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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 매거진 6월호 기고. '코로나19 시대 온라인 공연 현황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쓴 글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 몇 달간 온라인 공연 관련 글을 정말 많이 썼다. 온라인 공연 큐레이션 기사인 취재파일 '방콕에 지친 당신을 위해' 시리즈가 50회 돌파를 앞두고 있고, 이런저런 매체 원고 청탁을 받아 외부 기고도 많이 했다. 코로나19 상황이 또 안 좋아지니 당분간은 온라인 공연 관련 기사를 더 많이 쓰게 될 것 같다. 씁쓸하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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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계는 코로나19로 타격이 심한 분야 중 하나다. 감염 우려로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됐고, 지금도 여파가 이어지는 중이다. 그렇지만 공연장이 문을 닫았을 때에도 공연은 멈추지 않았다. 랜선 공연, 방구석 1열 공연으로 불리는 온라인 공연 얘기다.
‘온라인 공연’은 공연 영상을 온라인에서 상영하는 것이니, 공연의 영상화가 필연적이다. 해외에서는 공연 영상화 사업이 일찍부터 추진되었다. 선구로 꼽히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메트 온 스크린이 2006년에 시작됐고, 베를린 필하모닉의 디지털 콘서트홀, 영국 국립극장의 NT라이브 등이 대표적이다. 공연 영상을 극장 상영과 온라인 주문형 비디오(VOD:Video on Demand) 등의 형태로 제공한다.
한국에서도 메트 온 스크린, NT라이브 작품이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지만, 공연 영상화가 본격적인 화두였다고 볼 수는 없다. 예술의전당이 2013년부터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이라는 공연 영상화 사업으로 촬영한 영상을 지역의 극장이나 공연장에서 상영해왔고, 네이버TV라이브를 활용한 공연 온라인 중계가 종종 이뤄진 정도였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상황이 급변했다.
많은 국공립 공연장과 단체들이 갖고 있던 과거의 공연실황 영상을 관객 서비스 혹은 홍보 차원에서 경쟁적으로 온라인에 풀고 있다. 예술의전당은 싹 온 스크린 공연 영상물 온라인 상영회로 2주간 조회수 73만7천여회, 누적 시청자 6만3천여명을 기록했다 밝혔다. 회당 약 3천명 이상이 관람한 셈이니, 대형극장 객석 수를 웃도는 수치다.
그런데 싹 온 스크린이나 방송중계 영상을 제외하면, 관람용이 아니라 기록용이나 홍보용으로 촬영한 영상이 대부분이라, 음향이나 화면의 질이 미흡한 경우가 많다. 또 지금은 비상시국이라 그렇다지만, 온라인 스트리밍을 전제하지 않고 촬영됐던 공연 영상이 대거 상영되고 있는데, 참여했던 예술가와 스태프들의 저작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있다.
무관객 공연의 온라인 중계도 유행이다. 소속 예술단원이 있거나 재정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국공립 단체들이 주도한다. 경기아트센터처럼 예정됐던 시즌 공연을 관객 없이 진행하며 온라인에 공개하는 경우가 있고, 서울시향처럼 코로나19 상황에 맞는 공연을 새로 기획하는 경우가 있다. 서울시향은 베토벤 ‘영웅’과 ‘운명’ 교향곡, 그리고 실내악 공연을 ‘온라인 스테이지’라는 이름으로 스트리밍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무관객 온라인 중계는 관객들에게 계속 새로운 공연을 제공하고, 출연자들이 개런티를 지급받을 수 있고, 공연장을 놀리지 않고 가동한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여건이 안되는 곳들까지 너도나도 온라인 중계에 뛰어들면서 단조로운 앵글과 카메라 워킹, 조악한 음향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코로나 19 감염 우려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자 이른바 ‘집콕 라이브’ ‘홈 라이브’ 등 캐주얼한 형태의 온라인 공연도 등장했다. 2월말 바리톤 이응광 편으로 시작된 ‘방구석 클래식: 놀면 뭐하니’ 시리즈를 필두로, 많은 음악가들이 온라인에 연주 영상을 올리고 있다. 영상의 질은 떨어져도 보다 친근하고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코로나 확산 양상이 더 심각한 해외에서는 무관객 공연 온라인 중계보다는 과거 공연실황 스트리밍이 대세다. 오랫동안 유료 공연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왔던 단체들이 확실히 돋보인다. 영국 국립극장은 NT라이브 영상을 1주일에 한 편씩 무료로 공개하는데, 연극 ‘한 남자 두 주인’은 25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과거 공연 영상을 활용한 ‘온라인 큐레이션’도 많다.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는 말러 교향곡 전곡의 공연 실황 영상을 모아 ‘말러 페스티벌 온라인’을 진행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매일 한 편씩 무료로 과거 공연실황을 상영할 뿐 아니라, 1주일에 한 편씩 학생들을 위한 무료 상영작을 골라 다양한 교육 자료와 함께 제공한다. 세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은 청소년을 위한 연극 ‘맥베스’를 공개했다. 인터랙티브 대본과 각종 시청각 학습자료를 함께 제공해, 영문학 과목 공부와 시험 대비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했는데, 이용 기간도 ‘학교가 문을 다시 열 때까지’로 넉넉하다.
