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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SBS에 입사한 이후, 약 10년 정도를 문화부에서 보냈다. 다른 부서를 돌다가도 문화부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해왔으니, 문화부는 언젠가는 돌아갈 ‘고향’ 같은 곳이 되었다. 지난해 말 ‘문화 전문기자’를 지망하며 6년 만에 취재현장으로 복귀했다. ‘문화부 4차 시기’다.

기자 생활 6년 차에 처음 문화부에 갔다. 부장 1명, 부원 4명인 ‘문화부’였다가, 1년 만에 ‘문화과학부’로 바뀌면서 문화 취재기자가 약간 더 늘었다. 나는 클래식 음악과 국악, 대중음악, 연극, 무용, 뮤지컬 등을 맡았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는 표어가 유행할 때였다. 남북 문화교류나 문화산업, 뮤지컬 대중화 등 이슈가 많았다. 당시엔 신문 문화면의 영향력이 컸다. 신문사 문화부는 분야가 세분화되어 한 마디로 ‘공연’이라고 불렸던 내 담당 분야를 적어도 3~4명의 기자가 나눠맡고 있었다. 네트워크와 경륜, 필력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많았다.

이에 비하면 방송사 문화부 기자는 ‘마이너’였다. 방송의 문화 기사는 신문에 비하면 제약이 많았다. ‘리뷰’가 불가능했고 길이가 짧아 깊이 있는 기사를 쓰기 어려웠다. 공연계는 예술가들뿐 아니라, 홍보 담당자나 기획자들도 전공자이거나 전문가급이 많았다. 문화부 취재원들이 각사 기사를 종종 ‘비평’하거나 ‘비교’하고, 이런 평가가 금세 공유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장에 잘 나타나지 않고 보도자료를 베껴 쓰는 기자들은 ‘뜨내기’로 평가받았다. 기자에 대한 평가가 인색하고 냉혹한 곳이었다.


나의 문화부 초창기 목표는 방송 문화 뉴스의 독자성, 문화부 기자로서 존재감을 인정받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기사를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8시 뉴스, 아침뉴스 가릴 것 없이 발제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아침뉴스 고정 문화코너에 매주 출연했다. 기사를 많이 쓰려면 많이 취재해야 했다. 밤늦게까지 공연장을 다니고, 사람들을 만났다. 사회부 때보다 더 바빴다.

단 몇 초라도 직접 보여주고 들려주는 영상의 위력은 문화 뉴스에서 특히 강력했다. 영화로 치면 편집과 후반 작업을 뜻하는 ‘포스트 프로덕션post production’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영상 구성과 음향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리포트 편집에 하도 신경을 써서 ‘뉴스에서 무슨 예술을 하냐’는 핀잔도 들었다. 방송에 미처 못 담아낸 얘기는뉴스 웹사이트에 글을 쓰며 풀어냈다. 신문사 문화부 기자에 대한 부러움을 그렇게 극복했다.

문화부는 ‘마이너’

그런데 방송사 보도국에서 문화부는 정말 마이너였다. 문화는 일단 방송 뉴스에서 비중이 작다. 문화면이 따로 있는 신문과는 달리, 문화 기사는 종합 뉴스에 구색을 갖추는 느낌으로 대개 뉴스 후반부에 배치된다. 오죽하면 방송사 문화부 기자들 사이 ‘백 톱Back top’, 뒤에서 톱이라는 뜻의 은어가 생겼을까. 백 톱은 진행 도중 빠질 확률도 높다. 문화 기사는 대개 기획이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문화라면 기계적으로 백 톱에 배치하는 관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화부가 마이너라고 실감한 결정적 순간은, 문화부에 있다가 정치부로 발령 났을 때였다. 많은 사람이 축하해 줬다. ‘나는 부서를 옮겨 새로운 경험을 쌓게 됐구나’ 정도였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동안 잘 놀았으니 이제 일 좀 해야지!’라며 격려(?)하는 한 선배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놀았다고? 그동안 문화부에서 열심히 한 건 일이 아니었다는 얘기인가?

‘문화부에서 놀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건 일이 수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문화부 기자의 ‘전문성’이란 것도, 그러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여러 부서에서 일해 보니 부서마다 특성이 다른 거지, 문화부는 쉽고 정치부 사회부는 어렵고 그런 게 아니었다. 물론 현장 안 가고 보도자료 베끼며 적당히 때우면 문화부 기자 쉽게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일하면 어느 부서를 가나 수월하다. 문화부는 취재 분야가 일반인들은 여가나 취미로 즐기는 게 많다보니 오해를 받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휴양지 호텔 직원들의 출근이 여행 가는 게 아니듯, 문화부 기자들의 취재 또한 노는 게 아니다.

인원이 적고 조직 변동이 잦다는 것도 마이너의 특성이다. 편의상 ‘문화부’라고 쓰긴 했는데, SBS에 ‘문화부’라는 이름의 부서가 있었던 기간은 얼마 안 된다. ‘문화과학부’가 가장 오랜 기간 존재했고, 사회부에 흡수된 적도 있다. 현재는 경제부 소속이다. 처음엔 ‘문화팀’과 ‘과학팀’이 동거하는 ‘문화과학부’가 어색하다고 생각했는데 방송사에선 인원이 적어 독립부서가 되기 어려운 두 팀을 거의 대등한 비중으로 합쳐놓은 게, 나름 현실적인 절충안이었던 것 같다. 사회부나 경제부같은 대형 부서에 흡수되면 문화는 더욱더 마이너가 되어버린다.

