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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예전 블로그에서 옮겨온 것이다. 아이들 크는 얘기는, 나도 어느새 잊고 지내는 게 많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아이들이 이랬구나, 싶어서 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2010년 크리스마스 때 얘긴데, 벌써 1년이 지나갔나 싶다. 

지난해 12월 사진. 장난기가 가득


나는 크리스마스 때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을 받아본 기억이 딱 한 번 있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때 '산타 같은 이모'한테서 선물을 받기는 했지만, 크리스마스 날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에 놓여있는 '산타표 선물'을 받아본 건 단 한 번이었다. 몇 살 때였는지 확실친 않지만, 할머니 댁에 놀러가 자고 일어나니 크리스마스 날 아침, 내 머리맡에 '종합 과자선물세트'가 놓여있어서 너무나 신기하고 좋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언제부터 산타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됐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지난해 12월. 유치원에 다니는 둘째가 일찍부터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유치원에 산타 할아버지가 와서 함께 파티를 할 예정인데, 이 때 줄 선물을 아이들 몰래 보내달라는 내용이 깨알같이 적힌 '가정통신문'을 자기가 먼저 읽고 만 것이다. 안 그래도 유치원 같은 반 친구들이 다 '산타 할아버지는 없고, 엄마 아빠가 선물 주는 것'이라고 했단다.


 2009년에는 우리집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산타의 선물'이 있었지만, 둘째가 더 이상 산타 할아버지를 믿지 않아, 우리 집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찾아오지 않았다. 대신 엄마 아빠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줬다. 


 그런데 생각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둘째가 이미 산타 할아버지를 믿지 않는 판인데, 5살이나 위인 첫째는 어련하겠나 싶었는데, 첫째는 티를 내지는 않으면서 산타 할아버지를 은근히 기다려왔던 것이다.


 첫째가 크리스마스 날 아침, '왜 산타 할아버지가 안 왔어?' 하기에 '산타 할아버지는 믿는 아이들한테만 찾아오는 거야. 안 그래도 바쁜데 안 믿는 어린이들한테까지 찾아오지는 못하고, 그래서 대신 엄마 아빠가 선물을 준 거잖아.' 하고 무심히 넘겼다. 


 그런데 어제 거실에 세워놓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철거'하려 하다가, 첫째가 만들어 꽂아놓은 빨간 하트 모양 장식물 뒷편에 산타 할아버지한테 쓴 편지가 있는 걸 발견했다. 'Dear Santa'로 시작해, '한 해 동안 못된 아이였을 때도 많았지만 내년에는 착한 아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쓴 편지를 보고 아차, 싶었다. 첫째는 예전에는 산타 할아버지를 믿지 않다가 2007년 영국에 살 때(영국은 산타 할아버지가 사는 북극에서 가깝다!) 산타의 존재를 믿게 된 듯하다. 


 "너 정말 산타 할아버지 많이 기다렸구나. 그런데 동생부터 산타 할아버지를 안 믿으니까 너도 그런 줄 알고 이번에 안 오신 것 같아." 


 내 말에 첫째는 둘째를 향해 '산타 할아버지 안 오신 건 다 너 때문이야' 하며 눈을 흘겼다. 그랬더니 둘째가 정말 미안해 하는 표정으로 '언니, 미안해!' 하는 거다. 우린 둘째의 반응에 모두 놀라 뒤로 넘어갈 뻔했다. 왜냐고. 둘째는 이런 아이가 아니니까. 언니한테 안 지려고 바락바락 대들고, 언니한테 잘못했을 때도 '언니한테 사과해!' 하고 엄마 아빠가 불호령을 내려야 억지로 사과하는 티를 팍팍 내며 겨우 '미안해' 한 마디 하고 마는 아이 아닌가.


 첫째가 깔깔 웃으며 "엄마, 얘가 정말 미안한가 봐. 나 얘가 미안하다고 할 때 저런 표정 짓는 거 처음 봤어" 했다. 둘째는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니까 그렇지' 하면서 피시식 웃었다. 하하. 덕분에 나도 실컷 웃었다. 


그나저나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우리 집에 산타 할아버지가 오실까. '의심하는' 둘째가 '믿는' 아이로 '개종'하게 될까. 첫째는 그 '믿음'을 유지할까. <2011년 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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