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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썼던 글을 뒤늦게 블로그에 업데이트한다. 2012년 11월 29일에 쓴 취재파일이다.

국립오페라단의 창립 50주년 기념 공연 ‘박쥐’에는 특별한 출연자가 등장한다. 바로 코미디언 김병만 씨다. 코미디언이 어떻게 오페라에 출연하느냐고? 김병만 씨가 맡은 역은 노래가 없다. 연극적 요소가 강하고 이 작품에 해학을 더하는 감초 같은 역할이다. 이런 역이 포함된 ‘박쥐’는 다른 일반적인 오페라들과는 좀 차이가 있다. 


‘박쥐’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남국의 장미’ 봄의 소리 왈츠’ 등으로 유명한 ‘왈츠의 황제’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작곡한 오페레타다. ‘오페레타’는 ‘작은 오페라’라는 뜻으로, 일종의 ‘가벼운 오페라’다. 희극적인 내용이 대부분이고 다양한 춤이 포함된다. 오페라와 뮤지컬의 중간쯤에 있다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박쥐’는 비엔나 오페레타의 황금기를 장식한 작품으로, 대사와 연기의 분량이 많아 연극적인 특성이 부각된다. 귀에 익은 경쾌한 선율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위트와 풍자가 가득한 내용이 이에 어울린다.

줄거리부터 살펴보자. 제목인 ‘박쥐’는 주인공 아이젠슈타인 남작의 친구인 팔케 박사의 별명이다. 아이젠슈타인 남작은 2년 전 팔케 박사와 함께 가장 무도회에 참석했다가 다음 날 새벽 술에 취해 잠든 팔케를 거리에 내버려둔 채 혼자 집으로 돌아온다. 우스꽝스러운 박쥐 분장으로 길에서 자다가 망신을 당한 팔케 박사는 아이젠슈타인에게 복수하려 하는데, 우선 아이젠슈타인 주변 인물들을 모두 러시아의 왕자 오를로프스키 공의 송년 파티에 초대한다. 

아이젠슈타인 남작은 세무서 직원 폭행죄로 구류를 살아야 하지만, 팔케 박사가 파티에 가자고 유혹하자 하룻밤만 신나게 놀다가 감옥에 자진입소할 생각으로 파티에 참석한다. 아이젠슈타인의 아내 로잘린데는 남편이 집을 떠나자마자 찾아온 옛 애인 알프레드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알프레드를 아이젠슈타인으로 착각한 형무소장 프랑크가 알프레드를 감옥으로 데려간다.

오를로프스키 공의 파티에 다른 사람 행세를 하며 참석한 아이젠슈타인 남작은 역시 신분을 감추고 파티에 참석한 하녀 아델레와 만나는데, ‘우리 집 하녀와 꼭 닮았다’고 말하는 아이젠슈타인 남작에게, 유명한 아리아 ‘존경하는 후작님’을 부르며 ‘사람 잘못 봤다’며 망신을 준다. 아이젠슈타인은 또 헝가리 귀족부인으로 변장하고 파티에 나타난 로잘린데가 자기 아내인지도 모르고 반해 유혹한다. 로잘린데가 부르는 차르다슈(헝가리 민속 춤곡) ‘고향의 노래여’ 역시 유명한 노래다. 이미지파티가 끝나면 무대는 감옥으로 바뀌는데, 바로 여기서 김병만 씨가 역할을 맡은 이 감옥의 간수 프로쉬가 등장한다. 항상 술에 취해 있는 그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이 역은 전세계 어디에서 공연되든 유명 희극배우가 맡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박쥐’는 한국에서는 굉장히 드물게 공연된 작품인데, 오페라 칼럼니스트 유형종 씨는 어린 시절 프로쉬로 ‘후라이보이’ 곽규석 씨가 특별 출연했던 걸 본 기억이 있다고 했다. 프로쉬 역은 상황에 따른 변주와 즉흥 연기가 가능하다. 전체 공연에서 보면 프로쉬가 등장하는 장면은 원맨쇼 막간극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이젠슈타인은 파티에서 잔뜩 취한 채로 감옥에 갔다가 아내 로잘린데의 부정을 알게 돼 분노하지만, 로잘린데 역시 간밤에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유혹하던 남편을 탓하며 설전을 벌인다. 이 때 팔케 박사가 파티 손님을 다 거느리고 감옥에 나타나 모든 일이 자신의 복수극이었다고 설명하고, 로잘린데는 남편 아이젠슈타인과 화해하며, 모두가 행복한 합창으로 막이 내린다.이미지김병만 씨는 처음 오페라단으로부터 이 오페라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무조건 하겠다’고 했단다. 얘기를 듣자마자 ‘김연아의 키스앤크라이’에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피겨 스케이트를 처음 타봤다는 그는 피나는 노력으로 멋진 연기를 보여줘 이 프로그램에 재미와 감동을 더했었다. 

 “피겨 스케이팅 할 때도 좋았거든요. 남들이 서 보지 않은 무대, 보통 개그맨들이 서기 힘든 무대잖아요. 그런데 그런 무대에 또 서게 되는 거잖아요. 오페라의 ‘달인’들 사이에 끼어 무대에 서게 되는 건 정말 영광스러운 기회죠. 열심히 해서 제 평생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성실한 땀의 결과인 ‘달인표 코미디’에서, 피겨 스케이팅으로, 또 요즘엔 ‘정글의 법칙’의 병만족 족장으로, 끊임없는 변신을 해온 그다. 생전 처음 서 보는 오페라 무대 역시 쉽지 않다. 그는 이를 ‘자갈밭길’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기회들이 제 입장에선 자갈밭길일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렇기 때문에 더 매력 있고 가치 있죠. 그 자갈밭길을 통과했을 때 가치가 더 올라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더 도전을 해보고 싶어요.”

대본은 오래 전에 받아서 혼자 고민하고 연습해 왔지만, 본격적으로 공동 연습에 합류한 것은 지난 주 초부터다. 그는 ‘정글의 법칙’을 에콰도르에서 촬영하다가 23시간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집이 아닌 예술의전당 내 국립오페라단 연습장으로 향했다. 그 동안 생각해 온 자신의 역할에 대한 아이디어를 연출가 스티븐 로리스에게 보여줬고, 연출가는 무척이나 만족해 했다. 김병만 씨의 연기에 만족한 연출가는 그의 출연 분량을 계속 늘렸다. 

김병만 씨는 술에 취한 채플린 같은 분장으로 등장해 대걸레와 춤을 추고, 생쥐와도 엎치락 뒤치락 레슬링을 하며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여준다. 연출가는 김병만 씨가 버스터 키튼이나 찰리 채플린 같다며 ‘Great! Great!’를 연발했단다. 김병만 씨는 또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쥐’로 표현하며 입담을 이어간다. 요즘 사람들이 ‘~하지’를 ‘~하쥐’로 표현하는 것에서 힌트를 얻어 대본을 자기 식으로 고치고 연습을 거듭했다.

“술 먹고 즐기고 서로 바람 피고 그런 내용의 코미디 오페라예요. 그런데 그 속에 프로쉬가 하는 얘기들이 세태를 풍자하는 거거든요. 감옥에 갇혀 있는 정치가, 은행가, 사기꾼들을 다 쥐로 표현하는 거예요. 어떤 쥐는 정말 능력 있어서 쥐구멍도 잘 찾아서 들어왔다가도 금방 빠져나간다, 이런 식으로 풍자하는 거죠.”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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