찾아온 그는 이날도 역시 연주가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연주자들에게 아낌없는 존경을 표했다. 공연장 로비에서 마주쳐 인사했더니, 그는 당시 만삭이던 나에게 ‘예쁜 아기를 낳으라’고 덕담을 해줬다. 내가 둘째딸을 낳은 게 그로부터 닷새 뒤였다.  

내가 고인의 영결식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나에게 덕담을 해주던 고인의 생전 모습과 목소리가 여전히 생생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영결식장인 금호아트홀에서는 바로 말러의 ‘아다지에토’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고인이 생전에 무척 좋아하던 곡이라고 했다. 많은 음악가들이 눈시울이 붉어진 채 고인의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었다. 회사 일에 쫓기던 나는 추모객이 너무 많아 순서를 기다리지 못한 채 일찍 나와야 했다. 하지만 ‘아다지에토’의 잔잔한 선율은 그 후로도 며칠 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이렇게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돌아온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다지에토’ 연주가 끝났지만 지휘자는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서서 깊은 추모의 뜻을 나타냈다. 태고 같은 침묵. 그것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애도의 곡을 완성하는 연주의 일부였다. 잠시 후, 지휘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는데도 숨죽인 객석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몇 초가 지나고 나서야 박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함께 박수를 보내면서 왠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참으려 애써야만 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이날 프로그램을 역시 말러의 교향곡 제1번 ‘거인’의 감동적인 연주로 마무리했다. 공연이 끝난 뒤 나는 쟁쟁한 재계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추모식이 로비에서 열리는 것을 바라보며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고인만큼 문화예술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거인’이 있을까 궁금해하면서……. 

추모식도 물론 좋지만, 고인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아마 말러의 ‘아다지에토’ 연주에 더욱 기뻐했을 터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열렬한 기립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말 그대로 영혼을 담아, 진심이 우러나는 연주를 들려줬다. 평생 이런 공연은 다시 만나기 힘들 것 같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 감사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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