해외는 사실상 모두가 자가 격리 상태이니 ‘집콕 라이브’도 다채롭다. 파자마 차림으로 연주하거나,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로 연주하기 등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여럿이 모일 수 없으니 ‘랜선 실내악’, ‘랜선 오케스트라’도 유행이다. 뉴욕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등이 ‘랜선 오케스트라’ 연주를 공개했고, 유럽에 있는 예브게니 키신의 피아노 반주에 미국에 있는 르네 플레밍이 ‘아베마리아’를 노래하는 식이다.
그런데 랜선 합주는 진정한 ‘합주’라기보다는, 영상 편집의 결과물이다. 온라인에서는 전송 지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동시에 합주할 수는 없다. 각각 자신의 파트를 연주한 영상을 모아서, 마치 함께 연주한 것처럼 보이도록 영상을 편집하는 것인데, 참여자가 많을수록 박자를 맞추기가 까다롭고 편집 작업이 만만치 않다. 결국은 영상 제작 역량이 필요한 형태이다.
이렇게 요즘 ‘대세’가 된 온라인 공연이 위축된 공연계의 ‘활로’가 될 수 있을까. 공연 영상화에는 상당한 투자와 경험, 기술이 필요한 반면, 유료화는 어렵다는 점을 먼저 짚어야 한다. 해외에는 메트 오페라와 영국 국립극장, 베를린 필하모닉 등 유료화에 성공한 해외 단체들이 여럿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런 스케일의 영상화 사업을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가 많다.
온라인 공연 중계로 의미 있는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경우는 약 46억원의 중계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방탄소년단의 웸블리 스타디움 콘서트처럼 극소수 월드스타의 사례에 국한된다. 지금은 코로나19로 공연이 없으니 공짜로 제공되는 온라인 공연들을 반기지만, 평소라면 온라인에서라도 돈 내고 보자고 할 만한 공연이 이 중에 몇 편이나 될까. 영상 제작 역량도 중요하지만, 시장 규모, 공연 자체의 품질과 브랜드, 충성도 높은 팬덤이 있는지도 중요하다. 공연 영상화와 유료화를 논하기 전에 꼭 짚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온라인 공연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다. 코로나19로 공연을 상당 기간 온라인으로만 공급 소비한 경험은 공연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공연은 경험재이기 때문에 일단 온라인으로 공연을 경험한 사람은 오프라인 공연 소비 욕구도 커져, 공연 관객이 늘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영상 소비 습관이 더욱 강력해지고 다중 밀집 장소를 꺼리는 경향이 굳어져 오프라인 공연이 쇠퇴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어느 쪽이든 온라인 공연의 중요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온라인 공연은 대중과 접점을 마련하는 통로가 될 수 있으며, 공공 서비스와 홍보, 미래 관객 개발, 교육 등의 측면에서 공연의 중요한 보조재다. 메트 오페라나 NT 라이브 같은 사업을 모두가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본격적인 영상화 사업이든, 소규모의 홍보 영상이든, 온라인용 영상 제작 역량은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필수가 되었다. 영상 소비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취향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대중음악계에서는 새로운 시도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SBS 예능 프로그램 ‘트롯신이 떴다’에서는 방청객 없이 진행되는 공연을 촬영하면서, 온라인으로 접속해 보는 관객들의 모습을 노래하는 가수들 앞에 대형 스크린으로 띄웠다.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공연에 응용해, 온라인 관객의 ‘객석’을 마련한 셈이다. 전세계에 흩어진 관객들이 가수들과 함께 노래하고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등 적극적인 피드백과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다.
SM 엔터테인먼트는 오프라인 공연을 전제로 하지 않은, ‘온라인 전용 유료 콘서트’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그룹 슈퍼엠이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활용해 전 세계 팬들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고, 카드섹션으로 핑크 하트를 만드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했다. 또 실시간 3D 그래픽 등 기술을 활용해 오프라인에서 접할 수 없는 볼거리를 제공했다.
미국의 유명 래퍼 트래비스 스콧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지난달 ‘포트나이트’ 게임 속 가상현실에서 콘서트를 연 것이다. 포트나이트는 가입자가 2억 5천만명에 이르는 게임이며 가상 현실 세계다. 스콧의 아바타가 노래한 이 콘서트를 접속해서 본 사람은 무려 1천2백만 명이 넘었다.
대중음악계 사례를 따라 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그만큼 달라진 상황에 맞는 새로운 시도를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온라인 공연 시대에는 전세계 공연들이 관객의 선택을 받기 위해 함께 경쟁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현재 한국에서 하는 대다수의 온라인 공연 방식으로는 유료관객은 커녕 무료관객도 모으기 힘들 것이다. 현재 코로나19의 파고 속에 많은 공연계 종사자들에게는 ‘살아남는 것’이 당면 과제이지만, 코로나19이후도 고민해야 한다. 정부의 문화 정책도 이런 측면을 고려한 개입과 지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더 창의적이고 더 다양한 시도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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