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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세계 3대 발레단은 어디일까?

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세계 3대 발레단’을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면, 관련 글이 꽤 많이 등장한다. 가장 최근의 글이 ‘세계 3대 발레단’인 모나코 몬테카를로 왕립발레단이 올해 6월에 내한공연을 한다는 내용이다. ‘세계 3대 발레단’ 중 하나가 모나코 몬테카를로 왕립발레단이라면, 나머지 두 개만 더 찾으면 된다.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지난해 내한공연 관련 글을 보니 마린스키 발레단 역시 세계 3대 발레단이라고 쓰였다. 이제 하나 남았다. 이번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가 세계 3대 발레단이라는 글이 보인다. 발레단 세 곳이 나왔다. 그렇다면 모나코 몬테카를로 왕립발레단과 마린스키 발레단, 그리고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가 세계 3대 발레단인가?

아니다. ‘세계 3대 발레단’은 줄줄 더 나온다. 볼쇼이 발레단도 세계 3대 발레단이다. 또 ‘세계 3대 발레단’이라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 발레단도 한국을 다녀갔다. 또 다른 글에서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이 세계 3대 발레단이라고 한다. 좀 더 찾아보니 영국 로열 발레단이 세계 3대 발레단 이라는 글도 있다.

최근 2년 정도의 기사와 글들을 검색해 보니 ‘세계 3대 발레단’으로 언급된 단체가 모두 7곳이다. 모나코 몬테카를로 왕립 발레단, 마린스키 발레단,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볼쇼이 발레단,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발레단, 파리 오페라 발레단, 영국 로열 발레단. 그럼 진짜 ‘세계 3대 발레단’은 대체 어디일까.

나는 ‘세계 3대 발레단’에 대해 2012년에도 기사를 쓴 바 있다. 당시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내한공연 기획사가 ‘세계 3대 발레단’을 내세워 공연을 홍보했다. 기획사측에 ‘세계 3대 발레단’이 어디어디냐고 물었더니 파리 오페라 발레단, 영국 로열 발레단과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라고 했다. 그러나 최태지 당시 국립발레단장, 문훈숙 유니버설 발레단장, 제임스 전 안무가 등 내로라 하는 발레 전문가들이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세계 3대 발레단’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고 했다. 나라마다 개성 있고 훌륭한 발레단들이 많은데, 이 중에 3개 단체만 골라서 ‘세계 3대 발레단’으로 꼽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세계 3대 발레단’은 영어로 검색어를 넣고 구글링을 해 봐도 안 나온다. 만약 출처가 있다면 ‘OO타임스 선정 세계 3대 발레단’ 이런 식으로 쓸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기획사측은 ‘세계 3대 발레단’이 어디서 나온 말인지 근거를 대지 못했다. 그저 그런 말이 있길래 가져다 썼다고 했다. 과거 해외 발레단의 내한공연 때 이 공연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문구인 듯했다. 매체에서 먼저 썼을 수도 있고, 홍보용 전단이나 광고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세계 몇 대’는 손쉽게 공연이 얼마나 대단하고 유명한지 알려주는 문구로 가져다 쓰는 게 관성이 된 듯하다.

내가 ‘한국에서만 통하는 세계 3대’라는 제목으로 썼던 기사는 당시 꽤 화제가 되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285795) ‘세계 3대 발레단’을 비롯해, 세계 5대 뮤지컬, 10대 아트센터, 이런 식으로 ‘세계 몇 대’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 별 근거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3대 발레단’이 이렇게 많이 나오니, 관행은 그대로인 것 같다. 한국인들이 유난히 순위 매기고 비교하는 걸 좋아하고, 이른바 ‘유명세’에 약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달리기 경주가 아닌 예술에서, 순위 매기기가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게다가 ‘세계 몇 대’로 표현되는 이 ‘순위’라는 게 대부분 별 근거 없는 수사에 불과한데 말이다.

몬테카를로 왕립발레단의 내한공연 소개 글에서 ‘세계 3대 발레단’이라는 문구를 본 게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다. 몬테카를로 왕립발레단은 세계 3대 발레단이 아니다. ‘세계 3대 발레단’은 별 근거 없는 수사일 뿐이다. 몬테카를로 왕립발레단은 안 그래도 개성 있고 훌륭한 발레단이다. 나는 일찌감치 몬테카를로 왕립발레단의 안무가이며 예술감독인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팬이 되었다. 그의 ‘로미오와 줄리엣’, ‘신데렐라’ 등은 이미 한국에서도 공연돼 발레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세계 3대 발레단’ 이제 좀 그만 쓰자.

*SBS 뉴스웹사이트에 취재파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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