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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6. SBS취재파일. 임윤찬의 반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쓴 여러 기사 중 마지막으로 쓴 글이다. (현재로서는 마지막이다. 앞으로 또 쓰게 될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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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임윤찬과 반 클라이번 콩쿠르 이야기, 두 번째 글입니다. 첫 번째 글에서는 반 클라이번은 누구인지, 왜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러시아 연주자의 출전을 허용했는지, 우승자 임윤찬을 배출한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글은 '세계 3대 콩쿠르'에 대한 얘기로 시작합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세계 3대 피아노 콩쿠르'일까요? 또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왜 이런 얘기가 나왔을까요?
클럽발코니 편집장이자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인 이지영 씨와 함께 팟캐스트 커튼콜(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811968) 에서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김'은 김수현, '이'는 이지영을 가리킵니다. 대화의 주요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와 '세계 3대 콩쿠르'
김: 콩쿠르 얘기를 좀 더 해보자. 반 클라이번 콩쿠르가 세계 3대 콩쿠르에 버금가는 권위가 있는 콩쿠르다, 이런 얘기가 많이 나오지 않았나. '세계 3대 콩쿠르'는 쇼팽 콩쿠르(폴란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벨기에),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러시아)를 가리키는데, 흔히 쓰이는 말이긴 하지만, 누가 정했는지, 무슨 기준으로 그렇게 부르는지 확실하지 않다. 역대 수상자 면모를 봐도 그렇고, 역사도 있고 규모도 크고, 그래서 중요한 콩쿠르라는 점은 맞지만, '세계 3대 콩쿠르'에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푸틴과 가까운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공동 조직위원장으로 있으며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국제음악콩쿠르 세계연맹에서 제명되어 주요 국제 콩쿠르로서 위상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3대 콩쿠르'라는 표현을 계속 쓰는 것도 어색하다.)
이: 사실 이 세 콩쿠르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기 어렵다. 쇼팽 콩쿠르는 피아노만 하는 건데 퀸 엘리자베스하고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여러 악기 부문이 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작곡이 들어갔다가 빠지고 첼로 부문이 들어가고,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도 관악기 부문이 없었다가 생기고, 이런 식으로 계속 상황도 바뀐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가 '세계 3대 피아노 콩쿠르'라는 얘기까지 나왔는데, 이건 정말 생경한 얘기다. 쇼팽 콩쿠르나 리즈 콩쿠르 등과 함께 중요한 피아노 콩쿠르로 볼 수 있지만, 콩쿠르마다 성격이 굉장히 달라서 단순 비교가 어렵다. 어떤 콩쿠르는 협연 기회를 많이 주고, 어떤 콩쿠르에 나가면 사이먼 래틀과 협연할 수 있고, 이런 식으로 특성이 다 다르다.
김선욱이 우승했던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 예를 들어보면, 이 콩쿠르는 우승자 단 한 명만 뽑는다. 보통 다른 콩쿠르 결선에서는 오케스트라와 협연 무대로 성대하게 마무리하는데,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에서는 앙상블을 잘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지휘자를 꿈꾸며 앙상블을 많이 경험했던 김선욱에게 유리한 콩쿠르였던 거다. 손열음 조성진이 통과의례처럼 참가했던 에틀링겐 콩쿠르나 하마마츠 콩쿠르는 정말 젊은 영재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콩쿠르다.
이렇게 피아노만 하는 콩쿠르도 있지만 시벨리우스나 파가니니 콩쿠르는 바이올린으로 특화한 콩쿠르다. 콩쿠르마다 특성과 색깔, 지향점, 목표가 다 다르다. 그래서 콩쿠르를 어느 한 기준으로 비교하는 건 잘못된 비교가 될 수 있다.
김: '세계 3대 콩쿠르에 버금가는 콩쿠르'라는 설명은 반 클라이번 콩쿠르를 음악계 밖에서는 잘 모르니까 쉽게 설명하기 위해 나왔을 것이다. 사실 이전부터 세계 3대 콩쿠르, 세계 3대 바이올린 협주곡, 이런 거 많이 얘기하지 않았나. 그런데 세계 3대 바이올린 협주곡도 얘기하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르더라. '세계 3대 콩쿠르'가 어디서 나왔나 기원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영어 텍스트로는 그런 말이 안 나온다. 일본에서 나온 얘기인 것 같다.
이: 이해는 간다. '세계 3대 피아노 콩쿠르'라는 얘기도 아마 반 클라이번 콩쿠르를 좀 더 알리기 위해 나왔을 거다. 하지만 이런 표현에 더 이상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 하면 우리의 임윤찬이 우승해서 세계적으로 주목 받게 된 대회다, 이렇게 인식되지 않을까.
