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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예술의전당 제야음악회 보도자료를 보다가 ‘신지아’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신지아? 신지아가 누구지? 알고 보니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가
이름을 바꾼 거였다. 신현수는 한국의 차세대 음악가 대표격으로 꼽혀온 바이올리니스트다. 롱 티보 콩쿠르 우승,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3위 입상
등 세계 유수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유럽과 아시아 무대에서 활발하게 연주 활동을 해왔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함께 한국 대표 격으로 연주하기도 했다. ‘신지아 프로젝트 No.1’로 ‘격정 바흐’라는 타이틀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지난해 12월 31일부터 ‘신지아’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어요. 연주자로서 2013년을 새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한 셈이죠.
하지만 이름을 바꿨다고 해서 제 음악 자체가 바뀌거나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너무 큰 의미는 두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그럼
이름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현수라는 이름으로 몇 년 동안 유럽과 아시아 무대에서 활동해왔는데, 이름을 바꾸는 게 경력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그녀는 오래 전부터 이름 때문에 고민해 왔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 일본에서 몇 년 전부터 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처음에는 이름을 ‘현수 신’이 아니라 ‘수 신’으로 하면 어떨까 이런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어요. 그런데 사실 저는 처음엔 이름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나가고 외국 활동을 더 많이 하면서 이름이 어떻게 불리는지도 중요하구나 이런 걸
느꼈어요. 그래서 새로운 이름을 지었는데 영어 이름보다는 저는 ‘순수 국내파’라는 이미지도 있고 해서 한국 이름 ‘지아’로 하게
됐습니다.”
‘현수’라는 이름을 알파벳으로 표기하면 ‘Hyunsu’가 된다. 나는 이 표기를 갖고 도심에 나가 외국인들에게
읽어보라고 부탁했다. ‘윤수’ ‘연수’ ‘하인서’ ‘훈수’ 등등 다양한 발음이 나왔다.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처음부터 난감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영어권에서 온 사람들은 그나마 비슷하게 발음하는데, 프랑스어나 스페인어권, 그리고 아시아권 사람들의 ‘Hyun’ 발음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네, 제 이름을 못 읽으니까 한국의 단발머리 여자애, 그냥 이렇게 많이 불렸어요. 아예 ‘현’ ‘ㅎ’ 발음을
못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제 이름을 못 알아들을 때도 너무 많았어요. 멀리 봤을 때 이름도 굉장히 중요하겠구나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럼 왜 ‘지아’라는 이름을 택했을까. 신지아는 ‘작명소 가서 지었어요’ 라며 깔깔 웃어댔다. 발음이 쉬우면서 뜻도 좋은
이름으로 골랐다는 거다. ‘지아’는 한자로는 지혜 지(智), 아름다울 아(?) 자를 쓴다. 한국에서는 ‘신지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데, 아직은
이름을 바꾼 지 얼마 안 돼서 관련 기사에서 ‘신지아(현수)’, 이런 식으로 표기해 주는 경우가 많다. 해외에서는 ‘Zia Hyunsu
Shin’이란 이름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해외에서도 이미 Hyunsu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Zia’와 ‘Hyunsu’를 병기한다는
것이다.
“현수라는 제 이름이 좀 남자 이름 같았잖아요. 어릴 때 해외 콩쿠르에 지원했는데, 제가 얘기도안 했는데 그 쪽에서
‘남자’로 성별 표시를 했더라고요. 현수가 남자 이름인 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어쨌든, ‘지아’는 굉장히 여성스러운 이름이잖아요. 그래서 ‘지아
현수’ 하면 뭔가 다채로운 색깔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좀 있었고요.“
음악가들을 보면 이렇게 이름을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소프라노 조수미는 본명이 조수경이다. ‘경’ 발음을 외국인들이 너무 어려워해서 발음이 쉬운 ‘수미’로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아니스트 임현정은 HJ Lim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정’이란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냥 이름 영어표기의 이니셜을
땄다.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은 한국에서는 ‘장영주’로도 알려졌지만 몇 년 전에 ‘사라 장’으로 통일했다. 왜 그랬을까. 재미동포인
사라 장은 미국 국적으로 실제로는 일상생활에서 ‘영주’라는 한국 이름을 사용한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사라 장이 한국에 데뷔할 때만 해도 외국
이름이 낯선 때였다. ‘사라’라는 외국 이름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기자들이 한국이름을 물어 ‘영주’로 기사에 표기하면서
‘장영주’가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이름을 병용하다 보니 문제가 있었다. ‘사라 장’과 ‘장영주’가 서로 다른 연주자인 것으로
혼동하는 경우도 생겼고, ‘영주’의 발음상 문제도 있었다. ‘영주’는 영어로 ‘Young Jew’와 발음이 같다. ‘젊은 유대인’이라는 뜻이다.
이름 때문에 유대인 연주자로 오해 받기도 하는 경우가 생겼다. 결국 몇 년 전 사라 장 측에서 공식적으로 ‘장영주 대신 사라 장으로 통일해
달라’고 한국의 음악 담당기자들에게 요청했다. (여담이지만 이 시기는 재미동포 골프 선수 미셀 위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때와 맞물린다. 미셀 위의
한국 이름은 위성미이지만, 대부분의 언론이 ‘미셀 위’로 표기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서양식 이름에 거부감이 없어진 것이다.)
요즘은
해외에 주로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음악가들의 경우 아예 외국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은 본명이 윤태현이다.
베이스 전승현은 ‘아틸라 전’이라는 이름으로 해외 활동을 하고 있다. 바리톤 임경택은 ‘조셉 림’, 바이올리니스트 강주미는 ‘클라라 주미 강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해외에서 많이 활동하는 음악가라고 해서 다 외국 이름을 쓰는 건 아니다. 정경화, 정명훈, 연광철 같은 사람들은
외국인들에게 발음이 쉬운 이름은 아니지만, 본명을 그대로 쓰고 있다.)
한국 이름을 쓰느냐, 외국 이름을 쓰느냐를 놓고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이나 애국심을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그렇지만 이건 잘잘못을 따질 문제라기보단 선택의 문제에 가깝다고
본다. 연예인들이 본명 대신 ‘예명’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여기서 분명한 것은 외국인들도 발음하기 쉬운 이름까지 고민할
정도로 우리 음악가들의 활동 무대가 전세계로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SBS 뉴스웹사이트에도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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