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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듣고 싶은 클래식'이라는 제목의 음반이 나왔다. 음반 기획자, 공연 기획자, 음악 칼럼니스트, 음악 담당기자 등 음악 관련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엄마와 함께 듣고 싶은 클래식 곡을 고르고, 에세이를 곁들인 음반. 내가 고른 곡과 에세이도 실렸다. 예쁘게 나와서 좋다. 엄마한테 한 장 드리면서 약간 쑥스러웠다. 그동안 입밖에 내지 못했던 속 얘기를 한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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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인 딸은 요즘 한번 제 방에 들어가면 나올 줄 모른다. 가끔 뭐하나 싶어 들여다보면 이어폰을 귀에 꽂고 흥얼거리고 있을 때가 많다. ‘뭘 그렇게 듣니?’ 하면 ‘뭐라고 하면 엄마가 알아?’ 하고 핀잔을 준다. 그런데 ‘엄마와 함께 듣고 싶은 클래식’을 선곡해달라는 얘기를 듣고서...는 나한테도 지금의 내 딸처럼 방에 틀어박혀 혼자 음악 듣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생각났다.
중학교 다닐 때,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10년 넘게 살던 집을 처분하고 낯선 동네로 이사했다. 나는 겉으로는 잘 지냈지만, 별 이유 없이도 답답하고 우울했다. 혼자 방에 틀어박혀 음악을 듣는 시간이 많아졌다. 거실에 있던 오디오로 녹음한 테이프 몇 개를 닳도록 돌려 들었는데, 이 때 가장 많이 듣던 음악 중 한 곡이 바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봄’ 1악장이었다.
‘봄’이라는 이름부터 마음에 들었다. 답답하고 우울했던 마음도 이 곡을 들으면 좀 풀리곤 했다. 밝고 생동감 넘치는 멜로디는 정말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노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게 음악을 들으며 흥얼거리다가도 가끔씩 내 방을 들여다보는 엄마한테는 퉁명스럽게 대했다.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냥 혼자 있게 내버려두지 왜 참견이야, 이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그 때는 그랬다.
어느새 나도 딸 키우는 엄마가 되었고 조금은 철이 들었다. 베토벤은 귓병이 악화되면서 절망에 사로잡히곤 하던 시기에 밝고 사랑스러운 이 곡을 작곡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인생의 봄을 훌쩍 떠나 보냈지만 봄을 기다리는 희망만은 놓칠 수 없었던 베토벤의 마음을 알 것 같고, 이 곡에서 문득문득 애상과 그리움이 느껴지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혼자 듣던 이 곡을 이제는 엄마하고 같이 듣고 싶다. 마음의 봄을 함께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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