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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각 동마다 1층 출입문을 여는 열쇠가 있어야 한다. 낮 시간에는 1층 출입문을 열어두기도 하지만, 아침 일찍이나 밤 시간에는 보통 닫아둔다. 밖에 나갔다가 열쇠가 없으면 낭패다. 열쇠를 가진 누군가가 올 때까지, 혹은 건물 안에서 누군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1층 출입문 안쪽에 자리잡은 경비원이 열어주는 경우도 간혹 있기는 하다.)

 지난해 말부터 아파트 단지의 출입문도 이 열쇠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하는 공사가 시작됐다. 그러더니 모든 입주자는 12월말까지 기존의 열쇠를 관리사무소에 내야 한다는 공지가 붙었다. 기존의 열쇠로는 아파트 단지 출입문까지 열 수가 없기 때문에 모두 수거하고 새 열쇠로 바꿔준다는 거다. 처음엔 공지를 잘 보지 않고 다니다가 12 31일에야 알고 열쇠를 관리사무소에 냈다. 새 열쇠는 언제 오냐 했더니 신정연휴 끝나고 오니 그 때 받으러 오란다.

 
그런데 1 3일 낮에 잠깐 집 밖에 나갔다 왔더니 아파트 1층 출입문이 잠겨 있고, 여러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열쇠가 없으니 열 방법이 없다. 출입문 안쪽을 들여다보니 경비원이 있는데, 팔짱만 끼고 앉아있었다. 열쇠는 다 걷어가고 아직 새 열쇠를 못 받았는데 왜 문을 닫아놓았는지, 왜 경비원은 문을 열어주지 않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잠시 후 아파트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어서 문이 열렸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갔다.

 
약간 짜증이 나 있던 터라 경비원에게 물었다. 며칠 전에 관리사무소에 열쇠를 내서 열쇠가 없는데 왜 문을 닫아 놓은 거냐고. 경비원은 그건 자기랑 상관없는 일이라며 관리사무소에 물어보라 했다. 새 열쇠는 언제 주느냐 했더니 그것도 모르겠단다. 중국어가 능숙했다면 더 따졌을 텐데, 말이 안 돼서 포기하고 그냥 관리사무소에 갔다. 새 열쇠를 받아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서 곧 받을 수 있는 줄 알았더니 아직 안 왔단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정확히 언제 오는지도 모르고, 그냥 곧 올 거라는 말만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아침 일찍 관리사무소에 갔던 일부 주민들만 새 열쇠를 받았다 한다. 뭐 이런 상황이 다 있나 싶었다. 일부 주민들한테만 열쇠가 있는데 왜 문은 닫아두냐 말이다. 아파트 단지 출입문 역시 닫아둬서 열쇠를 가진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리거나, 아니면 삥 돌아서 항상 열려있는 단지 정문을 이용해야 했다. 새 열쇠가 없는 주민들은 출입이 불편해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예 외출을 안 했다 한다. 이상한 건 이렇게 불편을 겪으면서도, 내 알 바 아니라며 문 안 열어주는 경비원한테나, 열쇠가 언제 올지 모른다며 마냥 사람들을 줄 세워두는 관리사무소 직원한테나, 아무도 따지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다.

한국이었다면 이런 상황이라면 주민들의 항의가 쇄도했을 거다. 아니,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열쇠가 없는 기간에 문을 열어두거나, 경비원이 문을 열어주도록 관리사무소에서 조치를 했을 거다. 아니면 처음부터 열쇠를 다 걷어갈 게 아니라 새 열쇠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걷어가든지

