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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3일, 서울디지털포럼 개막 이틀을 앞두고 한참 눈코뜰새 없이 바빴던 일요일 아침,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하지만 그 당시엔 말 그대로 '충격적'이었을 뿐이었다. 당장 눈 앞에 다가온 서울디지털포럼까지 영향을 받았으니까. 상중에 웃고 떠드는 축하 공연은 안 될 일이었다. 만찬 축하공연은 축소-프로그램 변경-일부 취소-완전 취소의 과정을 거쳤고, 개막식 식순도 추모사를 추가하는 등 일부 변경해야 했다. 포럼 기간은 너무 바빠서 그의 죽음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디지털포럼을 끝낸 바로 다음날이 고인의 장례식이었다. 포럼 기간 동안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해서 무척 피곤했지만 포럼 마무리 작업을 위해 출근하는 길,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가 장례식 중계를 틀어놓고 있었다. 한명숙 전 총리의 슬픔에 가득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가슴이 아파왔다. 택시 기사도, 나도, 아무런 말 없이 묵묵히 중계방송을 들었다. 내릴 때 보니 기사 아저씨의 눈이 젖어 있었다.


정치부에 있을 때, 인수위에 출입하면서 당선자 시절의 그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 때만큼 그의 얼굴이 환해 보였던 적은 없었다. 희망으로 가득차 있었을 때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의 열렬한 지지자가 아니었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았다. 비판도 많이 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그의 '진정성'을 의심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침묵 속에 장례식 중계를 듣던 택시 안에서의 시간 이후, 내 진정한 추모의 시간은 시간이 좀 흐른 뒤에 찾아왔다. 2009년 6월 9일, 베르디의 '레퀴엠' 공연을 보러 가서였다. '레퀴엠'은 사실 산 자를 위한 음악이다. 나는 고인을 추모하며, '우리의 삶'을 애도했다. 벌써 2년이 흘렀다. 우리의 삶은 지금 어떠한지. 아래는 2년 전 썼던 글이다.   


지난 9일(2009년 6월 9일), 고양 아람누리에서 열렸던 베르디의 ‘레퀴엠’ 공연. 함신익 씨가 지휘했고, 지난해 창단된 신생 교향악단 소리얼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 고양시립합창단과 부천필 코러스, 그리고 소프라노 김영미, 알토 이아경, 테너 나승서, 베이스 양희준 씨가 참여했다. 고양시립합창단이 지난해 열었던 정기공연의 앙코르 무고인대다. 6월 호국의 달을 맞아, ‘호국 영령을 기리기 위한 공연’으로 마련됐다고 한다.

 

‘레퀴엠’, 즉 진혼곡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안식하도록 비는 음악이다. 프로그램 북에 쓰여진 대로, 진혼곡은 ‘죽은 자를 위한 안식의 곡이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위로의 노래’이기도 하다. 산 자에게 죽음을 일깨우는 것이 위로가 된다는 이 역설. 산 자여, 잊지 말라. 인간의 삶은 어차피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니. 애도하라, 우리의 삶을.

 

60세의 베르디는 이 곡을 이탈리아 낭만주의의 두 거장 로시니와 만조니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썼다. 베르디는 고통 가운데 괴로워하고 참회하는 인류의 모습을 그리는 데 중점을 두려 했는데, 제 2곡 ‘Dies Irae(진노의 날)’에서 그려지는 최후의 심판은 과연 그가 의도한 대로, 압도적인 무게로 나에게 다가왔다.

 

사실 베르디의 ‘레퀴엠’을 실연으로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Requiem Et Kyrie(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Dies Irae(진노의 날)- Offertorio(봉헌문)- Sanctus(거룩하시다)- Agnus Dei(하나님의 어린양)- Lux Aeterna(영원한 빛을)- Libera Me(나를 용서하소서)로 구성된 이 ‘레퀴엠’은 2곡 ‘진노의 날’이 전체의 중심을 이룬다. ‘진노의 날’에 등장한 최후의 심판은 마지막까지 이 곡을 관통하는 주제다.

 

역시 베르디다. 오페라 아닌 ‘레퀴엠’이지만, ‘진노의 날’의 어둠과 구원의 빛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극적인 구성이 마치 오페라를 한 편 보는 듯 했다. 베르디는 '레퀴엠'을 단순히 종교의식에 사용되는 교회음악으로만 여기지 않고 공연장에서 연주하기 위한 작품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고양 아람누리 음악당은 많은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국내 최고의 음악 공연장’으로 꼽는 곳이다. 좋은 공연장에 좋은 공연. 단 하루로 이 공연이 끝나는 것이 아쉬웠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베르디의 ‘레퀴엠’을 감동적인 실연으로 즐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인간의 목소리가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롭고, 준엄하고, 영적이고, 극적일 수 있는지를 새삼 느낀 무대였기에.

 

이 공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기획된 것이니, 시기가 맞물린 것은 우연이겠다. 하지만 나는 이 진혼곡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고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넋은 이제 ‘진노의 날’이 묘사한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빛’ 아래 평화로운 안식을 찾았을까. 지금 인간 세상은 하루하루가 ‘진노의 날’인 것처럼, 곳곳에 ‘죽음이 엄습하고 만물이 진동하’고 있는 것만 같다. 고통이 클수록, 어둠이 깊을수록, 구원의 빛은 더욱 더 밝은 것일까. 그러기를, 제발 그러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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