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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이어집니다.

프로쉬가 간수로 있는 감옥에 산다는 쥐들을 잠깐 살펴보자. 번드르르한 공약 내걸었다가 선거만 끝나면 싹 잊어버리는 정치가는 ‘까먹쥐’ 서민의 돈을 빼돌리는 은행가는 ‘빼돌리쥐’, 수해 복구 현장에 돕겠다고 갔다가 사진만 찍고 오는 철면피들은 ‘찍쥐’, 이런 식이다.

“같은 편끼리 서로 싸우쥐, 패쥐, 헐뜯쥐, 어우 지겹쥐, 쥐들이 하도 많으니까 요즘 쥐 나오는 노래도 있잖아요. 쥐쥐쥐쥐 베이비 베이비 베이비 ~”

‘박쥐’는 독일어로 공연되지만, 김병만 씨의 대사엔 한국어와 독일어가 섞여 있다. 다른 등장인물과 주고받는 짧은 대화는 독일어로 돼 있다. 김병만 씨는 독일어 대사를 연습하는 일도 쉽지 않다 했다. 국립오페라단에서는 독일어 대사 부분을 녹음해서 보내줬고, 그는 틈만 나면 이 녹음을 들으며 발음을 연습했다.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 상황이라 자칫하면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가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영국 출신의 연출가 스티븐 로리스는 ‘박쥐’ 연출로 이름났다. 프로쉬를 캐스팅할 때 그는 김병만 씨의 코미디 영상을 보고 2분 만에 ‘이 사람이면 됐다’고 했다 한다. 그는 여러 번 ‘박쥐’를 연출하면서 다양한 ‘프로쉬’를 접했는데, 김병만 씨는 이 중 가장 젊은 프로쉬라고 했다. 보통은 은퇴한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다고 한다. 연출가는 ‘김병만씨가 오페라 제작 과정에 매료된 것 같다’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협업이었다고 말했다.

“김병만 씨는 젊고 에너지가 넘쳐요. 그래서 저도 이 역을 완전히 새롭게 연출할 수 있었죠. 이 역은 즉흥연기의 전통에서 비롯됐고, 보더빌 뮤지컬 전통과도 관련이 있어요. 그는 제가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 얘기를 했을 때 바로 이해하더라고요. 그의 프로쉬는 1920-30년대의 무성영화에 나오던 채플린과 좀 닮았어요. 아주 독특한 프로쉬예요.”

나는 김병만 씨를 연습실에서 만나고 며칠 후, 개막 직전 무대 리허설에서 다시 만났다. 무대 위에서 보는 연기는 더욱 실감나고 흥미로웠다. 그는 커튼콜에서는 오케스트라 석 앞에 등장해 지휘자 흉내를 내며 박수 갈채를 유도한다. 김병만 씨는 ‘오페라극장’에 이렇게 설 수 있는 코미디언이 또 어디 있겠느냐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정말 실컷 뛰어 논다고 놀았는데, 무대가 너무 넓은 것 같아요. 제가 조금밖에 못 뛴 것 같아요. 그 정도로 크고 웅장하고, 신기해요 그냥. 코미디 하면서 관객 2000명 정도 되는 곳을 가보긴 했지만, 객석이 이 오페라극장처럼 위 아래로 둘러싸는 건 처음 봤어요.”이미지방송 프로그램을 몇 개 하고 있는 김병만 씨는 요즘 어느 날은 한 시간, 어느 날은 두세 시간 이렇게 잠을 못 자고 있단다. 그런데도 피곤한 줄 모르겠다고 한다. 긴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처음 해 보는 오페라가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한다. 설레는 마음 때문에 졸리지도 않는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 힘들지, 즐거우면 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전엔 오페라를 잘 몰랐어요. 오페라는 노래만 하고 딱딱하고 어려운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오페라 하시는 분들도 보수적이고 어려운 분들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이번에 같이 하면서 보니까 너무나 열려 있고 좋은 분들이더라고요. 그리고 ‘박쥐’는 다른 오페라보다는 더 코믹하고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내용이잖아요. 저도 제가 안 나오는 1, 2막은 앉아서 계속 봤거든요. 봐도 봐도 재미있더라고요. 실제로 이렇게 보니까 방송에서 잠깐 보는 것의 몇 배는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오페라의 재미를 알게 된 김병만 씨는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있으면 꼭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두 번째 무대에선 더 업그레이드 될 것 아니겠느냐며. 또 국립오페라단의 창립 50주년 기념 공연 출연자답게, 오페라를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우선은 김병만의 슬랩스틱 코미디가 오페라에서 이렇게 응용될 수도 있구나, 그래서 이렇게 다양한 무대에서 할 수 있는 슬랩스틱을 하고 있구나, 이런 걸 조금이나마 알아주셨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예전에 오페라는 딱딱하고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셨다면, 이 오페레타를 보시면서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런 오페라도 있구나 하면서 오페라의 대중화를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박쥐’에는 아이젠슈타인 역에 테너 리처드 버클리스틸과 안갑성, 로잘린데 역에 소프라노 파멜라 암스트롱과 박은주, 아델레 역에 이현 강혜명, 형무소장 프랑크 역에 스티븐 리차드슨과 김관현, 오를로프스키 역에 카운터 테너 이동규, 팔케 역에 나유창, 알프레드 김기찬, 블린트 박진형, 이다 김보슬 등이 출연한다. 최희준 지휘의 코리안 심포니가 연주를 맡았다. 안 그래도 재미있는 작품에 프로쉬 역의 김병만 씨까지 가세했으니, 관객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사실 리허설을 볼 때 ‘코미디가 오히려 비극보다 어렵다’는 걸 실감했었다. 출연자들 스스로 질펀하게, 신나게 놀아야 하는 작품인데, 평소 심각한 오페라를 많이 해오던 사람들이라 스스로 연기를 하면서도 어색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연출가는 ‘박쥐’가 ‘장소 특정적’인 작품이라며, 한국적 맥락을 곁들이기 위해 최신 유행어까지 넣었지만, 정작 출연자들이 이를 잘 소화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관객이 있는 어제 첫 공연에서는 분위기가 굉장히 좋아 출연자들이 긴장을 풀고 편하게 연기했다는 후문이다.

‘박쥐’는 원래 송년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야단법석 코믹 ‘소동극’으로, 해외에서 사랑 받는 송년 단골 레퍼토리다. 국립오페라단은 지금까지 이 작품이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못했었지만, 김병만 씨의 출연으로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번 공연이 잘 되면 앞으로 고정 레퍼토리로 꾸준히 올릴 계획이라 한다. 평소 자주 공연되던 오페라들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과 개성을 가진 작품이니, 잘 발전시켜서 꾸준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박쥐’의 연습 현장과 리허설을 취재해 어제 8시뉴스에 ‘달인’의 오페라 도전을 보도했다. 숙직하느라 어제 개막한 본 공연을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꼭 보러 갈 생각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해온 김병만 씨의 연기를 다시 보고 싶고, '박쥐'의 화려하고 떠들썩한 파티 분위기에 젖어보고 싶다. 공연은 12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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