 며칠 후 가스비를 내러 이 지역 가스공사 지점에 찾아갔다
. 우리 집은 가스 카드에 선불 충전해 쓰는 방식인데, 가스보일러로 난방을 하고 있어서 겨울철에는 가스비가 꽤 많이 나온다. 지점에 들어서니 나처럼 가스 카드를 충전하러 온 사람들이 두 명 먼저 와 있었다. 창구 직원 한 명이 손님들을 응대하고 있길래 그 쪽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런데 창구를 가까이서 보니 직원이 한 명만 있는 게 아니었다
. 세 명이나 더 있었는데 창구 안쪽에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안 보였던 것이다. 다들 휴대전화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한 명은 주식 시황을 보고 있었고, 다른 두 명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업무는 아닌 듯했다. 지점 책임자인 듯한 사람이 뒤편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창구 직원이 고객보다 더 많은데, 여전히 고객은 기다려야 하다니. 쓴웃음이 나왔다

 이 곳 학교의 행정적 처리를 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많다
. 외국인 유학생 중에는 생활비와 학비를 포함한 중국 정부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이 많다. 이런 학생들은 지금까지는 생활비를 한 달에 한 번씩 지급받았다. 그런데 며칠 전 갑자기 학교의 유학생 담당 직원이 이메일로 통지를 해왔다고 한다. ‘정부 정책이 바뀌어생활비를 4월까지 못 주겠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라고 했다.


 장학금을 받아 생활해 온 유학생들은 모두 다 난리가 났다
. 지금까지 월급처럼 받아온 생활비를 넉 달 동안 못 받게 되는 것이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렇게 정책이 바뀌었는지에 대한 변변한 설명도 없었고, 상황이 그렇다 해도 다른 방법을 찾을 시간조차 주지 않고 이렇게 급박하게 통지하면 되는 일인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외국인 유학생들이
, 다른 학교 학생들도 똑같은 상황인지 알아보기 시작하고, 이 문제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교수들한테까지 알리는 등 강력하게 반발하자, 학교측은 통지두 시간 만에 일이 다 해결됐다고 알려왔다. 그러니까 장학금을 지금까지 주던 대로 매달 주겠다는 거다. 일이 해결된 건 다행이지만, 이렇게 금방 해결될 거면 처음부터 왜 그런 통지를 했는지. 유학생들은 평소 학교의 행정 처리는 늘 이런 식이었지만 이번에 예상 외의 반발에 부딪히니까 많이 당황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해양대학교의 유학생기숙사. 겉에서 보기엔 근사하다. 대학의 모든 건물들이 밖에서 볼 때가 훨씬 낫다>


 공공 부문 혹은 일상적으로 소비자를 상대하지 않는 분야의 서비스 마인드는 제로에 가깝고 업무 효율도 무척 떨어진다
. 예고도 없었던 정전이나 단수에 놀라 관리사무소에 가서 물어보면 곧 들어온다고 한가롭게 대답한다. 그럴 때면 내가 별 거 아닌 일에 안달하는 사람이 된 듯하다. 중국인들은 불편하고 불합리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도 웬만하면 불평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집단의 이름으로 나오는 지시사항이나 통지에 대해서는 별 말 없이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과 개인 사이 관계에서는 좀 다르다. 길바닥에서 큰 소리로 싸우는 사람들을 한국에서보다 더 자주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최근 도올 김용옥의 중국일기를 사서 네 권을 며칠 만에 다 읽었다
. 연변대학에서 가르친 경험, 그리고 고구려 유적지 답사 등등 중국에서 겪었던 일들을 일기 형식으로 적어냈다. 심지어 뭘 먹었더니 변을 시원하게 볼 수 있었다는 얘기까지 적었으니 정말 말 그대로 일기’인데, 뭐 이런 얘기들까지 다 시시콜콜 책에 냈을까 싶은 대목이 꽤 있다. 하지만 도올의 학식과 경험이 투영된 얘기라 재미있게 읽기는 했다. 그의 학식이나 경험은 내가 따라갈 바가 아니지만, 중국에서 일상 생활을 하며 겪는 불편이나 이에 대한 소소한 느낌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국에서 살기 시작한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그것도 주로 칭다오라는 이 지역에 한정된 것이니 나는 이 거대한 중국 대륙에 대해 뭘 안다고 떠들 처지는 못 된다. 하지만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인상은 분명히 있다. 이것도 외국에서 실제로 살아봐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인 듯하다. 앞으로는 또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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