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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취재파일로 출고한 글입니다. 

베이징에 있는 랑랑을 서울에 있는 내가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베이징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최근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한국 드라마를 봤는데. 그 드라마 아세요?"

피아니스트 랑랑과 인터뷰를 하다가 잠시 귀를 의심했다. 지금 랑랑이 나한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드라마를 아느냐고 묻고 있는 거 맞나?

'클래식 슈퍼스타' 랑랑은 최근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한 새 음반을 내고 '버추얼 투어'를 하고 있는 중이다. 평소 같으면 전세계를 돌며 기자회견을 하고 공연을 했겠지만, 코로나19로 불가능해졌으니, 온라인으로 인터뷰하고 쇼케이스도 한다. 그래서 나도 지난주 베이징에 있는 랑랑을 화상 회의 시스템을 활용해 인터뷰했다. 이 인터뷰에서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얘기를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랑랑이 젊은 세대에게 클래식 음악을 더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다가, 먼저 꺼낸 얘기였다.

" 클래식 음악가들이 젊은이들과 잘 소통해야 합니다. 음악을 통해서든, 이야기를 통해서든. 새로 운 방식의 콜라보도 있을 거에요. 저는 다른 장르의 음악가들과 협업하고, 시너지를 내고, 교류해 왔고, 이를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항상 이런 일을 해왔어요. 사람들이 피아노 음악을 듣고,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갖게 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왔죠.

저는 이런 면에서 한국이 참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에 갈 때마다 젊은 음악가들이 클래식 음악을 알리기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걸 봤어요. 최근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한국 드라마를 봤는데. 그 드라마 아세요? 멋진 이야기에요."

알다 뿐인가. 나도 요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즐겨 보고 있다. 그런데 랑랑도 이 드라마를 봤고, 멋지다고 하는 거다. 랑랑의 얘기를 듣고 보니 갑자기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이 드라마의 류보리 작가는 음악계 종사 경력이 있다. 오래 전 랑랑이 소속됐던 음반사에서 클래식 음반 마케팅을 담당했었다. 혹시 기억하려나? 랑랑에게 이 드라마 작가가 예전에 음반사에서 일했던 류보리 씨라고 얘기해줬다.

"누구 얘기하는지 알겠어요! 작가가 됐군요! 그러니까 음악을 잘 아는 거였군요. 오케스트라에 대해서도 알고. 진짜 멋져요(cool)! 이 드라마 좋아해요. 이런 드라마가 나오는 건 클래식 음악계에 정말 좋은 일이에요. 한국 사람들이 잘 하고 있네요!"

나는 주말에 SBS8뉴스에 랑랑 인터뷰 기사를 내면서, 랑랑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언급한 부분을 썼다. 오래 전부터 '클래식 음악 전도사'를 자임하고, '대중적 행보'를 해온 랑랑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랑랑은 콘서트홀에서만 연주하는 음악가가 아니다. 그는 다양한 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대중을 만난다. 그는 클래식 음악계를 넘어서 일반 대중의 '스타'가 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는 이런 행보가 모두 클래식 음악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젊은 세대에게 알리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랑랑은 영화계, 팝음악계 스타들과 함께 종종 무대에 선다. 요즘 중국에서는 한국계 독일인 피아니스트인 아내 지나 앨리스와 함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음악가 부부의 일상을 친근하게 드러내고 있다. 클래식 음악도를 다룬 일본의 인기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가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주인공 노다메(우에노 쥬리)가 들려준 연주는 랑랑의 것이었다. 랑랑은 한국에 왔을 때는 클럽에서 연주하고, 어린이들에게 소품 연주를 지도하는 마스터 클래스를 하기도 했다. 2013년 청룡영화제 축하 공연에서 인순이의 '거위의 꿈'에 반주하고, 쇼팽 에튀드 '혁명'을 연주한 적도 있다. 

랑랑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유학 시절 사귄 한국인 친구들도 있고, 한국 드라마와 대중문화를 좋아한다. 여기에 결혼으로 한국과 더 깊은 인연을 맺었다. 랑랑은 장모님이 한국인이고 한국에도 친척이 생겼다며, 한국은 자신에게 특별한 나라라고 했다. 그러니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한 한국 드라마까지 알고 있는 것이겠지. 랑랑은 오래 전에 나온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까지 알고 있었다.

이게 랑랑의 인터뷰 기사에 한국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등장한 이유다. 내 기사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드라마 팬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같은 SBS 드라마니까 랑랑한테 얘기해 달라고 부탁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고 하는데, 앞서 설명한 대로 그건 전혀 아니다.

외국인 음악가를 인터뷰하는데 한국 드라마 얘기를 먼저 꺼내니, 한국 기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재미있고 관심이 커진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라는 랑랑도 좋아하는 드라마'라니, 반가운 마음이 들 것 같다. 피아니스트 랑랑에 대한 관심도 좀 더 생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랑랑은 자신이 강조한 대로, '소통'을 참 잘 하는 음악가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모든 음악가들이 랑랑처럼 할 수는 없고,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계에는 랑랑 같은 음악가가 필요하다. 코로나19로 '클래식 음악의 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요즘,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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