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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랑랑-인순이 리허설 현장에서>

지난주 금요일, 청룡영화상 시상식 보신 분들 많으시죠? 이 날 시상식 축하공연에는 중국의 피아니스트 랑랑이 가수 인순이와 함께 출연했습니다. 랑랑은 먼저 쇼팽 에튀드 혁명을 연주하고, 이어 인순이가 노래하는 거위의 꿈에 피아노 반주를 했습니다. 시상식이 생중계되는 동안, ‘어쩌다 랑랑이 한국의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인순이 노래에 반주를 해주게 됐나하는 얘기, ‘청룡영화상 시상식에 웬 혁명’?’ 하는 얘기들을 SNS에서 많이 보게 됐습니다.

사실 랑랑이 이런 행사에 출연해 연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한국 가수로만 따져봐도지난 2011 MAMA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 시상식에서 아이돌 그룹 비스트와 함께 연주한 적이 있죠. 랑랑은 이런저런 대형 이벤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클래식 음악갑니다. 랑랑은 영화상 시상식에서 연주하는 걸 아주 좋아한다고 하는데요, 랑랑은 이 날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연주가 끝나자마자 전세기를 타고 대만으로 갔습니다. 대만에서 금마장 영화제에서 축하 연주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Blue Dragon Movie Award에 이어 Golden Horse Movie Award로 옮겨탄 셈이죠.

랑랑이 한국에 올 때마다 인터뷰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랑랑은 클래식 음악가라면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통념에서 자유로운 연주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콘서트홀에서 공연하는 것뿐 아니라 이런저런 대형 이벤트에 출연하는 걸 즐기는 것으로 보입니다. 3년 전에 한국에 왔을 때에도 랑랑은 드라마든 예능 프로그램이든 좋은 기회만 되면 출연할 수 있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랑랑 소속 음반사에선 MBC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에 랑랑을 출연시키는 방안도 내놨었다고 하지요.

당시 우결에는 빅토리아와 닉쿤이 출연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음반사에선 중국 출신인 빅토리아의 고향 친구 역으로 랑랑이 깜짝 출연하는 에피소드를 만들어보자는 내용을 갖고 우결제작진과 접촉했다고 합니다. 예술의전당에서 예정됐던 랑랑의 콘서트에 빅토리아가 깜짝 출연하는 것까지도 검토했다 하고요. 일정이나 여러 가지 조건이 맞지 않아 이 안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랑랑이 대중 노출에 얼마나 적극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럼 왜 랑랑은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혁명을 연주했을까요? 원래 랑랑은 청룡영화상 시상식 출연이 결정된 후 쇼팽의 왈츠 중 한 곡을 연주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랑랑의 한국측 공연 기획사에서 혁명을 연주하는 게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합니다. ‘혁명은 엄정화가 주연했던 한국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에 등장했던 곡이거든요. ‘호로비츠를 위하여가 최근 영화도 아니고, 한참 지난 영화에 나왔던 게 무슨 상관이냐 싶기도 합니다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니까 한국 영화와 약간의 인연이라도 있는 곡을 연주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답니다. 물론 왈츠보다는 이 곡이 더 격정적이고 화려한 기교를 뽐낼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겠지요.

인순이가 랑랑과 함께 출연하게 된 것은 여러 조건이 맞아 떨어진 결과였습니다. 축하 공연의 다른 출연자들이 이적, 미스 A 등이었던 점도 생각했을 것이고, 다채로운 편성이 아니라 피아노만으로 하는 연주에 맞춰 풍부한 감성을 전해줄 수 있는 가창력의 소유자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 일정도 맞아야 한다, 이런 조건들에 맞는 출연자가 인순이였던 겁니다. 랑랑 측에서도 처음에는 인순이가 누군지 잘 몰랐지만, ‘한국의 디바로 불리는 유명한 가수라는 것을 알고 흔쾌히 응했다고 합니다. 랑랑과 인순이는 청룡영화상 시상식 전 레드카펫도 함께 밟으며 입장했습니다.

거위의 꿈은 김동률이 작곡하고, 이적이 가사를 쓴 곡입니다. 김동률 이적의 프로젝트 앨범 카니발에 실렸던 곡인데 인순이가 리메이크해서 즐겨 불렀지요. 인순이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많은 영화인들, 물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계신 분들도 계시지만, 정말 배우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시는 그런 분들, 그리고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서 옆에서 많은 일들을 하시는 그런 분들과 함께 희망을 노래하고, 그 분들께도 꿈을 다시 드릴 수 있고. 만약에 '나 일 포기해야 되는 것 아냐?'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그 분들께도 꿈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랑랑은 리허설 때 인순이가 거위의 꿈이 희망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해주자, 자신의 독주곡 혁명역시 희망을 이야기하는 곡이라고 말했습니다. ‘혁명은 쇼팽이 조국 폴란드의 독립을 염원하면서 썼던 곡이라면서요. 사실 저는 격정적이고 비장한 에너지로 가득 찬 혁명이 희망을 이야기하는 곡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랑랑의 설명을 들으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거위의 꿈혁명두 곡이 다 희망이라는 키워드로 묶인 셈입니다. 랑랑이 인순이에게 환한 얼굴로 ‘We have two hopes!’라고 하더군요.

랑랑은 클래식 음악계의 슈퍼스타입니다. 1부는 독주회 무대, 2부는 협연 무대로 구성해 20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내한공연은 보름 전에 완전 매진됐습니다. 공연 후 열린 팬 사인회 역시 수백 명의 인파가 몰렸고요. 하지만 한국 내 랑랑의 인지도는 아직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한정돼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랑랑의 내한공연이 매진되기 시작한 것도 불과 2,3년 전부텁니다. 하지만 청룡영화상 축하 공연이 방송으로 나간 직후, 비록 잠시이긴 했지만 랑랑은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습니다. 랑랑을 몰랐던 많은 사람들이 랑랑이라는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된 것이지요.  

SBS
는 랑랑의 내한공연 실황을 모두 녹화했습니다. 보통 이런 유명 아티스트의 공연을 녹화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액수의 중계권료를 내야 합니다. 그래서 녹화를 하고 싶어도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랑랑은 이례적으로 중계권료를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랑랑이 다른 공연에서도 그렇게 하는지, 이번에만 그랬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러나 랑랑이 다른 클래식 연주자들과는 차별되는 면모를 보여준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클래식 음악계에 한정되는 연주자를 넘어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고 싶어한다는 것이죠.

다소 요란스러워 보이는 연주 동작, 화려한 무대 매너, 대중매체 노출을 즐기는 성향 때문에 랑랑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음악 애호가들도 있습니다. 랑랑이 이렇게 잘 나가는 이유로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든든한 배경으로 갖고 있다는 점을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랑랑이 내용 은 없이 배경 좋고 홍보 잘해서 성공한 스타라고 치부해버릴 수는 없습니다. 해석이나 스타일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 수 있어도 랑랑이 뛰어난 재능과 실력을 지닌 연주자라는 점은 분명해 보이니까요.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랑랑이 클래식 음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이번에 인순이와 함께 출연한 청룡영화상 시상식 축하 공연이 좋은 예가 될 겁니다. 저는 랑랑을 볼 때마다 참 흥미로운 연주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랑랑은 중국 대표 아티스트라는 느낌이 강했다면, 요즘 랑랑의 행보는 중국을 넘어 글로벌 스타를 지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랑랑이 다음 번에 올 때는 또 어떤 이야깃거리를 남길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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