한국 음악계에서 탄생한 임윤찬이라는 연주자
김: 임윤찬이 우승했던 콩쿠르, 하니까 생각나는데, 임윤찬은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에서 15살의 나이에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하니까 5곳에서 보도자료가 왔다. 일단 소속사가 있으니까 소속사에서 보도자료를 보내왔다. 금호문화재단에서도 '금호 영재' 출신 임윤찬이 우승했다고 보도자료가 왔다. 금호아트홀은 임윤찬을 어릴 때부터 무대에 세워줬던 곳이다. 금호아트홀 유튜브 채널에는 임윤찬이 중학교 다닐 때 연주한 영상도 있다. 또 한 곳이 바로 윤이상 콩쿠르를 개최하는 통영국제음악재단이다.
이: 거기 말고도 또 있죠.
김: 한국예술종합학교, 한예종에서도 왔다. 재학생이 우승했으니 보도자료를 낸 거다. 또 한 곳은 반 클라이번 콩쿠르 조직위원회의 공식 보도자료다. 그러니까 5곳에서 보도자료를 받은 거다.
이: 사실 좀 더 찾아보면 그동안 임윤찬을 후원했던 기업들도 있어서 그런 기사도 많이 나왔다. 재미있는 것은 임윤찬과 협연했던 국내 오케스트라들도 '우리가 먼저 임윤찬을 알아보고 협연을 했다'고 얘기한다. 다 좋은 일이다. 잘된 일에 이렇게 화제성을 더 늘려가는 거니까.
그런데 화제성이 늘다 보니까, 정말 '어그로성' 말도 안 되는 얘기들도 계속 나와서 좀 걱정이 된다. 임윤찬이 인터넷 유튜브 다 끊었다는 게 이해도 되는데, 이제 이런 어그로성 콘텐츠는 좀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
김: 보도자료가 여러 곳에서 왔다는 걸 삐딱하게 보는 분들도 있을 수 있지만, 사실 그 단체나 학교, 기관들이 다 임윤찬의 오늘이 있기까지 성장에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던 곳이다. 그러니 임윤찬이 우리 무대, 우리 콩쿠르, 우리 학교를 거쳤다고 얘기하는 것도 당연하다. 임윤찬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가 아니라, 한국의 음악계 토양 안에서 성장해서 나온 연주자다. 그래서 이번 콩쿠르 우승에 흥분만 할 게 아니라 앞으로 음악계가 어떻게 발전해야 하나 이런 논의로 발전되었으면 좋겠다.
이: 사실 지난해 임윤찬이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 프로그램으로 롯데콘서트홀 공연을 잡았을 때, 소속사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왜 아직 어린 친구를 이런 무대에 세우느냐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그런데 이런 공연들이 사실 다 콩쿠르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 나가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을 갑자기 칠 수는 없는 거다. 어느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든, 어느 큰 무대에서든, 떨지 않고 공연을 했을 때 그게 경험으로 쌓이기 때문에 이런 공연들을 만든 것이다. 연주자가 너무 뛰어난데, 무대에서 제대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아쉽겠나. 그래서 오케스트라와 협연도 여러 번 했고,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도 연주했고, 명동성당 음악회도 했고, 임윤찬의 재능을 아끼는 음악계 사람들이 정말 그의 성장을 위해 이런 공연들을 계속 만들어냈던 거다.
20여 년 전으로 돌아가서 임동혁의 경우와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피아노 전문지 기자로 일하면서 임동혁이 16살일 때 처음 봤는데, 임동혁도 그 부모님도 힘들어했던 부분이, 어릴 때 러시아에 가서 공부했기 때문에 한국과 별로 연계된 끈이 없는 상태에서, 혼자 계속 천장을 뚫으며 콩쿠르에 나갔던 거다.
외국에서 콩쿠르에 나갈 때마다 보면 아시아 연주자는 몇 없는데, 일본 사람들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은 피아노 메이커인 야마하부터 시작해서 카메라도 오고, 보도도 그렇고, 모든 측면에서 다 연주자를 든든하게 지원하는 분위기다. 일본 연주자들은 처음부터 '내 편'이 있다는 걸 안고 들어오는데, 임동혁은 그런 것 없이 혼자서 힘들고 외로웠다고 했다. 약간 어떤 울분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상태에서 2003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출전해 3위를 하고도 심사 결과에 불복해 수상을 거부했다. 당시 임동혁이 사춘기 나이(18살)이기도 했고, 2위를 했던 중국인 연주자의 수상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고 한다. 사실 그때 2위를 했던 연주자는 지금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상 거부 사례들은 사실 많다. 1989년 19살 때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알렉세이 술타노프라는 러시아 피아니스트가 있다. 술타노프는 지금 임윤찬만큼 천재라고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사람이다. 그는 1995년 쇼팽 콩쿠르에 다시 나가서 1위 없는 2위를 했는데, 이 결과에 불복해서 수상을 거부했다.