요즘 문화부의 체감 ‘마이너 지수’는 최고

사회 경제적 분위기, 뉴스 편집 기조, 인력 상황 등에 따라 문화부는 부침을 거듭해왔다. 나로서는 ‘문화부 4차 시기’인 지금, 체감 마이너 지수가 가장 높은 것 같다.
현재 SBS의 문화 취재기자는 3명으로 경제부 정책문화팀 소속이다. 교육, 보건, 의료, 환경, 농림 등 예전 사회부 정책 파트와 문화가 한 팀으로 묶였다. 문화팀이 사회부에 흡수됐을 때는 취재기자가 2명에 불과했으니 역대 최소는 아니나, 적은 건 사실이다. 27년 차인 내가 중간이고 25년 차가 막내다.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젊은 후배 기자들이 문화에 뜻이 있더라도 지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체감 마이너 지수’가 높은 건 SBS만이 아니라, 다 비슷한 것 같다. 방송 뉴스에서 문화의 존재감은 정말 미약해졌다. 요즘 방송의 문화 뉴스는 세계적 화제인 방탄소년단이나 봉준호 칸영화제 수상 같은, 모든 매체가 똑같이 쏟아내는 기사가 대부분이다. 각 방송사 문화부가 기획 경쟁을 벌이던 때도 있었는데, 현재는 주말 뉴스에 가끔 들어가는 정도다.


방송 뉴스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방송사마다 심층취재, 단독 보도를 내세우며 경쟁을 벌인다. JTBC의 ‘국정농단 보도’ 이후 본격화한 추세인 듯하다. 선택과 집중을 내세워 단독 취재 보도에 힘을 쏟고 시간도 길게 배정한다. 안 그래도 백 톱이었던 문화 기사는 더욱 설 자리가 없어지고, 조직도 쪼그라든다.

문화 뉴스의 활로를 찾아서

사실 기사가 어느 뉴스에 나가든 PC나 모바일로 나중에 기사를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별 차이가 없다. 또한 기사가 메인뉴스에 나가는 게 사내에서는 중요하지만, 시청자에게는 별 상관 없다. 요즘은 방송 뉴스가 아니라도 뉴미디어 동영상 콘텐츠로 취재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 문화 뉴스는 제약이 많은 뉴스 리포트보다, 좀 더 자유로운 뉴미디어 콘텐츠에 더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 취재 파일은 오래전부터 써왔지만, 요즘은 SBS의 뉴미디어 동영상 콘텐츠에도 담아보려고 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단독 인터뷰를 기획하고, 비디오머그 팀에 제안해 공동취재했다. 이렇게 나온 비디오머그는 뉴스 리포트에 미처 담지 못한 조성진의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줘 큰 인기를 끌었고, 취재원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비디오머그에 인터뷰 전체를 보고 싶다는 댓글이 많은 걸 보고, 인터뷰 내용을 풀 텍스트Full text로 정리해 인터넷 취재 파일로도 썼다. 역시 반응이 좋았다. 시일이 지나도 관심 있는 사람들은 꾸준히 찾아보는 것 같다.

조성진이 등장한 비디오머그 

‘방탄소년단 뮤직비디오와 영상에 숨은 클래식 코드’ 리포트를 하고 나서 비디오머그 팀과 협업해, 전문가와 수다 떠는 형식의 동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리포트로는 못 써도 흥미로운 소재가 보이면 뉴미디어 콘텐츠 제작을 종종 제안한다. 팟캐스트도 계획 중이다. 당장 성과를 내기는 어렵겠지만, 다양하게 시도하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사람을 키워야 기사가 나온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방송 뉴스’의 시대는 갔다. 시청자는 ‘하나의 큰 덩어리(Mass)’가 아니고, 뉴스를 통으로 소비하지도 않는다. 취향이 다양해지고 세분되는 시대, 기사마다 관심 소비자층이 다르다. 개인의 취향과 흥미에 따라 뉴스 콘텐츠도 골라본다면, 양질의 문화 기사에 대한 수요도 분명히 있을 거로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신문이든 방송이든 문화 기사의 양과 질이 전반적으로 떨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화부 전통이 강한 몇몇 매체를 제외하면, 전문성 있는 문화 기자를 육성하는 시스템이 거의 사라진 것 같다. 사람을 키우지 않으면 좋은 기사는 나오지 않는다. 아쉬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먹고사는 것도 힘든데 한가롭게 문화가 웬 말이냐, 사치다’, 하는 분들(이런 분들은 언제나 있었다)에게는, 이런 얘기를 해 드리고 싶다. 영국에서는 2차 대전 당시 전쟁에 지친 국민을 위로하기 위해, 예술가들을 고용해 순회공연과 전시를 진행하는 조직인 CEMA(Council for Encouragement of Music and Arts)가 만들어졌다. 급박한 전쟁 중에도 문화를 잊지 않은 것이다. 그 유명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가 1942년 CEMA 위원장을 맡아 문화예술의 중요성과 지원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이후 이 조직은 전 세계 공공 예술지원의 모델이 된 영국 예술위원회(Arts Council)로 발전했다. 전쟁 때에도 국가가 나서서 문화를 챙겼는데, 문화가 한가로운 사치라고 말할 수 있을까? 

*2019년 '방송기자' 월간지에 기고한 글. 문화부의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나아진 게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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