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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SBS 김영욱 PD가 쓴 책 '피아노홀릭'이다. 같은 회사에 다니지만 사실 나는 그를 이번에 처음 알았다. 내가 트위터에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쓴 걸 보고, 한 후배가 당시 책을 막 낸 김영욱 PD에게 내가 이 책에 관심 있어 할 것이라는 얘기를 전해줬다고 한다. 책을 받자마자 훑어보긴 했지만, 진득하게 앉아서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맨 처음 피아노를 배울 때 다녔던 학원에서는 별다른 이야기 없이 무작정 연습을 하게 했었다. 체르니가 뭐고, 하농은 뭔지, 소나티네는 뭔지, 이 곡을 치는 게 왜 필요한지, 이 곡을 작곡한 사람은 누구인지, 이런 걸 모르고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중에 피아노를 전공한 이모한테 다시 배우면서, 어린 나이에도 내가 학원에서 잘못 배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이 책 표지에 쓰여진,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 채 주법만 연주하게 하는 학원이 대부분이라 답답하다는 피아니스트 이용규 씨의 말에 공감이 갔다.
이 책은 피아노 음악의 역사와 변천, 주요 피아노 음악가와 작품, 명반들을 소개해 놓았다. 그렇다고 딱딱한 책이 아니다. 푸가 형식을 돌림노래 '동네 한 바퀴'로 설명한다든지, '배스킨 라빈스 31'을 '바닐라 아이스크림 주제와 30개의 변주'로 표현하며 변주곡 형식을 설명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풀어썼다. 몇 년을 피아노 치기 싫다고 도망 다니던 큰 딸이 요즘 피아노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는데, 이 책을 읽히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독특한 건 저자가 직접 연주한 곡을 수록한 부록 CD다. 거창하게 무슨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가 녹음한 게 아니라, 집에 있는 디지털피아노로 저자가 직접 치고 녹음까지 한 것이라 한다. 물론 프로페셔널의 연주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아마추어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또 책의 내용과 연결돼 이해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나는 피아노 레슨을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받았다.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건만, 굉장히 오랜 기간을 피아노와 담을 쌓고 살았다.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내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도 다시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2007년 영국 연수 갔을 때 드디어 다시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수 마치고 돌아와서는 또다시 바쁜 일상을 핑계로 피아노를 거의 치지 못하다가, 석 달 전부터 다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피아노를 치는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해서 바치는 시간이다. 회사에서는 기자 김수현으로, 집에서는 엄마 김수현으로 살다가, 피아노를 치는 시간만은 기자도, 가사노동자도 아닌, 그냥 나, 김수현이 되는 느낌이다. 정해진 코스대로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시험을 치는 것도 아니니, 내가 치고 싶은 곡을 치면 그만이다. 한동안 쇼팽이 너무 좋아 손이 안 돌아가는 건 생각도 않고 쇼팽만 붙들고 있었는데, 이제 좀 다른 작곡가들의 곡도 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영욱 PD를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책을 읽고 나니 굉장히 친근하게 느껴진다. 언제 회사에서 마주치면 차라도 한 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 PD만큼의 열정은 아니지만, 나 역시 '피아노홀릭'에 가까운 사람이기에. 지금은 디지털 피아노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지만, 나 역시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넓은 집'에 사는 게 로망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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