콩쿠르에 혼자 나가서 그렇게 힘들고 외로울 때 어린 임동혁이 느꼈을 패배감 같은 걸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 것 같다. 지금 한국은 누가 봐도 문화 강대국이다. 물론 국가의 위상 덕분에 뭐가 됐다, 이런 얘기는 절대 아니지만, 어떤 인프라 같은 것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응원이 되는지에 대한 얘기는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임윤찬 우승 전에 칸 영화제에서도 좋은 소식이 있었는데, 영화계에서는 감독과 배우 말고도 항상 제작자인 CJ E&M에 대한 얘기를 하더라. 제작 환경이 얼마나 복잡하고 시장이 얼마나 큰가 생각해 보면, 그런 인프라 없이 감독이 혼자 나가서 상을 받을 수는 없는 거다. 마찬가지로 콩쿠르가 무슨 올림픽은 아니지만, 음악계 전반에서 격려하고, 아끼고, 이 싹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그런 환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임윤찬 효과'...반짝 열풍에 그치지 않기를
김: 사실 제가 취재하면서 클래식 음악계가 풍족한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요즘 인기를 누리는 걸 보니 낯설다. 물론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이전에도 많이 있었지만 다른 분야에 비하면 비인기 종목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번에 관심이 너무 뜨거운 걸 보고 사실 놀랐다. 임윤찬한테 예능 프로그램 출연 요청도 쇄도했다고 하고.
요즘 K-클래식, 클래식 강국, 이런 얘기 많이 나오지 않나. 유튜브에는 이런 류의 '국뽕성' 콘텐츠도 요즘 갑자기 많아졌고. 좋은 연주자들 많고 좋은 선생님들도 많고 환경이 좋아졌지만, 정말 클래식 강국인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 임윤찬이 출연하는 공연 중에 페스티벌처럼 다른 공연하고 같이하는 게 있는데, 임윤찬이 나오는 공연만 매진이다. 전반적으로 파이가 커진 것 같지는 않다. 클래식 음악계는 여전히 가난하다고 느끼는 환경 속에 있다. 앞으로는 좀 확산이 될 수 있을까?
임동혁 손열음 김선욱 조성진 때도 다 기대를 했었고, 덕분에 젊은 연주자들, 젊은 청중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긴 하다. 지금은 클래식 중에서도 가장 비인기 종목 같았던 실내악에서도 노부스 콰르텟이나 에스메 콰르텟처럼, 콩쿠르 우승하고 해외 공연에서 전석 매진을 이루는 좋은 팀들이 등장했다.
정말 알짜의 아티스트들은 실속 있고 훌륭해진 게 사실이지만, 어디까지 확산될 수 있을까? K-클래식, 클래식 강국, 이런 표현은 솔직히 조금 오글거리고 적응이 안 된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열이 확 붙어서 좋아하고, 열이 확 식어서 빠지고 이런 식이 아니라, 그 맛을 보고 오래 진득하게 갈 수 있게 되면 좋겠다. 해외 연주자들은 한국 청중이 젊은 것에 놀라는데, 이 젊은 청중이 나이 들어가더라도 계속 그 아래 세대로도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팬텀싱어'를 보면서 뮤지컬만 좋아하던 사람이 성악에도 관심이 생겨 즐기는 음악의 폭이 넓어지는 것처럼, 임윤찬을 통해 피아노 음악이 이렇게 재미있고, 좋고, 즐길 만한 것이구나, 하면서 더 넓혀가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임윤찬 연주 듣다가 집에서 피아노 치고 있는 아이를 보면 낭패감이 들고 답답해진다, 이러지 마시고.
김: 클래식 음악을 평소에 듣던 분들이 아닌데도, 이번에 임윤찬의 결선 연주 영상을 보고 너무 감동했다, 라흐마니노프를 그전에 들어본 적은 없지만 정말 좋은 거더라, 이런 분들이 주변에 많다. '임윤찬 효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2002 월드컵 때 생각이 난다. 축구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진 것 같았지만, 선수들이 월드컵 끝나고 나니까 굉장히 허탈하다고 하지 않았나. 선수들이 한국 축구도 사랑해 달라고, K리그 경기장은 텅 비었다고 했던 얘기가 이해가 간다. 저 자신부터 월드컵은 정말 열심히 봤지만, 축구 리그가 뭐가 있는지, 어떤 선수가 있는지 잘 몰랐다.
하지만 박세리가 등장하고 세리 키드가 늘어난 것처럼, 임동혁 이후 후배 음악가들이 많아졌고, 이제 임윤찬이 또 어떤 여파를 만들어낼지 모르겠다. 그래서 기대는 하고 있다.
김: 임윤찬 음반이 하나 있다. KBS에서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 시리즈로 나온 건데,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콩쿠르 각 라운드에서 연주할 때마다 이 음반 얘기가 나오는 걸 듣고 음반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느꼈다. 또 임윤찬이 시흥 출신이라는 얘기도 계속하더라. 임윤찬 음반을 음원 사이트에서는 들을 수 있지만, 음반 자체는 품절이다. 예약 주문 받는 걸 보니 새로 찍어낼 것 같다. 임윤찬 스승인 손민수 교수의 스승 러셀 셔먼의 '피아노 이야기'라는 책이 있는데, 그것도 요즘 웬만한 서점에선 구할 수가 없다.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이: 손민수 교수도 예전에 피아노 음악계에서 '아이돌' 같은 연주자였다. 당시 음악 전문지 기자들 사이에서 이 잘생긴 청년은 누구냐, 이런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손민수 교수가 유명 콩쿠르 우승하고 나서도 한동안 굉장히 조용했다. 콩쿠르 우승하고 나면 연주 기회도 많았을 텐데, 왜 안 보일까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그런데 피아니스트 백건우도 콩쿠르 우승하고 주목받을 때 잠적을 했고, 제가 한국일보 칼럼에도 썼던 얘기인데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가 18살, 최연소 우승이었다. 루빈슈타인 같은 전설적 인물이 '여기 있는 심사위원들 당신보다 이 사람이 훨씬 잘할 것'이라고 극찬했다. 그런데 폴리니는 우승 후에 수상자가 해야 하는 연주만 몇 번 하고, 8년 동안 무대에 서지 않았다. 계속 루빈슈타인, 미켈란젤리에게 지도를 받으며 공부만 했다. 우리가 아는 전설적인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모습은 그 이후부터다.
반 클라이번 같은 경우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국가적 영웅으로 칭송받으면서 여기저기 국가 행사에 불려 다니며 연주하다가, 그냥 행사 연주자가 되어버렸고 일찍 무대를 접었다. 이렇게 되면 안 된다. 임윤찬도 계속 얘기하지 않나. 너무 유명해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잘한다는 얘기도 앞에서는 불편할 수도 있다. 내가 잘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다음에는 더 잘 보여줘야 하니까.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1967년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나서, '내가 이번에 이렇게 했으니, 다음에는 더 잘하는 걸 보여줘야 돼' 하는 생각 때문에 무서웠다고 한다. 그렇게 어린 마음에 울기도 하고, 마음고생을 하면서 몇 년 지내다가, 아버지 돌아가시고, 매니저도 세상을 떠나고, 스승님도 돌아가시고, 한 해에 이런 일들을 겪고 나서 무너지고 7년 동안 무대에 못 섰다고 한다. 그런데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짐머만이 '그럼 나랑 같이 연주하자'고 계속 격려해서 결국 무대에 다시 서게 된 거고.
연주자도 사람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연주자도 성장과 성숙이 필요하다. 성장할 때는 대중과 떨어져 혼자 자신을 키우는 시간도 필요하다. 자꾸 누군가의 환호에 계속 보답하려고 활동을 하다가는 반 클라이번처럼 될 수도 있다.
김: 임윤찬은 생각이 확실한 것 같다. 우승해서 달라진 게 없다고 하지 않나.
이: 임윤찬은 자신을 잘 아는 연주자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고 제 실력이 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는 게 아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더 늘 거라는 생각도 하면 안 된다. 그다음 날도 그만큼 열심히 연습을 하고, 그만큼 성취를 하기 위해 노력을 한 다음에 요만큼 보여주는 거니까 그게 얼마나 허탈하고 힘들고 지치겠나. 그래서 무서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김: 임윤찬이 심란하다고 한 말이 이해가 된다. 아직 공부할 곡이 많다고도 했고. 사실 피아노 레퍼토리는, 다른 악기도 그렇지만, 엄청나게 많다. 지금 콩쿠르에 나가고 리사이틀을 몇 번 할 정도로 레퍼토리가 있지만, 그걸 뛰어넘는 엄청나게 많은, 아직 쳐보지 않은 곡들이 있으니 그런 곡들도 빨리 공부하고 싶은 거다. 그러니까 지금 벌써 완성된 것처럼 여기저기 무대 불려 다니고 이런 건 곤란하고, 조금 기다려달라는 얘기다.
이: 임윤찬이 어느 시대 거장이 환생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지난번 손민수 교수도 얘기했던 작곡가 이하누리 같은 친구들과 얘기하는 걸 보면 정말 아이 같다. 이렇게 떠받들고 또 흔들기에는, 내가 가는 길이 맞는가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 10대이고. 친구들 중에 한재민 같은 놀라운 첼리스트도 있고, 이하누리 같은 작곡가도 있고, 또래 친구들과 같이 음악을 놀이처럼 즐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 친구들이 온전하게 자랄 수 있게 조용히 지켜봐 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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